
지난 2012년 8월, ‘내일의 프로야구 스타’를 뽑는 신인지명회의에서 삼성은 이렇게 내야 자원을 선택했다. 전년도 우승을 차지했던 삼성이 1라운드 마지막 지명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음을 감안한다면 투수를 선택하는 것이 정석일 수 있었다. 실제로 삼성은 전면 드래프트 이후 1라운드에서 단 한 번도 야수 자원을 지목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삼성은 ‘내일의 대형 내야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던 정현(19)을 뽑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까지만 해도 삼성의 선택에 의문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앞선 순번에서 ‘고교야구 내야수 최대어’로 손꼽혔던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 강승호(북일고 졸업)가 LG의 선택을 받자 아쉬움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이들은 오히려 “(정)현이가 더 앞선 순번에서 지명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라는 평가를 내린다. 실제로 그를 지도했던 모 코치는 “더 앞선 순번에서 (정)현이를 데려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놓친 구단은 분명 나중에 입맛을 다시게 될 것이다.”라며 오히려 정현을 더 크게 평가하기도 했다.
그의 앞에 붙여졌던 별명, ‘고교야구의 에이로드’
그리고 이러한 평가가 틀리지 않다는 사실이 증명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퓨쳐스리그에서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0.286의 준수한 타격 실력까지 선보인 그가 시즌 중반 1군으로 승격되어 수많은 ‘형님’들을 뒤로하고 팀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졸 신인 내야수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오는 18일 포항에서 열리는 퓨쳐스리그 올스타전 출전 멤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부산고에서 정현의 1, 2학년 시절을 지켜보며 야수조를 지도했던 영남대 차정환 코치는 “(정)현이는 메이저리그에 보내도 절대 빈손으로 돌아올 아이가 아니다.”라며 그의 정신력에 큰 점수를 준 바 있다. 그만큼 본인 스스로 ‘야구가 좋아서’ 할 만큼, 훈련조차 즐긴다는 것이 차 코치의 증언이다. 이에 당시 모교 사령탑을 맡았던 김민호 현 롯데 2군 타격코치도 1학년이었던 정현을 주전 유격수로 중용하며, 큰 경기 경험을 쌓게 했다. 그리고 그가 공-수-주에서 맹활약을 펼치자 부산고 역시 그 해에 청룡기 4강과 화랑대기 우승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그의 ‘근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화랑대기 대회를 앞두고 정현은 갑작스럽게 맹장수술을 받아 대회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다. 선수 보호가 최우선이었던 김민호 당시 감독도 정현에게 ‘무조건 휴식’을 명령했던 것도 당연한 순서였다. 실제로 1회전 원주고와의 경기에서 정현은 경기 끝날 때까지 벤치만 지키며 동료들의 뛰는 모습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대회 출전을 강행하고자 자신의 몸이 괜찮다는 사실을 코칭스태프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팔굽혀펴기, 프리배팅, 러닝 등을 모두 소화하며 자신을 다시 출전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정현은 김민식(SK)이 버틴 개성고와의 16강전에 다시 선발로 출장하여 2-1 승리를 이끌었다. 선취 득점을 한 이도, 결승타가 되는 희생플라이 타점을 기록한 이가 모두 정현이었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 개성고와의 일전에서 승리를 거둔 부산고는 그 기세로 결승전에서 북일고마저 제압하며 ‘화랑대기 최다 우승팀’으로 이름을 올렸다. 대회 직후 김 감독을 비롯하여 차 코치가 “맹장수술 받은 이후 곧바로 경기에 뛰겠다고 한 친구는 정현이 처음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우승의 숨은 공신으로 정현을 뽑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그의 별명은 ‘고교야구의 알렉스 로드리게즈’였다. 그만큼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한 장타력과 순발력은 젊은 시절의 로드리게즈를 떠올릴 만했다. 물론 프로에서도 그러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 장기간 1군 무대에서의 검증도 필요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등장한 ‘대형 신인 내야수’의 출현이 반가운 것은 언젠가 국내에서도 로드리게즈 같은 선수가 있음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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