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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특집]5. 마라톤 한일전…'몬주익의 영웅'을 탄생시킨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황영조와 모리시타의 한일대결이 백미

2021-07-24 06:51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일본의 모리사타를 제치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손기정 이후 56년만에 마라톤 금메달을 따내 '몬주익의 영웅'이 된 황영조가 온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귀국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일본의 모리사타를 제치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손기정 이후 56년만에 마라톤 금메달을 따내 '몬주익의 영웅'이 된 황영조가 온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귀국했다.
올림픽 마라톤에서 한일대결은 남자 우세, 여자 열세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남자 마라톤은 일제 강점기의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을 비롯해 황영조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이봉주의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로 금 2, 은 1개를 획득했다.

반면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쓰부라야 고키치가 동메달,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키미하라 겐지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모리시타 게이치가 은메달을 따 은 2개, 동메달 1개다.

이와 달리 1984년 LA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에 채택된 여자 마라톤에서는 한국이 아직까지 올림픽에서 노메달인데 견주어 일본은 금2, 은1, 동메달 1개를 따냈다.

아리모리 유코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다카하시 나오코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노구치 미즈키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잇달아 우승해 4회 연속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은 올림픽에서 남녀 모두 케냐와 에티오피아의 거센 돌풍에 밀려 노메달에 그치고 있다.

황영조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1위로 골인하면서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황영조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1위로 골인하면서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마라톤 한일 대결의 백미는 1992년 8월 9일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나란히 금, 은메달을 목에 건 한국의 황영조와 일본의 모리시타 게이치의 '몬주익 언덕의 혈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코스는 여러모로 악명이 높았다. 최악의 무더위에 지중해를 낀 도시의 특성으로 습도까지 높아 온몸에 저절로 땀이 배이고 칙칙했다. 여기에다 마라타에서 출발해 바르셀로나 시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복잡한 시내를 통과한 뒤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골인하는 코스도 쉽지 않았다.

25㎞ 지점까지는 그런대로 편편했지만 이후부터는 표고차 40m를 올라가는 오르막이었다. 그러다가 그냥 걸어가도 숨이 찰 정도로 가파른 언덕길인 해발 213m의 몬주익 언덕이 마라톤의 끝자락 쯤인 38㎞ 지점에 자리했다. 바로 마지막 승부처였다.

33㎞ 지점을 넘어서 선두 자리를 서로 10차례 이상이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한치의 양보도 없이 레이스를 벌이던 황영조와 모리시타는 몬주익 언덕을 넘어서면서 승부가 갈렸다.

몬주익 언덕에 올라 40㎞ 내리막길에 접어들면서 황영조가 치고 나간 것이다. 서로 선두로 나섰다가 뒤로 빠지는 오르막길을 마치고 나면 내리막에서는 한숨을 돌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황영조는 이를 오히려 역으로 이용해 승부수를 던졌다.

순식간에 기습(?)을 당한 모리시타로서는 도저히 황영조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황영조는 온 힘을 다해 달렸다. 결승테이프를 끊고 그대로 바닥에 나 뒹굴듯 쓰러졌다. 2시간13분23초.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면서 세러머니를 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뒤따라 들어온 모리시타도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메인스타디움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손기정 옹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손기정 옹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월계관을 쓴 날과 황영조가 금메달을 딴 날은 묘하게도 같은 8월 9일이었다. 바로 56년을 사이에 두고 손기정과 황영조가 마치 데자뷔를 한 듯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 마련되어 있는 황영조 동산에는 황영조의 달리는 모습과 발 프린팅이 새겨져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 마련되어 있는 황영조 동산에는 황영조의 달리는 모습과 발 프린팅이 새겨져 있다.
56년만에 마라톤 금메달을 안겨 준 황영조에게는 '몬주익 영웅'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가 따라 붙었고 그리고 10년이 지난 2001년 몬주익 언덕에는 '황영조 동산'이 마련되어 그날의 감격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한국은 4년 뒤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봉달이' 이봉주가 다시 한번 마라톤 금메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봉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조시아 투과니와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단 3초 차이로 은메달을 따냈다. 역대 올림픽 마라톤에서 1, 2위와의 최소시간차였다.

이봉주는 환한 모습으로 대형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았다. 투과니와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은 올림픽 정신이 보여준 또다른 승리의 의미이기도 했다.

'봉달이' 이봉주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뒤 대형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봉달이' 이봉주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뒤 대형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이나 일본의 남자 마라톤은 이후 올림픽에서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케냐,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선수들의 속도 경쟁에 밀리고 말았다. 올림픽만을 두고 보면 우리나라가 우세를 보이고 있지만 최근 기록 추세에서는 일본에 뒤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도쿄올림픽에 한국에서는 오주환(청양군청) 심종섭(한국전력공사·이상 남자), 안슬기(SH서울주택공사) 최경선(제천시청·이상 여자) 등 기준기록을 넘긴 남녀 각 2명씩 4명이 출전한다. 일본은 나카무라 쇼고, 핫토리 유마, 오사코 스구루(이상 남자). 마에다 호나미, 스즈키 아유코, 이치야마 마오(이상 여자) 등 6명이 나선다.

우리나라가 기대하는 선수는 케냐 출신으로 2018년 특별귀화한 오주한(청양군청)이다. 본명이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인 오주한은 자신을 발굴하고 지도한 오창석 코치의 성을 따고 '한국을 위해서만 달린다'는 뜻으로 이름을 주한으로 지었다고 한다.

일본은 홈 어드벤티지가 있다. 도쿄의 날씨가 워낙 더운 바람에 마라톤은 장소를 삿포로에서 열리지만 일본은 1964년 도쿄에서 첫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쓰부라야 고키치가 은메달을 따낸 적도 있다.

과연 57년만에 일본에서 다시 열리는 올림픽 마라톤,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될지 사뭇 궁금하다.

[올림픽 특집] 한일스포츠, 라이벌 대결과 克日

1. 한일스포츠의 탄생, 애국과 문명화

2. 일본에 질 수 없다...역대 올림픽서 나타난 반일 감정

3. 손기정과 일장기 말소사건

4. 남녀배구 한일전

5. 마라톤 한일전

6. 축구 한일전

7. 야구 한일전

8. 유도 한일전

9. 한·일스포츠 속의 양국 지도자

10. 진정한 극일, 승패보단 스포츠 정신

[정태화 마니아타임즈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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