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포츠 100년](53)마라톤이야기⑭한반도를 감격의 물결치게 찬 마라톤 세계제패

정태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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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12-1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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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 남승룡의 승리 소식을 기다리는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 광장에 모여든 일반인들 모습.
새벽 2시에 전해진 손기정의 우승 소식

손기정과 남승룡이 마라톤 레이스를 출발할 때 경성은 밤 11시였다. 광화문에 있는 동아일보 귀빈실에서는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라디오중계를 가슴 졸이며 듣고 있었다. 손기정과 남승룡의 모교인 양정고보 안종원 교장, 같은 학교 서봉훈 교무주임, 조선체육회 김규면 이사, 고려육상경기협회 최재환 이사, 중앙기독교청년회 장권 체육부주임, 조선연무관 이경석 사범 등 각 방면 체육 관계자와 특히 4년 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 최초로 출전해 역사적 스타트를 한 김은배 황을수 선수, 여기에 금상첨화로 독일로부터 마라톤 코스를 답사하고 돌아온 안철영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들은 마라톤 코스를 놓고서 귀로 베를린에서 들려주는 라디오 소리에, 눈은 마라톤 코스를 따라가며 긴장한 가운데 밤은 깊어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정에서 조금 못미친 11시 50분에 라디오 중계는 끊어지고 말았다.

이들은 마라톤의 쾌보를 기대하며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마라톤에서 6위에 입상한 김은배로부터 당시 우승자이자 이번 베를린올림픽에서도 우승후보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아르헨티나의 자바라에 패한 회고담을 들어가며 손기정 우승의 쾌보를 기다렸다.

동아일보 뿐만이 아니었다. 조선일보사와 조선중앙일보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신문사 앞에는 방송이 끝나자 비가 오는 가운데 우산 쓴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각 신문사들은 우리 선수가 우승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호외 발행을 준비하며 전 직원들이 쾌보를 기다리며 비상대기를 했다.

평소 같으면 잠자고 적막할 이 새벽에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목을 빼고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손기정이 우승했다는 소식이 전해 진 것은 새벽 2시쯤이었다. 동아일보 2층 창문에서 손기정이 우승했다는 첫 소식이 전해지자 만세를 불렀고 5분도 못되어 손기정이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하고 남승룡이 3위를 했다는 소식에 또 다시 만세 소리가 광화문의 정적을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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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우승, 남승룡 3위의 소식을 전한 1936년 8월 10일자 조선일보(왼쪽)와 동아일보의 호외
감격의 물결로 회오리 친 한반도

동아일보 귀빈실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체육관계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기정 우승 소식이 전해지자 순식간에 환호성과 환희가 넘쳤다.

호외 발행을 위해 대기하던 기자들도 감격에 겨워 호외를 2번이나 발행했다. 첫 번째 호외는 ‘대망의 올림픽 마라톤, 세계의 시청 총집중리 당당 손기정군 우승, 남군도 3착 당당 입상’으로 우승 소식만 전하고 두 번째 호외에는 전면을 장식한 ‘성전의 최고봉’이라는 제목 아래 손기정, 남승룡의 각종 훈련 사진, 동아일보사 앞에 모인 인파 사진과 각계 인사들의 소감을 실었다. 조선일보와 조선중앙일보도 손기정의 우승 소식이 담긴 호외를 발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병중으로 집에서 밤늦도록 결과를 기다리며 잠을 자지 못하고 있던 조선체육회 윤치호 회장은 “손기정 군이 우승하였다는 것은 곧 조선 청년의 앞날이 우승하였다는 예언으로서 또한 산 교훈이라고 굳게 믿는다. 우리 조선의 청년이 스포츠를 통하여 특히 세계 20억을 상대로 당당 우승의 영광을 획득하였다는 것은 곧 우리 조선의 청년이 전 세계 20억 인류를 이겼다는 것이라 우리의 기쁨과 감격은 더할 나위없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귀빈실에 서봉훈 교무주임과 함께 방송을 들은 안종원 양정고보 교장은 “이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긴장했든 맥이 그만 풀리며 이제는 죽어도 원이 없는 듯이 무어라고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형용이다 뿐이겠습니까. 말문이 막히고 어찌할 줄을 모르겠습니다. 그저 우리학교 학생 손기정이 아니오, 조선의 아들이 세계 무대에서 우승을 하였으니 전체가 기뻐할 일인줄 압니다. 오직 이러한 일을 당할수록 늘 사회 일반 유지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합니다”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김은배는 “자바라를 이겼습니다 그려. 오직 감개가 무량합니다. 내가 4년 전에 6위를 할 때에도 자바라를 이길 것을 놓쳤던 못푼 한을 동창인 손 군이 쾌히 설욕하였다는 것은 실로 아득한 4년전의 일이 다시금 두 눈에 어른거리며 흥분과 감격이 복받칩니다. 4년 만에 우승까지 하게 된 것은 일반 사회의 성원과 꾸준한 원조의 힘이 많다는 것을 생각할 때 손 군과 남 군을 대신해서 참으로 감사합니다”며 울먹였다.

신의주 외곽인 민포동에서 살고 있는 손기정의 어머니는 “이게 왠일입니까. 정말 우승했어요. 이런 기쁠 데가 어디 있습니까. 그 아이 아버지(고 손인석)가 한해만 더 살아 계셨더라도 얼마나 좋아하셨겠습니까. 그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달음박질을 좋아해서 그 아이 아버지가 늘 잘 먹이지 못하나 몸 튼튼하기만 축원하였었는데 그것이 이렇게 넉넉지 못한 가정에 태어나 가지고도 공부하는 여가에 세계무대에 나아가 우승하였다하니 그저 감격할 뿐입니다. 저번 편지에 자바라쯤은 겁었다고 말하였는데 그대로 되었구만요.”라면서 두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그렁거렸다.

또 손기정의 형 손기만은 “나의 집은 보다시피 이와 같이 가난합니다. 어머니는 두부를 만드시고 나는 야채를 만들어 간신히 생계를 이어갑니다. 그 중에도 3형제 중 끝 아우인 기정이가 어렸을 적에 키도 적고 말라서 오늘의 영예를 얻어리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이상하게도 달음박질하기를 좋아 하였는데 오늘의 영예를 얻게 된 것은 여러분들이 후원하신 덕택입니다.”라고 말했다.

마라톤을 끝난 뒤 4시간 쯤 지난 10일 오전 6시 30분에는 라디오에서 일본 아나운서가 마라톤 레이스에 대한 상보를 전한 뒤 6시 58분 손기정과 남승룡이 육성으로 소감을 전했다.

손기정은 “자바라를 이겼습니다. 정정당당히 싸워서 결국 승리의 월계관을 조국으로 가져가게 되었음을 기뻐하오며 고국의 여러분께서 성원해 주신 힘 인줄 아옵고 간단하나마 이것으로 인사를 대신합니다.”라고 했고 남승룡은 “손 군과 함께 분투 정정당당히 싸워서 우수한 성적을 내옴은 전부 고국 여러 동포의 간절한 성원의 힘입니다. 고국에 돌아가 보고를 여쭙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큼 드립니다. 고국은 주무실 새벽일 텐데 이렇게 방송케 되어 미안합니다.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라며 짤막하게 인사말을 전했다.

사실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우승, 남승룡 3위라는 쾌보를 전할 때 한반도의 사정은 그야말로 어렵다못해 참혹한 형편이었다.

장맛비로 인한 홍수가 발생하자 한강 뚝이 무너질 것을 우려해 대신 수문을 개방하는 바람에 마포가 완전히 물에 잠겼다. 이에 이재민이 속출하고 계속된 비로 사람들이 기진맥진해 있을 때였다. 여기에 장마 막바지에 불어 닥친 ‘이름 없는 태풍 3693호’는 1232명의 사망자(약 4000명 부상 혹은 실종)를 낸 우리나라 역대 최악의 태풍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모든 조선인들이 시름에 젖어 있을 때 손기정 우승, 남승룡 3위 입상 소식은 순식간에 한반도 전역을 감격과 환희에 들뜨고 희망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손기정의 고향인 신의주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마라톤 왕’을 배출한 신의주 제1보통학교 학생 600명은 신의주체육회와 공동으로 10일 오후 3시 성대한 축하 기행렬에 이어 3시30분에는 공회당에서 체육회 신의주부, 동창회 공동발기로 축하회를 열었다. 또 전남 나주에서는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과 3위 남승룡에게 개선축하 전보를 나주 시민 일동의 이름으로 베를린으로 축하전보를 보내고 시민들은 나주청년회관에 모여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

일본에서 열리는 역전경주대회 3연패에 도전하기 위해 합숙훈련을 하던 양정고보 육상 선수들은 두 선배의 마라톤 승전 소식에 함께 운동을 한 기억을 떠올리며 만세를 부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조선여자체육회를 비롯해 일본인 단체인 조선체육협회, 각 청년단체들과 경기단체에서는 앞 다투어 베를린으로 ‘우승 축하’ 축전을 보냈으며 각 단체들이 합동으로 축하행사를 하기로 하고 벌써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이밖에 일반인으로 광주의 청년 실업가 최남주는 두 선수에게 일금 천원을 기탁하는가 하면 철공소 직원인 이재환은 푼푼히 모은 10원을 축하 성금으로 내놓았다. 또 조선육영회에서는 손기정의 학비를, 호남은행 현준호 두취(頭取·대표)는 남승룡의 학비를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이밖에 양화점에서 고급 구두를 제공하겠다고 나서는 등 언론사 본사와 지사에는 전국에서 성금과 축하품, 그리고 손기정, 남승룡이 돌아오면 전해달라면서 축전이 쇄도했다.

[정태화 마니아타임즈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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