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 10 이종범의 비이교지(卑而驕之)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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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3-17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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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손자병법] 10 이종범의 비이교지(卑而驕之)

-자신을 낮추어 상대를 교만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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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했다. 이제 남은 건 고작 5게임. 한 개만 더 치면 되는데 그게 여의치 않았다. 아무도 정명승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1997년 9월, 타이거즈 이종범은 30홈런-30도루를 눈앞에 두었다. 도루 30개는 일찌감치 달성했고 이제 홈런 1개만 남겨 놓았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몇 게임을 그냥 흘려보내고 나자 점점 몰리기 시작했다.

치자고 해도 투수들이 좋은 공을 던지지 않았다. 기록달성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종범의 약점인 몸 쪽 볼만 줄기차게 던져댔다. 그러다 볼카운트가 불리해지면 그대로 볼넷을 내주고 말았다.

다급해진 이종범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방망이를 경망스럽게 휘둘렀다. 삼진 아니면 내야 땅볼이었다.

29호 홈런을 친 후 13일째 침묵이었다. 시즌도 뉘웃뉘웃 기울고 있었다.

‘늘 그놈의 돛대가 말썽이지’ 하던 이종범은 불현듯 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래, 그렇게 해보자”

9월 20일 광주경기. 하필 상대가 쌍방울이었다. 약팀인데도 묘하게도 타이거즈한텐 강한 면모를 보였다. 선발도 이종범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김기덕이었다.

첫 타석을 맥없이 보낸 이종범은 2회 2사 1,3루에서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볼넷이면 몰라도 피해가기가 쉽지 않았다. 기회다 싶었던 이종범은 묘수풀이에 들어갔다.

예상했던 대로 김기덕은 초구를 몸 쪽에 바싹 붙였다. 이종범은 놀란 듯 뒤로 물러서며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리곤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엉겁결에 방망이가 나갔다는 듯, 이종범이 놀라는 것을 보며 김기덕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같은 코스로 2구째를 찔러 넣었다.

이종범도 그 순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앞뒤 볼 것 없이 방망이를 돌렸다. 경쾌한 타구음을 내며 공은 좌중간 펜스를 훌쩍 넘어갔다. 시즌 30호째 홈런. 마침내 그는 ‘30-30’클럽을 개설했다.

처음의 헛스윙은 이종범의 유인책이었다. 일부러 얕보게 한 후 다음 공을 노리는 전략이었다. 이종범은 김기덕이 만족해 하는 표정을 보며 틀림없이 같은 코스로 공을 던질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 공을 치기위해 모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홈런이 이종범의 그 해 마지막 홈런이었다. 만약 이종범이 그런 계책을 쓰지 않았다면 영원히 그 클럽의 멤버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즌이 끝난 후 일본 프로야구 무대로 훌쩍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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