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통산 755홈런으로 베이브 루스를 넘어섰지만, 그 위대한 업적 뒤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이 도사리고 있었다.
애런은 1974년 베이브 루스의 714홈런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약 93만 통에 달하는 살해 협박 편지를 받았다. 대부분은 "백인의 자존심을 무너뜨린다"는 이유로 몰려든 증오의 언어였다. 협박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그는 경기장 안팎에서 경찰의 24시간 경호를 받아야 했고, 가족들마저 안전을 위협받았다. 그러나 애런은 끝내 모든 압박을 뚫고 메이저리그의 전설로 남았다.
이 극적인 일화는 오늘날 한국 프로야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한화 이글스의 젊은 마무리투수 김서현의 사례다.
김서현은 올 시즌 한화의 뒷문을 책임지는 '차세대 마무리'로 주목받았다. 그의 강속구를 앞세운 잠재력은 리그 정상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경험 부족으로 몇 차례 뼈아픈 실수를 했다. 시즌 막판 결정적인 순간에 블론세이브를 기록하자 일부 팬들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문제는 단순한 비판을 넘어선 도를 넘는 행태다. 이들은 인신공격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가족까지 공격하는 글이 등장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론 프로 선수는 냉정한 평가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 2년 차, 배워가는 과정의 젊은 선수를 향한 '집단적 분풀이'가 과연 한국 야구의 미래에 도움이 될까?
애런은 증오의 편지 더미 속에서도 묵묵히 홈런을 쳤다. 역사를 두려워한 이들의 위협은 결국 무의미했다. 그는 끝내 흑인 선수의 한계를 증명한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깨부순 상징으로 남았다.
김서현 역시 멘탈을 단단히 다져야 한다. 지금의 비난과 압박을 견뎌내야만 진정한 마무리 투수로 성장할 수 있다. 실패를 이겨낸 투수만이 경기 마지막 순간, 수많은 관중 앞에서 웃을 수 있다.
야구는 팬과 선수가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다. 팬들의 '사랑의 채찍'이 어느 순간 독이 되어버린다면, 재능 있는 젊은 선수는 피어나기도 전에 꺾일 수 있다. 성숙한 팬 문화가 필요하다.
야구는 본질적으로 즐거움과 감동을 주기 위한 스포츠다. 선수는 최선을 다해 던지고, 팬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응원하거나 때로는 비판한다. 하지만 그것이 '살해 협박 편지'를 보낸 과거의 미국 팬들처럼 증오와 공격으로 치닫는다면, 그건 이미 스포츠의 영역을 벗어난 일이다.
김서현은 앞으로 더 많은 위기와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다시 일어나 더 강해지는 것이다. 동시에 팬들 역시 '성장의 시간'을 함께 감내해야 한다. 애런을 향한 증오가 역사의 오점으로 남은 것처럼, 김서현에게 쏟아지는 도 넘은 비난 역시 언젠가 한국 야구 팬문화의 부끄러운 흔적으로 기록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김서현의 강한 멘탈, 그리고 팬들의 성숙한 자제다. 그래야만 한국 야구가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
[강해영 마니아타임즈 기자/hae2023@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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