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째, 타격이다. 김혜성은 좌완 투수 상대 타율이 0.368이라는 스탯을 남겼다. 언뜻 보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로버츠 감독은 이를 믿지 않았다. 표본이 적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김혜성의 타격 메커니즘 자체에 대한 불신이다. 바깥쪽 공에 약점을 보이고, 결정적 순간에 배트가 힘을 쓰지 못한다는 지적은 현지에서도 반복됐다. 결국 이는 단순한 좌우 플래툰 문제가 아니라 '김혜성의 타격을 믿을 수 없다'는 총체적 평가로 이어졌다.
둘째, 주루다. 김혜성의 메이저리그 생존 가치는 기본적으로 수비와 주루에 있다. 그런데 25일(한국시간) 애리조나전에서의 주루사는 너무도 뼈아팠다. 2루에서 리드를 하던 김혜성은 타구가 외야로 떨어지는 순간 반 박자 늦게 스타트를 끊었다. 결과적으로 홈 쇄도에서 태그 아웃. 비디오 판독에도 뒤집히지 않은 명백한 주루사였다. 코치의 지시를 따른 것이긴 하지만, 본능적 판단과 스타트 타이밍에서 치명적 약점을 드러냈다. 메이저리그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리그다. 더군다나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서 이런 장면이 반복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감독이 가질 수밖에 없다.
셋째, 입지다. 김혜성은 팀 내에서 '대주자·대수비' 정도로 한정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성공적이지 못하다면 활용 가치는 급격히 줄어든다. 대체 카드가 많은 다저스에서 김혜성 같은 타입은 금세 사라진다. '공격력은 부족하지만 수비와 주루로 보완한다'는 프로필은 MLB에서 가장 빨리 도태되는 유형 중 하나다.
넷째, 부상 관리다. 김혜성은 시즌 중반 어깨 통증을 숨긴 채 뛰다가 결국 장기 결장으로 이어졌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은 셈이다. 부상 사실을 조기에 알리고 짧게 쉬었더라면 큰 문제 없이 복귀했을 수도 있었지만, 결국 한 달 넘게 이탈하며 경기 감각을 완전히 잃었다. 복귀 후에도 폼을 되찾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그 사이 팀은 이미 김혜성 없이도 돌아가는 시스템을 구축해버렸다. 이 점은 그의 입지를 좁힌 결정적 요인이 됐다.
따라서 10경기 연속 선발 제외는 충격적인 뉴스일지 모르나, 내용을 뜯어보면 그리 의외의 결말도 아니다. 김혜성은 올 시즌 콜업 후 반짝 주전 기회를 얻었지만, 스스로 기회를 확실히 붙잡는 데 실패했다.
지금 분위기라면, 김혜성이 포스트시즌 엔트리마저 놓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타격은 불안하고, 주루에서도 신뢰를 잃었다. 여기에 부상 후유증까지 덮치면서 몸 상태와 경기 감각 모두 완전치 않다. 그렇다면 로버츠 감독 입장에서는 굳이 김혜성을 넣어야 할 이유가 없다. 단기전에서 )믿을 수 없는 카드'는 곧 '치명적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김혜성 개인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긴다.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으려면, 수비와 주루 같은 보조적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최소한의 타격 경쟁력과 철저한 몸 관리가 필수적이다. 한국에서의 기민한 발과 다재다능함이 더 이상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결과는 자명하다.
[강해영 마니아타임즈 기자/hae2023@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