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1(월)

축구

[김기철의 스포츠 브레인] 5-0으로 이겼는데, 뇌는 왜 아직도 잠들지 못하는가...유비무환(有備無患)

2026-06-01 09:12

손흥민의 첫 골 세리머니 / 사진=연합뉴스
손흥민의 첫 골 세리머니 / 사진=연합뉴스
지난 31일 일요일, 미국 유타주 프로보 브리검영대(BYU) 사우스필드에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FIFA 랭킹 102위 트리니다드토바고를 5-0으로 완파했다. 손흥민이 전반 두 골로 선제 분위기를 만들었고, 후반에는 조규성이 멀티골, 황희찬이 페널티킥을 추가하며 대승을 완성했다. 숫자만 보면 완벽한 결과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하루가 지난 지금도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이겼는데, 왜 뇌는 편하지 않은 걸까.
뇌과학적으로 이 불편함은 지극히 정상이다. 우리 뇌에는 '위협 탐지 시스템'이 있다. 판단의 사령탑인 전전두엽이 아무리 "5-0이었잖아"라고 다독여도, 감정의 경보기인 편도체는 맥락을 읽는다.

상대는 FIFA 랭킹 102위, 월드컵 본선에도 오르지 못한 팀이었다. 편도체는 그 사실을 안다. 12일 뒤에 맞붙을 체코는 다르다. 그 다음엔 홈팬 6만 명을 등에 업은 멕시코가 기다린다. 전전두엽이 '오늘은 쉬어도 돼'라고 신호를 보내도, 편도체는 경보를 끄지 않는다. 뇌의 경보기는 승리의 크기가 아니라 '진짜 위협까지 남은 거리'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지대가 한 겹을 더 얹는다. 이번 경기가 열린 BYU 사우스필드는 해발 1,460m다. 홍명보 감독이 이 장소를 훈련 베이스캠프로 고른 건 우연이 아니다. 6월 12일 체코전과 19일 멕시코전이 열리는 과달라하라가 해발 1,571m이기 때문이다. 고지대의 공기는 얇다. 산소 밀도가 낮아지면 뇌도 영향을 받는다.

황희찬 / 사진=연합뉴스
황희찬 / 사진=연합뉴스
전전두엽은 산소에 유독 민감하다. 판단이 0.1초 느려지고, 전술 판독이 흐려지며, 집중의 지속 시간이 짧아진다. 저지대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던 '판단의 사령탑'이 고지대에서는 살짝 성능이 떨어지는 셈이다. 선수들의 몸이 고도에 적응하듯, 뇌도 그 얇은 공기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5-0 대승은 그 적응 훈련의 첫 페이지였다.


경기 중엔 반갑지 않은 장면도 있었다. 조유민이 의무진에 업혀 나왔고, 배준호도 부축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뇌의 경보기가 5골 뒤에도 꺼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우리는 점수판을 보는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빠져나간 것들'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나는 말이 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미리 준비하면 근심이 없다'는 이 사자성어는 《서경(書經)》의 한 구절에서 왔다. 전쟁이 끝난 뒤 긴장을 풀지 말라는 경계의 말이었다. 승리한 날에 더 단단하게 빗장을 걸라는 뜻이다.

어제 태극전사들이 프로보 사우스필드에서 몸으로 배운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5-0의 흥분은 어제로 족하다. 뇌는 이미 12일 후 과달라하라를 향해 시계를 맞추고 있다.

손흥민의 55·56호 골이 차범근(58골)의 대기록까지 2골 차로 좁혔다. 그 숫자를 떠올리며 드는 질문 하나. 당신의 뇌는 지금 어제의 5-0을 즐기고 있는가, 아니면 벌써 6월 12일 오전 11시를 향해 달리고 있는가.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쇼!이슈

마니아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