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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20. 약관의 대학생 박찬호, 메이저리그 문을 열다

2020-09-07 07:20

1994년 1월 12일 약관의 대학생 박찬호가 LA다저스와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었다. 만 20세를 6개월쯤 넘긴 애송이. 하지만 LA다저스는 그에게 120만 달러의 계약금을 건네며 바로 메이저에 올렸다. 마이너를 거치지 않은 17번째 기록이었다.

[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20. 약관의 대학생 박찬호, 메이저리그 문을 열다


3개월여 후인 4월 9일 ‘빠른공’의 박찬호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 등에 등판했다. 그러나 아직 여물지 않았다. 두 번 등판에 4이닝 6실점 6K를 남기고 4월 20일 AA로 내려간다. 그의 앞에는 이제 기약할 수 없는 긴 시간이 놓였지만 희망적이었다.

다저스의 지도자들은 한국 야구계와는 달리 박찬호의 빠른공에 아낌없는 점수를 주었다.

“100마일 투수는 타고나는 것이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빠른 공, 그 자체가 엄청난 무기이다. 그 빠른 공을 더 빠르다고 느낄 테크닉만 한두개 가르치면 최강이 되고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박찬호의 공은 고교 때도 공은 빨랐다. 그러나 정확하지 않았다. 때문에 전반적인 평가는 좀 떨어지는 편이었다. 대학 입학 후 공은 더욱 빨라졌다. 시속 156km까지 찍었다. 박찬호를 데려오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던 한양대 이종락 야구부장이 희희낙락했으나 여전히 그는 대표 팀에 뽑히지 못했다.

“박찬호요. 빠르죠. 하지만 걱정 없습니다. 안 치면 됩니다. 기다리고 있으면 볼넷으로 걸어 나가는 거죠.”

당시 타자들이 흔히 하던 말이었다. 국내의 지도자들도 비슷했다. 공이 아무리 빨라도 필요할 때 원하는 곳으로 던지지 못하면 소용없다고들 했다.

그래서 1992년 한미 야구선수권대회 대표에는 동기생인 임선동, 조성민, 손경수, 전병호, 차명주 등 5명이나 투수자원으로 뽑히는 중에도 끼지 못했으나 1993년 버팔로 유니버시아드에는 손경수가 빠진 자리에 합류했다. 선발감은 아니었다. 위재영, 임선동, 조성민이 선발이었다.

처음 조성민, 임선동에게 관심을 보였던 스카우터들은 어느 순간 박찬호에게 스피드건을 들이댔다. 쿠바와의 결승전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뉴욕 양키스, LA 다저스 등의 스카우터들이 떼로 몰려와 경이로운 눈빛으로 박찬호를 바라보았다.

100마일의 구속이 가능한 선수. 그들은 공의 빠르기를 먼저 보았다. 제구력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제구력이 좋은 선수를 강속구 투수로 만들 순 없지만 강속구 투수에게 제구력을 입혀 최고로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160km를 던질 수 있는 흙속의 진주. LA 다저스는 ‘방치된’ 박찬호의 미래를 확신하며 군 미필자인 그를 유학형식으로 붙잡아 일단 메이저리그의 맛을 보인 후 조련사가 잔득 포진하고 있는 마이너리그로 보낸 것이었다.

눈물 젖은 빵과 함께 한 절차탁마의 2년. 박찬호는 1995년 9월 메이저리그에 복귀하여 2경기에 등판, 가능성을 보였다. 그리고 개막 엔트리에 진입한 1996년 4월 7일 컵스전에서 구원승을 작성,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첫 승을 기록한 후 4월 12일 말린스를 상대로 첫 선발승을 올렸다.

1997년 선발진에 가담한 박찬호는 8월 11일 컵스전에서 생애 첫 완투승을 기록하며 14승 8패, 1998년 7월에는 6경기 42와 3분의 2이닝 4승 무패에 방어율 1.05, 탈삼진 34개로 이달의 선수로 뽑혔다.

1998시즌 에는 15승 9패를 작성, 업그레이드 된 면모를 보이며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이끌었다. 2000 시즌의 박찬호는 이제 LA다저스의 에이스 였다. 8월 25일 몬트리올 전에서 메이저리그 첫 홈런을 기록했고 9월 30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전에서는 최초의 완봉승을 작성했다. 시즌 성적 18승(내셔널리그 다승 5위)10패였다.

2001시즌은 FA자격이 걸린 해. 시즌 초 2점대 방어율을 기록했으나 올스타전 이후 허리부상으로 부진했다. 그래도 15승(11패)이었다. 마침내 FA 자격을 획득했다. 거액을 만질 수 있는 기회였지만 마이너리그를 포함, 8년간의 다저스 마운드를 떠나야 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다저스 마운드는 박찬호에게 ‘젖과 꿀’을 선사했다. 박찬호의 미국프로야구 경력은 17년. 거의 절반을 LA다저스에서 보냈는데 이때의 성적이 나머지 7개구단에서 올린 것 보다 훨씬 좋다.

그는 텍사스레인저스와 5년 65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은 후 텍사스레인저스 (2002~2005), 샌디에이고파드리스 (2005~2006), 뉴욕메츠 (2007), 로스앤젤레스다저스 (2008), 필라델피아필리스 (2009), 뉴욕양키스 (2010), 피츠버그파이리츠 (2010)를 거친 9년간 단 한번을 제외하곤 두 자리 승수를 올리지 못했다.

박찬호는 2010년 10월 1일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원정 경기 5회말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3이닝 무실점 무안타 6탈삼진으로 호투, 시즌 4승째이자 124승(97패)째를 만들었다. 아시아 메이저리그 최다승 신기록이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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