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32-⓻ 3金의 전술전략-김인식의 마음 용병술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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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7-06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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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감독은 관찰하고 마음으로 다가간다.

관찰은 선수의 몸 상태, 심리 상태 등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고 마음은 마음을 움직여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다.

김인식은 세심하게 선수를 살핀다. 기용 할 때까지의 시간은 꽤 긴 편이다.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쓰면 어디에 쓸 것인가를 놓고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다. 일종의 숙려기간이다. 일단 그 기간이 끝나면 못 쳐도, 실책을 해도 내버려 둔다. 잘 할 때 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1994년 말 베어스 지휘봉을 잡았다. 시즌 막판 폭행과 그로인한 선수단 집단 이탈 등으로 팀 내부가 뒤숭숭했다. 전력보강 보다는 화합이 먼저였다. 김 감독이 팀을 맡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다행히 선수들은 ‘나쁜 짓’을 함께 하면서 뭉친 덕분에 그들끼리의 분위기는 괜찮았다.

전년 7위였지만 선수들을 하나하나 살펴 본 후의 결론은 ‘결코 나쁘지 않다’였다. 그 겨울의 훈련시즌에서 김인식이 주로 한 일은 선수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과 포지션 찾기였다.

특A는 없어도 준척 급은 상당했고 준척 급들이 조금만 자신을 조련하면 월척도 가능했다. 각 포지션 별로 2~3명의 후보가 있었다. 포지션을 정하고 기용순위를 정했다. 신인들은 따로 훈련을 시키며 세대교체에 대비했다.

전체의 밑그림을 그린 김인식은 1995년 시즌 주전급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특히 실책을 범하거나 공격이 잠시 나쁘다는 이유로는 절대 교체하지 않았다. 팀은 경기가 계속 될수록 발전했고 막판 고비 길에서 아연 힘을 냈다.

4위도 만만찮다는 전문가들의 시즌 전 예상을 비웃으며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했다. 막판 1~3위 싸움에서 한마음으로 단결한 덕분이었다.

김상진은 마운드에서, 김상호는 공격에서 최고 시즌을 보내며 월척으로 성장했다. 김상진은 8번의 완봉승을 포함하여 17승을 작성했다. 1994년 시즌 9홈런 49타점에 머물렀던 김상호는 25홈런 101타점으로 홈런왕에 올랐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언감생심이었다. 첫 판을 내주고 2승3패로 몰리는 등 힘든 여정이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인화로 단결된 ‘마음 야구’가 힘을 발휘했다.

운명의 한국시리즈 7차전 7회, 김인식의 밝은 눈이 다시 한번 진가를 발휘했다.

선발 김상진의 역투로 스코어는 4-2. 김상진의 투구는 여전히 씩씩했다. 그러나 김인식은 김상진을 내리고 권명철을 올렸다. 이해 할 수 없는 투수 교체였다. 코치진도 의아해 했고 관중석도 술렁거렸다.

“김상진은 약점이 있어. 자기 앞에 오는 타구 처리가 좀 엉성하지. 1루에 폭투할 때가 제법 있었거든”

힘이 남은 김상진은 아쉬운 듯 마운드를 뒤돌아보며 내려갔다.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9회 초 2사 2,3루. 롯데 손동일이 투수 앞 땅볼을 쳤다. 혹시 하며 우려했던 상황. 꽤 까다로운 공이었으나 권명철은 쉽게 처리했다.

“그 때 안 바꿨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어. 지금도 그 생각이 문득 문득 나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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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수는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였다.

대학을 마다하고 프로행을 선택할 정도로 대가 쎘다. 근육질의 단단한 몸과 타고 난 타격감 각을 지녔다. 그러나 너무 강한 탓인지 쉽게 보석이 되지 못했다. 94년 성적은 32경기 타율 1할6푼2리, 안타 10개였다. 프로 첫 달 1군에 머물렀으나 곧 2군으로 내려갔다.

김인식 감독은 95년 팀을 맡으면서 바로 심정수를 찍었다. 내야수 후보였지만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꾸도록 했다. 내야는 이미 기존 선수들로 경쟁이 심했다. 힘이 넘치는 탓인지 송구가 정확하지 않았다. 연습 중에도 1루 악송구가 제법 많았다. 3루수 감은 아니었다. 외야수 전향은 그의 방망이를 살리기 위한 조치였다.

김인식은 10안타 중 3개가 홈런임에 초점을 맞추었다. 체격조건도 장타자의 그것이었다. 막상 외야에 보냈지만 심정수는 뒤죽박죽이었다. 송구도 아무렇게나 던질 때가 많았고 타격도 정제되지 않았다.

꾹 참았다. 당장 빼고 싶을 때도 있었으나 전지훈련 때 김경원을 상대로 터뜨린 장외홈런을 생각하며 참고 또 참았다. 1개월 여가 지나자 수비실수가 줄어들었다. 방망이도 때 맞춰 터졌다. 심정수는 95시즌을 풀타임 1군선수로 뛰며 116경기 21홈런, 59타점을 기록했다.

9년 후인 2004년 말, 현대를 거치며 FA자격을 얻은 심정수는 60억원의 최고대우를 받고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10년 전 심정수의 연봉은 3천8백만원 이었다.

2000년 시즌을 앞두고 조계현이 찾아왔다. 기회를 달라고 했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선수였으나 1999년 시즌 삼성에서 그가 보여준 것은 12게임 3패가 전부였다. 36세의 나이까지 감안, 삼성이 폐기처분 했을 터. 김인식 감독은 그러나 그의 살아있는 눈빛을 보고 군말 없이 거두었다.

절치부심의 조계현. 16게임에서 7승3패를 올렸다. 그리고 3연패로 몰리고 있던 현대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승리를 올렸다. 한국시리즈를 다시 시작하게 한 무실점 역투로 조계현은 36세 6개월의 한국시리즈 최고령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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