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포츠 100년](17)YMCA가 우리 스포츠에 끼친 영향

정태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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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4-2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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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 뒷뜰에서 열린 우리나라 최초의 농구경기 모습. 농구는 YMCA 간사인 질레트가 1907년에 소개했다.
MCA 설립의 역사성
YMCA는 우리나라에 1903년 10월 28일에 창립됐다. 첫 이름은 황성기독교청년회(이하 YMCA)였다. ‘황성’(皇城)이란 이름은 우리나라가 1897년 10월 12일 국호를 대한으로 고치고 국왕의 칭호도 황제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한성’(漢城)이었던 서울이 황성으로 부르기 시작해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대한제국은 가물거리며 꺼져가는 등불이었다. 세계열강들의 침략 야욕에 정부는 허울뿐이었고 국민들은 기아와 한발에 허덕였다. 조선의 독립과 개화를 부르짖으며 1896년 7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회정치단체로 탄생한 독립협회가 2년을 갓 넘기고 1898년 11월 열강의 야욕과 음모에 붕괴된지 5년, 그리고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노일전쟁)을 하기 약 6개월 전이었다.

독립협회를 이을 민족 운동단체 탄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였다. 이에 1899년 개화청년 150여명이 YMCA 운동으로 민족자강을 실현하고자 세계 YMCA 연맹에 한국 YMCA 창립을 건의해 드디어 4년 만에 서울에 황성기독교청년회가 창립하게 된 것이다. 이때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청년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그 이전까지는 소년이었고 결혼을 하고 나면 바로 장년이나 노년이었지 청년이란 말은 없었다.

황성기독교청년회의 창립에는 당시 배재학당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여병현의 공이 컸다.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을 하며 YMCA의 활동을 직접 본 여병현은 언더우드, 아펜젤러, 라이언 등과 뜻을 같이해 창설에 직접 관여했다.

창립 이사는 한국인 2명, 미국인 5명, 영국인 3명, 캐나다인 2명, 일본인 1명 등 모두 13명이 선임됐다. 배재학당 교사인 여병현과 남장로교 레이놀드 선교사의 한국어 교사인 김필수가 초대 이사로 참여했고 미국인은 간사인 질레트(P.L. Gillett)를 비롯해 언더우드(H.G. Underwood·새문안교회 목사, 경신학교 설립자), 하운셀(C.G. Hounshell·배재학당장), 헐버트(H.B. Hulbert·한성사범 교사), 샵(R.A. Sharp·장로교 선교사)이었다. 그리고 영국인은 브라운(J. Mcleavy Brown·정부 재무고문), 터너(Rev. A.B. Tuner·성공회 주교), 켄뮤어(A. Kenmure·성서공회 대표)였고 캐나다인으로는 에비슨(Dr. OR. Avison·전 제중원의사), 게일(J.S. Gale·연동교회 목사), 일본인은 제일은행 경성지점장인 다카기가 초대이사였다.

황성기독교청년회는 창립 초기인 1903년 11월 11일 인사동에 체육실 겸용의 공작실, 도서실, 사무실, 기도실 겸용의 교실과 100명 정도 수용해 친교나 게임 및 전도를 할 수 있는 강당을 마련해 임시회소로 활용했다. 회관은 거의 2만 달러에 해당하는 회관 부지 절반에 가까운 땅문서를 현홍택이 흔쾌히 기부한 덕분에 1907년 5월 15일부터 신축공사를 시작해 1908년 12월 1일 준공했다. 건립된 회관을 본 매천야록의 저자 황현은 “그 집의 높기가 산과 같고 종현(鍾峴)의 천주교당과 함께 남과 북에 우뚝 마주 서서 장안의 제일 큰 집이 되었다”고 평할 정도로 서울에서는 누구나 아는 명물 건물이었다.

학교체육과 근대스포츠 소개 첨병이 된 YMCA

이렇게 설립된 YMCA는 10월 28일 오후 6시 서울 유니온(서울 정동 공동서적실)에서 창립총회를 가졌으며 헌장에 따라 초대 회장에 게일 목사, 부회장에 헐버트와 이사 12명이 선출되었고 초대 간사는 질레트가 맡았다. 이사회는 1904년 후반기부터 위원회를 운영했는 데 초대 체육위원회 위원장에는 성공회 신부 터너가 맡았고 1904년 후반기부터는 한국인 간사로 김종상이 임명되었다.

YMCA가 창립 초기에 벌인 체육 사업은 크게 두 가지다. 각종 스포츠를 도입하여 회원들에게 지도하는 회원 중심적 활동의 체육 사업과 다른 단체들과의 대항경기를 중심으로 펼친 체육 사업이다. 회원들에게 지도한 종목으로는 초기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근대스포츠 거의 전부였다. 이들 종목 가운데 야구와 농구는 초대간사인 질레트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했다. 여기서 야구를 배운 회원들이 휘문의숙, 오성학교(현 광신고등학교의 전신) 등에서 야구를 지도함으로써 학교체육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 그리고 질레트의 뒤를 이어 YMCA 간사가 된 반하트가 배구를 소개했다.

YMCA는 1905년 5월 22일 신흥사에서 첫 운동회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1906년 4월 11일에는 청년들의 체질을 더욱 강건하게 하고 경기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황성기독교청년회 운동부’를 조직하였다. 이후 1920년 3월 12일 제1회 실내운동대회를 개최한 뒤 1928년 제12회 대회에 이르기까지 농구, 배구, 철봉, 역도, 권투, 무용, 텀블링, 곤봉, 유도, 검도 등의 보급발전에 이바지했다. 또 야구단, 농구단, 축구단을 조직해 국내외 학교 및 일본인 운동단체와 경기를 하고 우리나라 최초로 국외원정경기도 가졌다. 야구단은 1912년 일본 첫 원정경기에 이어 1924년에는 휘문, 경신학교 선수까지 추가로 선발해 하와이 원정경기에 나섰고 농구단은 1920년에 도쿄 YMCA 초청으로 원정경기를 떠나기도 했다.

구한말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스포츠가 12개 정도에 불과했고 또 이때 조직된 체육단체들의 활동도 일부 특정 종목 1~2개에 그쳤던 것과 견주면 우리나라에 도입된 근대 스포츠의 반 이상을 YMCA에서 실시하고 이를 일반인뿐만 아니라 학교에 보급했다는 점에서 구한말 한국체육을 주도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정태화 마니아리포트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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