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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썰] 한국 남자골프, '짠내'와 '간지' 사이

이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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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16-12-2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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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15일열린제네시스대상시상식의수상자들.마니아리포트자료사진.
[마니아리포트 이은경 기자] 2016년 12월, 한국 남자골프의 연이은 행사들을 보면서 떠오른 단어가 딱 두 개 있었다. ‘짠내’와 ‘간지’다.

곤란하게도, 2개의 단어가 모두 표준 국어는 아니다. 명색이 기자인데 이런 용어를 쓰는게 자랑스럽진 않으나 딱 떨어지게 대체할 만한 단어를 찾을 수 없어서 그냥 쓰겠다.

‘짠내’는 요즘 네티즌들이 쓰는 속어다. 뭔가 불쌍하고 짠한 느낌이 드는 걸 가리킨다. 지난 15일 열린 KPGA 제네시스 시상식 때 이 단어가 유독 많이 떠올랐다.

행사 자체는 매우 화려했다. 남산에 있는 특급호텔에서 열렸고, 스폰서사의 고급 자동차가 행사장에 가로놓였다.
하지만 시상자와 수상자들의 말은 화려함과 거리가 있었다. 4관왕에 오른 시상식의 주인공 최진호는 수상소감을 말할 때마다 스폰서사에 감사 인사를 했다. 메인스폰서사, 용품스폰서사, 대회를 열어준 스폰서사, 시상식을 열어주고 대상을 후원하는 스폰서사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올해 2승을 거둔 주흥철은 팬들과 후원사를 향해 “내년에도 저희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라며 웃었다.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류진 풍산 회장의 건배사는 “남녀 평등을 위하여”였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류 회장이 페미니스트인가,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안다. 여자프로골프(KLPGA)에 비해 남자프로골프(KPGA)가 대회 수, 상금 규모, 인기에서 크게 밀리는 걸 두고 ‘KLPGA투어 만큼만 하자’는 의미라는 걸.

KPGA는 시상식이 끝나고 5일 만에 서둘러서 2017년 대회 일정을 발표했다. 이례적으로 기자들을 모아서 공식 발표회 자리까지 마련했다.

올해 KPGA 코리안투어는 대회가 13개에 불과했다. KPGA는 내년 코리안투어에 최소 18개 대회가 열릴 거라고 했다. 대회 일정도 상세하게 미리 다 풀어놓았다. 다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갸우뚱 할 만한 부분이 좀 있다.

18개 대회가 열리는 건 확실한데, 그 중 신설 대회 3개는 아직 스폰서와 싸인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아서 발표하긴 애매한 부분이 있으니 무슨 대회인지는 추후에 밝히겠다는 것이다. 그 3개의 대회에는 대회 이름 대신 TBA(To Be Announced, 곧 발표될 것)라고 쓰여져 있었다. (나처럼 무식한 사람이 보면 대회 이름이 TBA인 줄 오해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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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휘부KPGA회장.마니아리포트자료사진.

그렇다면 계약이 완료된 후에 발표해도 될 것을 왜 이리 미리 공표했을까. 양휘부 KPGA 회장은 “해외 투어를 병행하는 선수들이 미리 스케줄을 잡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KPGA투어의 선수들은 주로 일본투어(JGTO)를 병행한다. 한국 대회 수가 적으니 상금도 더 벌어야 하고, 그러려면 프로 선수로서 대회도 더 많이 참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외에 유럽, 중국, 웹닷컴투어도 뛴다.

심하게 말하면, KPGA의 상위권 선수들은 JGTO가 주 무대고 KPGA가 부차적인 무대처럼 보인다. JGTO의 시즌 마지막 대회 우승 상금이 KPGA 상금왕의 총상금 보다 많으니 할 말이 없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KPGA는 선수들이 스케줄을 잡을 때 한국 대회가 열린다는 걸 미리 고려해 달라며 내년 대회일정을 서둘러 발표한 것이다. 이쯤 되면 내년 일정 발표 행사는 ‘우리가 대회를 늘렸답니다’라는 자랑으로 포장했지만, 그 뒤의 사연은 말 그대로 ‘짠내 폭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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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KPGA투어데상트코리아먼싱웨어매치플레이에몰려든갤러리들.마니아리포트자료사진.

골프, 하면 웬만한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돈 많이 드는 스포츠’ ‘프로 수준으로 잘하기 정말 어려운 스포츠’ 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게 대중화를 막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간지(感じ, 일본말로 ‘느낌’이란 뜻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멋있다’ ‘있어 보인다’는 뜻의 속어로 쓰임)’의 상징이 되고, 골프라는 종목에 아우라를 더하는 역할도 한다.

PGA투어의 느낌이 그렇다. 어마어마한 상금, 선수들이 쓰는 고가의 장비와 엄청난 후원 계약, 그리고 투어 참가, 특히 메이저대회에 참가하는 건 그 자체가 어렵지만 일단 들어가면 놀랄 만큼 후한 대우를 받는 것 등이 곧 ‘간지’를 만든다. 여기에 세계 최고 선수들의 기량과 스타들이 내뿜는 기운까지 더해져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나온다.

불행히도 한국 남자골프는 최근 몇 년간 인기가 급전직하 하면서 ‘간지’도 추락했다. 대회 후원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선수들은 생계를 위해 투잡을 뛴다. 웬만한 스타들, 유망주들은 다른 해외투어로 줄줄이 빠져나가고 있다.

KPGA는 지난 20일 간담회에서 “그동안 직접 발품을 팔아서 지자체를 일일이 찾아다니고, 설득하면서 대회를 늘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골프가 지역의 축제가 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마케팅에서는 대회의 홀 별로 일일이 광고와 후원사를 쪼개 팔아서 돈을 모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현실에서는 그게 해답이 될 수 있다. KPGA의 ‘짠내’가 마냥 불쌍하고 처량한 느낌이아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최소한 무조건 기업에 돈을 구걸하지 않고 그나마 몇 개 대회라도 늘렸기 때문이다. KPGA는 지금의 ‘짠내’를 멀지 않은 미래에 ‘간지’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은경 기자 kyo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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