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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김학수 기자의 월드컵 용어 산책 17] 왜 ‘브라질’이라 말할까

2022-12-04 06:57

(루사일=연합뉴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G조 1차전 브라질 대 세르비아 경기. 선제골을 넣은 브라질의 히샤를리송과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루사일=연합뉴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G조 1차전 브라질 대 세르비아 경기. 선제골을 넣은 브라질의 히샤를리송과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극적으로 16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축구대표팀이 6일 새벽 4시(한국시간)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과 만난다. 한국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 이후 12년 만이자 역대 세 번째 월드컵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8강행 진출권을 놓고 격돌할 브라질은 FIFA 랭킹 1위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의 팀으로 꼽힌다.

이번 대회 G조 조별 리그에 속했던 브라질이 경기에 앞서 국가 세리모니를 할 때 로마자로 ‘Brazil’ 대신 ‘Brasil’로 표기한 국가명칭을 쓰는 것을 보고 좀 의아했다. 익히 알던 명칭에서 ‘-z-’가 ‘-s-’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브라질 특파원을 역임했던 체육기자 선배 한국일보 김인규 특파원이 쓴 ‘브라질 문화의 틈새’라는 책을 보면 두 표기 방법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브라질을 ‘Brazil’로 기록하는 것은 영어식 표기방법이다. 브라질의 국가 고유명칭은 ‘Brasil’이다. 브라질인들은 ‘Brazil’은 미국인들이 자기네 멋대로 사용해온 스펠링이 국제관계로 굳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브라질을 ‘Brasil’로 쓰고 모국어인 포르투갈 발음으로 ‘브라지~우’라고 하는게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우리말 속담이 있듯이 브라질인들에게 나라이름을 그들이 쓰는대로 ‘Brasil’로 해주면 “아 이 외국인은 우리나라를 제대로 아는 양반이구나”라며 반가워할 것이라고 한다. 브라질 사람들이 자기네 국명을 일반적인 영문자 표기인 ‘Brazil’ 대신 ‘Brasil’을 고집하는 데는 아픈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브라질이란 국명은 ‘브라질 우드(Pau-Brasil)’라는 나무이름에서 유래했다는게 지배적이다. ‘Pau-Brasil’은 포르투갈어로 붉은 나무라는 뜻이다. ‘Pau’는 나무라는 뜻이며, ‘Brasil’은 새빨갗게 타는 것을 의미하는 ‘Brasa’라는 단어에서 유래됐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브라질 우드가 새빨갛게 타는 것 같은 색깔을 가졌기 때문인 듯하다.

브라질 나무는 15~16세기만 해도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만 발견되었다. 고급 옷감을 붉게 염색하는 재료로 쓰이기 때문에 이를 가공하여 가루를 만들어서 유럽으로 수출되곤 했다. 그러나 포르투갈 탐험가에 의해 브라질이 발결된 당시 신대륙 탐사를 나선 탐험가들에 의해 아마존 밀림지대에서 이 나무가 무진장 많이 자라고 있는 것이 확인되면서 이 나무를 ‘Pau-Brasil’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브라질우드는 마침 유럽의 신흥 직물산업에 필요한 붉은 색 염색재료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황금작물로 부각됐다. 별다른 자본이나 기술없이 브라질 우드를 벌목해가기만 해도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이 바람에 유럽 각국은 대규모 선단을 파견시켜 브라질 우드를 마구 잘라 본국으로 운반해갔다. 당시만 해도 브라질에 대한 포르투갈의 지배가 미약해 나라 이름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아 유럽 각국은 브라질 우드를 마음대로 베어 갔던 것이다.

브라질 우드는 천연염료가 물러나고 인공물감이 등장하자 한동안 염료로서의 가치를 잃어갔다. 그러나 브라질 우드는 목질이 단단하면서도 뒤틀림이 없어 이후에는 가구등의 용도로 사용되면서 여전히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브라질에서 지천으로 자라던 브라질 우드가 수백년간의 남벌로 이제는 거의 씨가 말랐다는 사실이다. 브라질 최대 도시 상파울루 시립 식물원에 50여그루의 브라질 우드가 명맥을 근근히 유지해가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브라질 국명에는 국가적으로 아픈 역사가 담겨있어 브라질인들에는 두 단어의 뉴앙스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 브라질을 일본에서 사용한 한자어 음역어인 ‘파서(巴西)’ 또는 ‘백랄서이(伯剌西爾)’라고 불렀다. 조선일보 1926년 6월30일자 ‘백국(伯國)과 국제연맹(國際聯盟)’기사는 ‘(리오데자네로입칠일발(廿七日發)) 백랄서이외상(伯刺西爾外相)『파쳇코』씨(氏)는 당지(當地)에 재(在)한 파나마백년기념제(巴奈馬百年記念祭)에서 국제연맹(國際聯盟)에 대(對)하야 동국(同國)에서 취(取)한 태도(態度)를석 명(釋明)하고 국제연맹(國際聯盟)으로 하야금 일단 기과실(一旦其過失)을 자인(自認)하고 연맹(聯盟)을 지금보다 더 평민적개방적(平民的開放的)으로 되게하며또한 세계(世界)의 제국(諸國)이 모다 예외(例外)가 업시 가입(加入)하게될 것 가트면 백랄서이(伯剌西爾)는 기아미리가(其亞米利加)에 재(在)한 평화적 이해(平和的利害)와 연맹복귀(聯盟復歸)를 고려(考慮)한 것이나 그가튼 기회(機會)가 업는 한(限)에는 복귀(復歸)의 의지(意志)는 업다고성 명(聲明)하엿더라’고 전했다. 여기서 ‘백국’이나 ‘백랄서이’는 브라질을 뜻한다.
우리나라가 지구 대척점 인근의 브라질과 처음 인연을 한 것은 일본 어선 선원 박학기 씨가 브라질에 이주한 19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한국전 정전협정이 끝나자 전쟁포로 76명은 최인훈 소설 '광장'의 주인공처럼 남과 북도 아닌 제3국을 택했고, 이 가운데 50명이 인도를 거쳐 브라질에 정착했다.

브라질은 축구의 나라답게 한국과의 본격적인 교류도 축구로 시작했다. 프로축구팀 마두레이라가 1961년 4월 방한해 서울선발팀과 친선경기를 벌인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종욱 육군 중령은 한백(韓伯)문화협회를 결성해 브라질 이민사업을 추진했다. 2대 한백문화협회장 정인규 대령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브라질에 영농 이민을 보내자고 건의해 재가를 얻어냈다. 한국인 교민이 많은 브라질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에게 축구얘기를 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 거기에서는 펠레를 마라도나, 베켄바워 등과 비교하는 일을 했다간 큰 곤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축구의 나라에서 펠레는 세계 최고 선수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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