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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의 사람 ‘人’] “배구 코트는 또 하나의 작은 사회다”... 현장과 이론을 겸비한 체육학 박사 김찬호 경희대 감독

2022-04-21 11:59


“블로킹은 점프 타이밍과 손모양이 아주 중요해. 상대가 공격하는 순간을 잘 읽지 않고 블로킹을 뜨면 공은 손에 빗맞고 나가 버려. 손 모양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블로킹을 성공하기가 어렵지.”

20일 경희대 수원 국제캠퍼스 체육관에서 벌어진 경희대와 홍익대의 연습경기가 끝난 뒤 김찬호(58) 경희대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날 경희대는 먼저 1,2세트를 18-25, 20-25로 내주고, 3,4세트를 25-20, 25-22로 만회해 세트 스코어 2-2로 홍익대와 무승부를 기록했다. 연습 경기 기록지를 분석한 김 감독은 경기에서 잘 되지 않았던 블로킹에 대해 팔을 들어 손모양까지 만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그는 “대학 선수들은 아직 완성체가 아니다. 잘 안되는 부분에 대해선 제대로 설명을 해줘서 바로 잡아줘야 한다”며 “선수들의 기량이 발전하는 것을 보면서 대학 배구 감독들은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대학배구에서 공부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대학 감독으로는 현재 유일한 박사 학위를 가진 지도자이다. 프로배구에선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 등이 박사 학위를 갖고 있지만 대학배구 지도자로는 그만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경희대 선수들에게 배구를 지도하면서 모교인 경희대 대학원에서 스포츠마케팅과 스포츠사회학 강의를 매주 진행한다.


그는 2003년 경희대 대학원 체육학과에서 ‘한국실업배구의 스폰서십과 기업애호도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은 체육학의 권위있는 연구논문집인 한국체육학회지에 실리기도 했다.

그는 현역 선수시절부터 ‘공부하는 운동선수’였다. 1983년 배구 명문 경북사대부고를 졸업하고 모든 대학에서 스카우트를 받았지만 대학으로 가지 않고 바로 실업팀 LG에 입단했다. 또 같은 해 일반 학생으로 경희대 체육학과에 입학했다. 운동을 하면서 학업을 병행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는 경희대 배구팀이 생기기 이전이었다. 경희대는 그가 졸업한 뒤인 1991년 배구팀을 창단했다.

실업팀에서 선수생활을 한 뒤 SK여자배구팀 코치, LG화재 배구팀 코치를 거쳐 2001년 경희대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21년째 모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 교직원 신분인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승부의 열정을 심어주는 ‘뜨거운 가슴’과 함께 지성을 일깨우는 ‘차가운 머리’를 가진 지도자라는게 배구계의 평가이다. 오는 27일 2020 KUSF 대학배구 U리그에서 조선대와의 첫 경기를 앞둔 김 감독을 초봄을 맞아 봄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경희대 수원 국제캠퍼스 체육관에서 만났다.


체육학 박사인 김찬호 경희대 배구팀 감독은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먼 훗날을 위해 선수들은 두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원 기자]
체육학 박사인 김찬호 경희대 배구팀 감독은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먼 훗날을 위해 선수들은 두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원 기자]


너의 꿈을 춤추게 하라’

이날 홍익대와 연습경기를 가진 경희대 선수들 유니폼 상의 뒤에는 이름과 등번호 아래에 이색적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너의 꿈을 춤추게 하라’라는 구호였다. 이것은 경희대 학생들의 배구팬 커뮤니티인 ‘KHU 발라볼’에서 올해 정한 캐치플레이즈이다.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멋지게 경기를 펼쳐달라는 주문이었다.

-선수들이 이 구호를 달고 달라진 점이 있나.

“자율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려는 모습이 볼 수 있다. 선수들이 서로 도우면서 보다듬으려 노력한다. 체력 훈련때나 실전 훈련 등에서 달라진 점을 느낀다.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올해 팀 목표를 어느 정도로 잡고 있나.

“일단 4강에 드는 것이 일차 목표다. 4강에 올라가야 우승도 노려볼 수 있다. 올해 각 팀 전력들이 엇비슷해 특정 팀이 독주하는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 해 U리그에서 4강에 들었던 만큼 올해도 그 정도의 성적을 예상한다. ”

-팀 전력의 변화가 있다면.

“지난 해 주전 대부분이 프로팀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현재 1학년을 주축으로 새로운 전력을 구축하고 있다. 아직 연습경기에서 손발이 잘 맞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팀 플레이가 안정될 것으로 본다.”

이날 홍익대와의 연습경기에서 국내 최장신 센터인 2학년생 조진석(2m16)이 주전으로 경기를 뛰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큰 키에 상하 몸균형이 잘 잡혀있지만 체중이 좀 가볍다는 느낌을 주었다. 홍익대 선수들은 높은 블로킹의 조진석을 피하기 위해 빈 곳을 찾느랴 애를 먹는 모습이었다.

-유망주 센터 조진석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본 것처럼 체중을 불려 파워를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웨이트 훈련을 많이 시키고 좋은 식단으로 영양 상태를 높혀줘야 한다. 앞으로 잘 만하면 국내 최고 센터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찬호 감독이 20일 홍익대와의 연습경기를 마치고 선수들에게 필요한 사항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정지원 기자]
김찬호 감독이 20일 홍익대와의 연습경기를 마치고 선수들에게 필요한 사항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정지원 기자]


“배구 코트는 하나의 작은 사회”


김 감독은 대학원생 수업 때 간간히 경희대 배구팀 경기를 참관하도록 한다. 배구 경기를 통해 조직 운영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배구는 포지션별 각각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점수를 올릴 수 있으며 승리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코트에서 벌어지는 배구 경기는 마치 작은 사회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어떻게 배구를 사회와 비유할 수 있나.

“배구는 팀웍 경기이다. 각 포지션이 자기 맡은 일을 잘 해야 원하는대로 경기를 할 수 있다. 배구는 3번의 기회를 갖고 득점을 올린다. 첫 번째 리시브가 잘못되면 두 번째 토스를 잘 해주면 된다. 만약 토스가 잘못되더라도 세 번째 마무리를 잘하면 된다. 위기를 잘 살리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사회나 조직생활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배구를 통해 인문학적 사고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선수들을 지도하는 교육관이 있다면.

“선수들에게 선수 이전에 인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경기력이 뛰어나도 남을 배려하지 않으면 팀에 해를 끼칠 수 있다. 경기력과 함께 인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평소 성실성과 신뢰성을 쌓아야 바른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수생활을 잘 했던 사람이 사회생활도 잘 할 수 있다. ”

-그동안 많은 선수들을 길러냈는데.

“20여년 이상 경희대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백여명 이상 제자를 배출했다. 제자들가운데 20여명 정도가 자주 연락을 해 온다. 특히 현대캐피탈 박상하는 자신의 세세한 일상문제까지도 상의를 하곤 한다. ”

김찬호 감독이 경기중 경기기록 분석판을 들고 고민하고 있다. [김찬호 감독 제공]
김찬호 감독이 경기중 경기기록 분석판을 들고 고민하고 있다. [김찬호 감독 제공]


“공부하는 운동 선수가 되자”


그는 선수들에게 ‘공부하는 운동 선수’가 될 것을 주문한다. 은퇴 이후에 각자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기본적인 학업과 함께 소양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도 현역 선수시절 운동과 학업을 병행한 것은 훗날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몇년 전부터 대학 선수들의 수업 참여를 의무화했는데.

“요즘 선수들이 학업와 운동을 같이 하느랴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 기량이 좋은 선수가 학업 성적이 안 좋아 원하는 대학팀에 진학하지 못하는 일도 생긴다. 대학에 들어와서 일반 학생과 함께 학과 수업 받아야 한다. 학업과 운동을 같이 하느랴 기본기가 예전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감이 있다. “

경희대 배구선수들은 오전에 수업을 받고 오후 2시반부터 5시까지 운동을 한 뒤 밤에 수업을 받는다. 주말에는 부족한 팀훈련을 집중적으로 갖는다. 대학배구 정상화를 위해 마련된 U리그는 대학팀 홈앤드 어웨이 경기를 주로 주중 수, 목, 금 수업이 없는 오후와 주말에 갖는다.

-선수들의 학업 성취도는 어느 정도인가.

“몇 년전 무릎 부상으로 조기 은퇴한 장도영 선수가 있었다. 키는 작은 편이지만 센터로 좋은 활약을 하다 대학 재학중 선수 생활을 그만뒀는데 정상적으로 대학교를 마치고 혼자서 유럽과 남미 등을 여행하면서 배구 이야기를 언론 등에 연재하며 좋은 귀감이 됐다. 그를 학교로 초청해 후배 선수들에게 은퇴이후의 생활 등을 전해주는 특강을 마련한 적이 있었다. 선수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

김 감독은 현역 선수시절부터 현재까지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배구 국가대표 출신인 엄한주(65) 성균관대 교수를 꼽는다. 엄 교수가 운동 능력도 뛰어났던데다 캐나다에서 체육 통계학 박사학위를 받고 체육학계에서 최고 실력과 귄위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자신도 한때 대학교수를 꿈꾸기도 했다. 김 감독은 비록 전임이 아닌 겸임 교수 신분으로 강의를 하고 선수들을 지도하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면서 산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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