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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의 사람 ‘人’] “명문팀은 없다.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은 팀이다.”...올 대학배구 시즌을 맞는 한양대 ‘골리앗’ 양진웅 감독

2022-04-19 07:27

18일 오후 한양대 체육관은 적막강산처럼 조용했다. 배구 연습장에는 선수는 보이지 않고 감독 혼자만이 나와 있었다. 이달 말 올 첫 배구대회인 U리그를 앞두고 있는 대학팀의 모습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선수들은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훈련에 열을 올리고, 감독은 선수들을 지도하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비단 한양대만의 낯선 풍경은 아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팀들은 물론 전국의 대학팀들 모두 공통된 상황이다. 학생 선수들이 정식 수업을 모두 받고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진웅(58) 한양대 배구팀 감독은 이날 가진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훈련여건과 환경이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몇년 전 이른바 ‘정유라 사태’ 이후 운동선수들의 수업 참여 의무화가 철저히 시행되면서 정규 교과수업을 모두 한 뒤에나 훈련이 가능하다”며 “우리 팀 같은 경우는 학기 중 평일에는 밤 7시반부터 10시까지 훈련을 하고, 주말에는 낮에 시간을 내 집중적인 훈련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양대는 특히 다른 대학보다 학생 선수들의 수업 참여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게 그의 말이다. 운동 선수의 출석인정 결석을 거의 허가하지 않는 학교의 엄격한 학사관리에 따라 정상적인 훈련을 밤시간을 이용해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생 선수들은 성적과 함께 경기력 관리를 함께 하는 이중적인 생활이 불가피하다는 얘기이다.

양 감독은 “낮에는 수업을 받아야 하고 밤에만 훈련하느랴 파김치가 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며 “하지만 이런 과정이 교육의 일환이라는 것을 선수들에게 말하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학교 생활을 하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했다. 오는 29일 U리그에서 명지대와 첫 어웨이 경기를 앞두고 있는 양 감독을 만났다.

양진웅 한양대 감독은 "현재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대학선수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현재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할 수 있도록 작은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정지원 기자]
양진웅 한양대 감독은 "현재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대학선수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현재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할 수 있도록 작은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정지원 기자]


“4
강에 들자”

2017년 한양대 감독으로 부임한 양진웅 감독은 5년째를 맞은 올해, 4강 정도에 드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일단 4강에 진출해야 결승에도 오를 수 있고, 우승을 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선수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선수들과 함께 세운 팀 목표인 것이다.

-올 팀 전력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레프트 박승수와 센터 양희준이 졸업해 OK금융그룹과 KB손해보험으로 빠져 전력 공백이 생겼다. 센터는 인창고 출신으로 여자배구 현대의 이다현의 동생 이준영이 신입생으로 들어와 어느 정도 공백을 메울 수 있지만 레프트진은 전력 마이너스가 제법 크다. 주전과 후보 선수들의 실력차를 좁히기 위해 훈련을 갖고 있지만 안정된 전력을 구축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기 위해 일단 4강 정도에 들어보자고 얘기했던 것이다. ”

-팀 훈련을 어떻게 해왔나.

“예전만큼 강도 높은 훈련을 할 수가 없다. 선수들은 선수 이전에 학생 신분으로 정규 수업에 빠질 수 없어 체계적인 훈련이 결코 쉽지 않다.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시간이 나면 틈틈이 개인훈련을 쌓고, 팀훈련은 주로 평일 밤이나 주말에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

-선수 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공부와 운동을 병행해야하는 선수들의 입장을 생각해 많은 소통과 코칭을 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적응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는 신입생 등 관리를 위해 신경을 더욱 기울인다. 보통 1학년 생활을 한 뒤 겨울 방학때 공부와 운동에 회의를 느껴 배구를 그만두는 학생이 매년 1-2명씩 발생한다. 배구부를 탈퇴하려는 선수는 일단 개인 면담을 해 선수의 고충을 듣고 선수 학부모들과의 상담을 통해 진로 문제를 협의한다. 1-2학년의 시간을 큰 문제 없이 보내는 선수들은 4학년까지 잘 적응하며 프로로 진출할 수 있다. 또 교육자로서 성실성과 자존감배양 등 선수들의 인성관리를 위해서도 주력하고 있다. 자칫하면 선수들이 자기 개발을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일상 생활을 잘 관찰해 필요한 부분을 조언해 주고 있다. ”

그는 한양대에서 일반학생에게 교양배구를 강의한다. 선수가 아닌 일반 학생들을 만나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는 “일반 학생들의 경우 중고등학교부터 운동과 담 쌓고 공부를 해왔다. 공부에 눌린 학생들이 환한 표정으로 공을 갖고 노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며 일반 학생들에게 좀 더 운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2019년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양대 배구팀 선수들이 양진웅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양진웅 감독 제공]
2019년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양대 배구팀 선수들이 양진웅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양진웅 감독 제공]


“명문팀은 없다‘ 평준화 시대의 대학배구


한양대는 과거 대학배구에서 알아주는 배구 명문팀이었다. 1980년대와 90년대 성균관대, 경기대 등과 함께 이른바 ‘빅3’를 이루며 전성시대를 누렸다. 하지만 2000년대들어 우승 횟수가 잦아들기 시작하더니 2010년이후 대회 우승을 한 번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배구가 평준화 현상을 보이며 팀들이 서로 물고 물리기 때문이다.

양진웅 감독은 부임 이듬해인 2018년 청양 전국대회와 2019년 U리그와 전국체전 등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코로나 감염증이 만연된 이후인 2020년 이후 우승을 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우승에 대한 욕구가 강하지만 전반적으로 대학팀 전력이 엇비슷해 정상에 오르는 것이 만만치 않다.

-예전 한양대는 최고 명문팀이었는데.

“과거에 비교하면 성적이 많이 미치지 못한다. 내가 부임하기 전에 이미 대학배구는 평준화 양상을 보였다. 전임 박용규 감독과 신춘삼 감독 시절 10여년간 전국 대회 우승 횟수가 1-2번에 불과했다. 지난 4년간 그나마 우승을 조금 더 많이 했던 것이다. 감독으로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싶지만 현재 대학팀들 전력이 거의 대등해 우승을 차지하는게 결코 쉽지 않다. 현재 대학팀들은 특정 명문팀이 탄생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

-선수 확보는 어떻게 하는가.

“이제 대학팀에서 사실상 사전 스카우트라는 것은 없다고 보면 된다. 예전 같으면 고교에서 유망주를 확보하기 위해 감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교 졸업생들이 6개 대학을 써서 대학 성적과 자신의 진로 환경 등을 고려해 원하는 대학을 최종 선택한다. 감독들은 선수들의 결정만을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지방팀이라고 해서 서울팀에 결코 불리한 환경도 아니다. 중부대 같은 경우 학교에서 정책적으로 배구팀을 육성해 선수 정원이 12명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때가 있는 우리 한양대보다 배 이상 많은 선수를 보유하며 선수 가동에 상당히 여유가 있는 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대학팀들은 어느 팀 하나 만만치 볼 대상이 없다고 봐야 한다. ”

-앞으로 대학배구의 전망은 어떻게 보는가.

“대학배구는 앞으로 지금보다 더 어려워 질 것이다. 고교 유망주들이 대학에 가지 않고 프로팀으로 바로 가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면서 선수 확보가 힘들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정지석 같은 경우 송림고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팀에 입단, 현재 최고의 스타로 활약하고 있다. 대학팀들은 선수들이 현재 대학에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하는 악재와 싸워야 한다. 교육 당국에서 운동선수들에게 공부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엘리트스포츠에서 재고를 검토해야 한다.”

현역 선수시절, 국내 최고의 2m2 ‘골리앗’ 레프트 거포

그는 현역 선수시절 2m의 장신 레프트로 화려한 명성을 날렸다. 이름 앞에 거인이라는 뜻인 ‘골리앗’이라는 별명이 따라 붙었다. 큰 키와 강한 어깨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강타는 파괴력이 매우 뛰어났다. 한양대와 현대자동차서비스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1983년부터 1990년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대표팀 레프트 주공으로 위력적인 경기를 펼쳤다.

-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원래 부산 동성중 3학년때까지 야구선수 생활을 했다. 중학생 때 1m91의 장신으로 1루수로 활동했다. 롯데 투수였던 김종석과 동기생으로 야구 명문교 부산고에 진학했는데 부산 동성중 여중근 교장님이 내 키를 보고 ‘배구를 하는게 좋겠다”고 권유해 뒤늦게 배구에 입문했다. 마침 문일고 배구팀이 새로 창단해 송만덕 감독님을 만나 본격적으로 배구 선수 생활을 하게 됐다. 배구협회에서 장신 유망주로 뽑혀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을 받으며 배구 기본기를 터득하고 우월한 신체조건을 잘 살려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

문일고 전성시대를 연 그는 문일고 선수 7명, 송만덕 감독과 함께 1983년 재창단한 한양대로 진학, 최고 스타의 길을 걸었다. 1983년 일본 NHK배에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했으며 대학 재학 중 현대자동차서비스에 당시 강남아파트 2채 이상을 살 수 있는 최고액인 억대 스카우트 금과 함께 친형의 취직 보장을 받고 입단계약을 맺었다.

-선수생활동안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대학 4학년 때인 1986년 제3회 대통령배 대회 결승전에서 현대자동차서비스와 풀세트 접전 끝에 2-3으로 졌다. 하지만 이때 최고의 경기를 치렀다고 생각한다. 국제경기로는 1984년 일본 재팬컵 대회서 동구의 강호 불가리아에게 첫 세트 2-11로 뒤지다가 사이드아웃제로 랠리를 끌어가며 고비를 넘기고 결국 3-0으로 셧아웃 시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경기를 중간부터 TV 생중계로 본 전두환 대통령이 우리 대표팀을 귀국 후 청와대로 초청, 격려해주기도 했다. ”

-김호철 감독과는 특별한 관계인데.

“김 감독님은 한양대와 현대자동차서비스 팀 선배로 나를 가장 아껴주신다. 오랫동안 가족 간에도 깊은 관계를 맺어 ‘김 감독님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 정도이다”라고 말 할 수 있다. 내가 어려울 때 따뜻한 격려와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

양진웅 감독은 ‘참 진(眞)’과 ‘수컷 웅(雄)’의 한자 이름을 갖고 있지만 의외로 슬하에는 딸만 3명을 두고 있다. 첫째 직장인, 둘째 모델(1m78), 셋째 대학생 등으로 전부 운동과는 다른 길을 걸고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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