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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69. 에이스의 눈물 속 9인 9색 대한민국 양궁 여왕.

2021-08-02 05:59

금메달의 주인공은 늘 달랐다. 항상 의외의 인물이었다. 전통처럼 이어진 여자 양궁의 올림픽 금메달 역사에는 그래서 에이스의 아픈 눈물 한 방울이 담겨있다.

역대 올림픽 여양궁 개인 금메달리스트. 사진 왼쪽 부터 LA의 서향순, 서울의 김수녕, 바르셀로나 조윤정, 애틀랜타 김경욱, 시드니 윤미진, 아테네 박성현, 런던 기보배, 리우 장혜진, 도쿄 안산.
역대 올림픽 여양궁 개인 금메달리스트. 사진 왼쪽 부터 LA의 서향순, 서울의 김수녕, 바르셀로나 조윤정, 애틀랜타 김경욱, 시드니 윤미진, 아테네 박성현, 런던 기보배, 리우 장혜진, 도쿄 안산.


양궁 여왕의 역사는 길다.

1984년 LA 올림픽부터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그리고 다시 2012년 런던 올림픽부터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도 금메달은 언제나대한민국 여 궁사의 차지였다.

1884년 LA 올림픽. 대한민국의 여 양궁 초대 챔피언후보는 김진호였다. 김진호는 한국 양궁의 개척자로 수년간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세계랭킹 1위 였다.

대적자가 없는 절대자의 위치였으나 정작 금메달을 쏜 것은 금시초문의 서향순이었다. 한 발 한 발에 승패가 바뀔 수 있는 양궁의 의외 성 탓이었지만 그 의외성이 한국 양궁의 전통처럼 이어졌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윤영숙, 왕희경, 김수녕이 출전했다. 왕희경의 우승이 더 많이 점쳐 졌으나 금메달은여고생 김수녕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서울 올림픽 2관왕 김수녕이 앞장섰다. 하지만 팀을 리드한 건 이은경이었다. 선배로서 서울 올림픽에 나서지 못한 한을 풀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금메달은 이번에도 의외의 인물인 조윤정이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김조순, 윤혜영, 김경욱이 나섰다.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다. 기존 강자들이 선발전에서 모두 나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려였다. 김경욱이 과녁 정중앙을 맞추는 퍼펙트 골드를 두차례나 기록하며 금메달을 획득, 4대 여왕에 올랐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김수녕이 돌아왔다. 올림픽 금메달만 3개인 여자 양궁의 레전드. 김수녕은 그 어렵다는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김수녕은 김남순, 윤미진을 데리고 시드니로 향했다. 또한 번의 정상을 바라보았으나 금메달은 여고생 윤미진이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시드니 2관왕 윤미진이 앞장섰다. 이성진, 박성현과 함께 였다. 윤미진의 올림픽 첫 2연패 설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여자양궁은 변함없이 연패를 허락하지 않았다.

금메달은 뜻밖의 박성현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박성현이 금메달에 다시 도전했지만 주최국 중국의 거센 방해 공작으로 결국 개인전 금메달을 놓쳤다. 84년 LA올림픽 이후 처음이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기보배, 이성진, 최현주가 나섰다. 기보배가 금메달을 쏘았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런던의 2관왕 기보배가 장혜진, 최미선과 함께 다시 나섰다. 같은 선수에게 연속해서 금메달을 준적이 없지만 이번은 다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였다. ‘묵은 장’ 장혜진이 금메달을 맞췄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세계랭킹 1위의 강채영과 장민희, 안산이 나섰다. 안산이 끝까지 살아남아 개인 금메달을 쏘았다.

안산은 랭킹라운드에서 1위를 기록, 김제덕과 함께 혼성 금메달을 딴 데 이어 여단체 금까지 쏨으로써 양궁 첫 3관왕이자 대한민국 첫 3관왕이 되었다.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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