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올림픽특집]8. 유도 한일전…한국 유도, 1984년 LA 올림픽 이후 급성장했으나 종주국인 일본 벽은 여전히 높아

2021-07-27 06:45

올림픽에 유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뒤 20년째인 1984년 LA 올림픽에서 한국 유도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건 안병근 선수
올림픽에 유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뒤 20년째인 1984년 LA 올림픽에서 한국 유도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건 안병근 선수
유도는 1882년 강도관을 창설한 가노 지고로가 일본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여러가지 무술들을 종합해 창시한 종목이다. 즉 일본이 종주국이다.

가노 지고로는 아시아 최초의 IOC 위원이자 일본체육협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지낸 '일본 근대체육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물론 가노 지고로가 유도을 창시할 때와 현대 유도와는 상당히 다르다. 처음에는 심신단련용이었으나 조금씩 변형을 거쳐 오늘날의 경기종목으로 발전했다.

유도는 당초 1940년 도쿄 올림픽에서 시범경기로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일본 군부의 압력으로 올림픽을 반납하는 바람에 24년이 늦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이후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빠졌다가 1972년 뮌헨 올림픽에 다시 정식종목이 돼 오늘날에 이르렀다.

여자 유도는 남자보다 28년 늦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첫 선을 보였으며 이 때부터 남녀 각 7개 체급씩 경기를 벌였다. 한국은 도쿄 올림픽에 남녀 14개 체급 가운데 13개 체급에 참가한다.

지금까지 올림픽(2020도쿄 올림픽 제외)에서 배출된 유도 메달리스트는 51개국 435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일본이 종주국답게 금 39개, 은 19개, 동메달 26개로 총 84개 메달로 가장 많고 한국은 금 11개, 은과 동메달 각 16개씩으로 모두 43개 메달을 수확했다. 이를 남녀별로 보면 남자가 금 9개, 은 13개, 동메달 11개였으며 여자는 금 3개, 은 3개, 동메달 5개다. 전체 메달수에서는 프랑스와 같지만 금메달에서 3개가 적어 메달 순위로는 3위에 올라 한국 유도의 세계적인 위상을 짐작케 한다.

한국 유도는 서구권이 불참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제외하고 꾸준하게 참가했으나 종주국인 일본의 위세를 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유도 1호 메달(동메달)을 딴 김의태와 1972년 유도 첫 은메달을 딴 오승립은 일본에서 유도를 익힌 재일동포 2세였다. 그리고 모두 일본 선수에게 패해 동메달과 은메달에 머물렀다. 그만큼 일본 유도 기술이 당시 한국 유도보다 한 수 앞선다는 증거였다.

한국 유도는 1984년 LA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의 강호로 거듭나면서 종주국인 일본을 위협하는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당시 금메달을 딴 하형주가 카 페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한국 유도는 1984년 LA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의 강호로 거듭나면서 종주국인 일본을 위협하는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당시 금메달을 딴 하형주가 카 페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한국 유도가 일본 유도의 컴플렉스를 벗어나는 데는 20년이 걸렸다.

일본을 누르고 첫 금메달을 따낸 주인공은 안병근이다. 안병근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71㎏급(라이트급)에 출전해 3회전에서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인 일본의 나카니시를 판정승으로 누른 뒤 영국의 브라운, 이탈리아의 조감바를 잇달아 이겨 대망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안병근이 금메달을 딴 뒤 사흘 뒤인 8월 10일에는 하형주가 95㎏이하급(하프헤비급)에서 2번째 금메달 소식을 전했다. 하형주도 역시 3회전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인 일본의 미하라 마사또를 절반 두번으로 한판승을 거두고 승승장구한 끝에 우승했다. 특히 하형주는 마사또에게 꺾기를 당해 오른팔 관절과 어깨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도 결승에 올라 브라질의 더글러스 비에리아를 꺾는 투혼의 승리를 거머 쥐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추석날에 금메달을 안긴 김재엽이 한복 차림으로 시상대에 서 눈길을 끌었다. 김재엽은 1984년 LA 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올림픽 2회 연속 메달리스트가 됐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추석날에 금메달을 안긴 김재엽이 한복 차림으로 시상대에 서 눈길을 끌었다. 김재엽은 1984년 LA 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올림픽 2회 연속 메달리스트가 됐다.
한국 유도가 일본을 앞지른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이었다.

서울 올림픽에서는 김재엽과 이경근이 나란히 금메달을 따내 금 2, 동메달 1개로 금 1개, 동메달 3개의 일본을 제쳤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일본의 호소가와 신지에게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던 김재엽은 서울 올림픽에서도 결승에서 맞붙을 것으로 관심을 끌었으나 호소가와가 의외로 무명의 미국선수에게 패하고 이경근도 1987년 세계선수권자인 일본의 야마모토가 결승전 상대인 폴란드의 파블로프스키에게 한판패를 하는 바람에 일본 선수와는 맞붙지 않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송대남은 당시 우리나이로 34살로 역대 한국 유도 사상 최고령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송대남은 당시 우리나이로 34살로 역대 한국 유도 사상 최고령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81㎏급 김재범과 90㎏급 송대남이 금메달, 66㎏급 조준호가 동메달을 따 금 2개, 동메달 1개로 금 1개, 은 3개, 동메달 3개의 일본을 눌렀다. 김재범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에서 패했던 올레 비쇼프(독일)를 다시 결승에서 만나 유효승으로 금메달을 따냈고 송대남은 8강전에서 세계랭킹 1위인 일본의 니시야마 마시시를 누른 여세를 몰아 최고령(당시 34세)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이와 달리 두 차례 노골드의 수모도 있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60㎏급 정부경과 81㎏급 조인철이 모두 결승에서 일본 선수에게 패해 은메달에 그쳤다. 정부경은 노무라에게, 조인철은 다키모토 마코토에게 각각 졌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66㎏급 안바울과 여자 48㎏급 정보경이 은메달에 그쳤다.

여자 유도가 처음으로 채택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김미정이 금메달을 딴 뒤 환호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여자 유도가 처음으로 채택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김미정이 금메달을 딴 뒤 환호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여자 유도는 처음 채택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72㎏급의 김미정이 결승에서 일본의 다나베에 심판전원 일치 판정승을 거두고 첫 금메달을 따냈으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최전성기를 맞았다.

여기서 66㎏급의 조민선은 일본 선수와는 맞붙지 않았지만 예선부터 결승까지 5게임을 모두 한판승으로 장식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56㎏급 정선용, 52㎏급 현숙희가 은메달, 78㎏급 김선영이 동메달을 따내 남자 유도와 똑같이 금 1개, 은 2개, 동메달 1개씩을 따냈다. 조민선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체급을 70㎏로 끌어 올려 2연속 금메달에 도전했으나 아깝게 동메달에 그쳤다.

김미정과 조민선의 금메달 이후 아직까지 여자 유도에서는 금맥이 터지지 않고 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78㎏급 정경미가 동메달을 딴 이후 노메달에 그쳐 있다.

지금까지 한국이 12차례 참가한 올림픽 유도에서 김재엽(1984년 은메달, 1988년 금메달), 조민선(1996년 금메달, 2000년 동메달), 조인철(1996년 동메달, 2000년 은메달), 조용철(1984년, 1988년 동메달) 등 4명이 올림픽 2회 연속 메달을 따냈다.

[올림픽 특집] 한일스포츠, 라이벌 대결과 克日

1. 한일스포츠의 탄생, 애국과 문명화

2. 일본에 질 수 없다...역대 올림픽서 나타난 반일 감정

3. 손기정과 일장기 말소사건

4. 남녀배구 한일전

5. 마라톤 한일전

6. 축구 한일전

7. 야구 한일전

8. 유도 한일전

9. 한·일스포츠 속의 양국 지도자

10. 진정한 극일, 승패보단 스포츠 정신

[정태화 마니아타임즈 기자/cth0826@naver.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쇼!이슈

마니아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