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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431] 왜 유로 스텝(Euro Step)이라고 부를까

2021-07-11 09:10

 유로 스텝은 2년 연속 NBA 정규리그 MVP에 오른 밀워키 벅스의 '그리스 괴인'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즐겨 활용하는 기술이다. 사진은 아데토쿤보의 경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유로 스텝은 2년 연속 NBA 정규리그 MVP에 오른 밀워키 벅스의 '그리스 괴인'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즐겨 활용하는 기술이다. 사진은 아데토쿤보의 경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농구 용어들은 원산지가 거의 미국이다. 농구 자체가 1891년 제임스 네이스미스 박사에 의해 만들어져 발전했기 때문이다. 미국농구용어사전에는 ‘Basketball’이라고 불리게 된 것부터 규칙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가 비교적 명확하게 설명돼 있다. 하지만 기술 용어들 가운데 간혹 출처가 미국이 아닌 것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로 스텝(Euro Step)이다. 단어 자체에 미국이 아닌 유럽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유로 스텝은 순간적으로 드리블을 멈추고 두 발을 지그재그로 엇갈리게 하는 교묘한 동작이다. 한 쪽 발을 들여놓았다가 다른 한 발을 이용 수평으로 몸을 비틀어 수비수를 따돌리는 것이다. 유로 스텝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면 수비수는 이를 막아낼 방법이 거의 없다. 대부분 속아 넘어가 무방비로 뚫리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리오넬 메시, 디에고 마라도나 같은 슈퍼스타들이 두 발을 사용해 수비수를 따돌리는 모습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국내 축구에서는 2002 한일월드컵 4강 주역 이영표가 이런 방법을 많이 활용했다.

유로 스텝에 유로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붙여 사용하게 됐는 지는 불분명하다. 미국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유로 스텝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은 2007년부터였다. 원래 유로 스텝은 유럽에서 수십년 전부터 유행하던 기술이었다. 세르비아 농구대표팀 코치 블라드 두로비치는 1960년대부터 유로 스텝 기술을 볼 수 있었다고 2018년 발간한 한 농구이야기 책에서 밝혔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유로 스텝을 대중화시킨 주인공은 1989NBA에 데뷔한 구소련 소속 사루나스 마르셜리오니스였다. 1964년생인 그는 리투아니아 출신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소련이 우승을 차지하는데 수훈을 세운 뒤 골든스테이트 월리어스 돈 넬슨 전 감독의 아들 도니 넬슨에 의해 당시 소련의 제재를 뚫고 NBA 진출에 성공했다.

그는 유럽 선수들은 미국 흑인 선수들에 비해 소프트하다는 인식을 깨고 2번째 스텝의 보폭과 꺾이는 각도를 크게 하며 상대 수비수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점수를 많이 올릴 수 있었다. 그는 골든스테이트에서 1992년과 1993올해의 식스맨’ 2년 연속 2위에 올랐으며 1997년 덴버 너키츠에서 은퇴할 때까지 통산 12.8득점을 기록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마누 지노빌리는 1999NBA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지명된 후 유럽 스텝을 본격적으로 유행시켰다. 그는 축구의 나라 아르헨티나 출신답게 부드러운 발동작으로 절묘한 기술을 발휘해 일부 선수들은 트레블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언듯보면 트레블링 일보 직전가지 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지노빌리는 이 기술로 많은 점수를 올렸으며, 그를 후원하는 나이키가 이를 활용한 영상을 만들면서 이 기술을 배우는 선수들이 크게 늘어났다.

NBA는 유로 스텝이 보편적으로 확산하자 2009년 유로 스텝을 합법화 시켰다. 2009년 이전 NBA 규정집에 따르면 선수는 한 발짝만 내딛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09년 ‘진행 중이나 드리블 완료 시 공을 받는 선수는 정지, 패스, 슈팅 등 두 단계를 밟을 수 있다’고 개정했다. 당시 ESPN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모든 리그가 명시적으로 두 단계를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후 제임스 하든, 크리스 폴, 야니스 아데토쿤보 등 현재 NBA를 이끌고 있는 주축 선수들이 유로 스텝의 기술 완성도를 크게 올려 놓았다.

국내 농구서는 SK 김선형이 유로 스텝을 가장 많이 구사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여자프로농구서는 KEB 하나은행의 김지영이 2016-17시즌 속공 상황에서 유로 스텝으로 상대를 제치고 더블클러치 스타일로 레이업을 시도해 농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유로 스텝은 용어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비록 농구의 발상지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NBA에선 가장 많이 활용되는 공격 기술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마치 김춘수의 대표적인 시 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의 꽃이 되었다는 싯구처럼 유로 스텝이라는 멋진 말이 생김으로써 인기를 끌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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