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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401] 식스맨(Sixth Man)은 어떻게 생긴 말일까

2021-06-03 07:25

식스맨은 보통 선발 라인업에 들지 못한 멤버 중 최고의 선수를 의미한다. 올 시즌 NBA 식스맨 상을 수상한 유타 재즈 조던 클락슨.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식스맨은 보통 선발 라인업에 들지 못한 멤버 중 최고의 선수를 의미한다. 올 시즌 NBA 식스맨 상을 수상한 유타 재즈 조던 클락슨.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식스맨(Sixth Man)은 말 그대로 6번째 선수를 의미한다. ‘Men’이라고 복수형으로 쓰지 않은 이유는 주전 5명에 들지 못하지만 팀에서 6번째로 뛰어난 선수라는 것을 명시하기 위한 때문이다. 만약 복수형으로 썼다면 식스맨은 스타팅 멤버 5명과 혼동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의미도 분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수형을 쓰면서 해석이 명확해 질 수 있었다.

식스맨이라는 말은 미국프로농구(NBA)가 인기를 끌기 전만 해도 ‘후보 선수’, ‘교체 멤버’ 등으로 불렸다. 하지만 식스맨이라는 말은 초창기 농구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기록됐다. 미국 온라인 용어 백과사전 메리엄 웹스터에 따르면 1918년 2월23일 펜실베니아주에서 발행되는 ‘패트리엇’지에서 ‘식스맨’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식스맨 자리를 놓고 시즌 내내 접전이 펼쳐졌다. 스튜어트는 대회 최다 식스맨 1순위로 출전했다’고 보도했다. 식스맨이 20세기 초부터 사용됐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증거이다. 하지만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 식스맨이 본격적으로 사용됐는 가는 분명하지 않다. 말이 어느 한 두 사람이 주도해 대중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독들은 경기 중 주전들이 지치거나 전술적으로 변화를 주고 싶을 때 주전들을 교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주전 5명만 가지고는 경기를 모두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전 5명도 중요하지만 식스맨 역할의 필요성을 대부분 감독들은 알고 있었다. 식스맨이란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미국에서는 50년대 중반부터였다. 농구 리그가 확대되면서 경기수가 많아져 다양한 선수가 필요해지면서였다. 전문적인 백업요원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식스맨을 전술적으로 가장 먼저 운용한 팀은 1950년대 보스턴 셀틱스였다. 레드 아워백(1917-2006) 보스턴 셀틱스 감독은 당시 밥 쿠지(1928년생), 빌 셔먼(1926-2013), 프랭크 램지(1931-2018) 등 뛰어난 가드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출전시간을 배분해 전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식스맨의 첫 전술적 활용이었던 것이다. 이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아워백 감독은 주전 선수들이 지칠 무렵, 램지 등을 기용해 경기 흐름을 바꿨다. 램지는 셀틱스에서 623경기를 뛰면서 경기당 13.4득점을 올리며 7번 우승을 차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식스맨을 보스턴 셀틱스의 전통으로 만들었던 아워백 감독은 11년간 보스턴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9번 챔피언에 올랐다. 그는 1965년 올해의 코치상을 받았으며 이 상은 1967년 그의 이름을 붙여 ‘레드 아워백 트로피’라고 상이름을 바꿨다. 1969년 농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그는 1970년부터 1997년까지 보스턴 셀틱스 회장으로 재임했다.

보스턴 셀틱스는 프랭크 램지에 이어 존 하블리첵(1940-2019)과 같은 전설적인 식스맨을 배출하면서 1960-70년대 8번 NBA 챔피언(1963-66, 1968, 69, 1974, 76)에 오르며 최고 명문팀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NBA서는 여러 출중한 식스맨들이 탄생했다. 이 가운데 케빌 맥헤일은 1980년부터 1993년까지 보스턴 셀틱스에서 식스맨으로 파워포워드로 투입돼 래리 버드와 로버트 패리시 등을 뒷받침하며 소속팀이 NBA 챔피언을 3번(1981, 84, 86) 하는데 큰 몫을 했다. 멕헤일은 NBA 역대 식스맨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 전성시대인 1990년대에는 토니 쿠크치가 식스맨으로 위력을 떨쳤다.

NBA서는 1983년부터 식스맨 상을 수여했으며 최초의 수상자는 필라델피아 76ers 우승멤버 바비 존스였으며 그 뒤를 이어 멕헤일이 2년 연속 수상했다. 2년 연속 이 상을 수상한 선수는 단 2명으로 멕헤일과 함께 데틀리프 슈렘프(91, 92)가 있다.

한국 농구서는 1980-90년대부터 식스맨을 본격적으로 운영했다. 1997년 출범한 KBL은 첫 해 김유택이 식스맨상 수상자를 받았다. KBL서는 연속 수상자나 2번 상을 받은 선수는 없다. 2013-14시즌 수상자 주희정은 신인왕, 정규시즌 MVP,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받았던 선수가 최초로 받았다. 2017-18시즌에는 주희정에 이어 김주성이 식스맨 상을 받았다. NBA와는 다른 한국 프로농구의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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