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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의 사람 '人] "태릉시대의 마지막 원장으로 모성애의 마음을 갖고 헌신적으로 봉사하겠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남윤신 신임원장

2021-05-29 08:56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은 창립 41주년이 된 국내 최고 권위의 스포츠국책연구기관이다. 1980년 12월 태릉선수촌에 스포츠과학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후 한국체육과학연구원, 한국스포츠개발원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름이 여러 번 바뀐 것은 시대적 역할과 환경 변화에 따른 때문이었다. 초창기 한국체육의 경쟁력이 낙후돼있던 악조건 속에서도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국가대표들이 좋은 성적을 올리며 국위를 선양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사상 최고인 종합 4위의 성과를 올린 뒤에는 엘리트체육의 과학화와 함께 국민건강체육향상에 기여하며 많은 연구성과를 올렸다.

대한체육회 산하 기관 스포츠과학연구소 시절, 서울올림픽에서 남자육상 1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던 벤 존슨(캐나다)의 약물복용사실을 밝혀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 세계 각계로부터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1989년 재단법인 한국체육과학연구원으로 명칭이 변경된 후 1999년까지 10년간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갖추며 독립적인 연구와 다양한 스포츠교육 프로그램으로 큰 성과를 올렸다.

1999년 국민체육진흥공단 기관으로 통합한 이후에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과학적 훈련을 지원하며 한국스포츠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여자역도 장미란과 수영 박태환이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10년대 이후는 국민체육진흥을 위한 체육정책 개발 및 지원, 스포츠산업 진흥 연구 및 지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2년에는 UNESCO 석좌기관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지난 25일 제14대 원장으로 남윤신(60) 덕성여대 생활체육학과 교수가 취임했다. 남윤신 신임 원장은 이날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3층 회의실에서 취임식을 갖고 2년 임기를 시작했다. 여성으로서는 제12대 박영옥 원장에 이어 두 번째로 원장을 맡게 된 남 원장은 숙명여대에서 스포츠생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체육정책학회 부회장, 문화체육관광부 국제경기대회 유치심사위원, 대한체육회 이사, 서울특별시체육회 이사, 스포츠 안전재단 이사 등을 역임, 체육현장과 정책분야에 대한 이해를 겸비한 전문가이다. 체육 각 분야별 박사급 연구원이 40여명 이상 있는 연구원을 이끌어나가는데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은 2023년 말 태릉시대를 끝내고 현재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인 올림픽공원 올림픽 콤플렉스로 자리를 옮긴다. 남 원장은 거의 반세기만에 태릉 청사를 마감하고 새로운 청사로 옮기기까지 마지막 원장을 맡게돼 책임과 역할이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임명장에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28일, 태릉선수촌 옆에 위치한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원장실에서 단아한 차림의 남 원장을 만났다. 원장실에는 체육 단체와 관계자들이 그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축하난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만큼 그가 평소 많은 체육 각계 인사들과 활발한 교류를 이루며 활동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달변가이면서도 민감한 정책적 사안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남윤신 신임원장은 "여성체육학자로서 섬세함과 자상함을 살려 연구원들이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지원 기자]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남윤신 신임원장은 "여성체육학자로서 섬세함과 자상함을 살려 연구원들이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지원 기자]


◇ “태릉시대의 마지막 원장으로 어머니의 모성애처럼 헌신적으로 봉사하겠다”


-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 연구기관장을 맡게 됐는데.

“지난 41년간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은 국내 최고의 스포츠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왔다고 생각한다. 국가체육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면서 스포츠산업 진흥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과거의 화려한 성과와 업적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앞으로 대한민국 스포츠 미래를 잘 이끌어 나가야 한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장기화로 인해 국민들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며 체육활동 참여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절실한만큼 우리가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이 막중하다고 생각한다.”

남 원장은 오래 전부터 스포츠정책과학원과 관계를 맺은 터여서 전혀 낯설지 않다고 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제11대 정동식 원장 재직 때 연구년 1년을 스포츠정책과학원 연구실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정 원장이 업무처리를 하는 것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면서 업무의 전문성과 행정 운영등을 알 수 있었다. 남 원장은 정 원장과의 인연이 앞으로 원장 업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2년후 태릉시대를 마감하고 올림픽공원으로 이전하는데.

“출범이후 처음 이전을 하는만큼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려면 주부들이 여러 살림살이를 정리하며 많은 변화가 생긴다. 수십 명의 연구원들이 있는 우리 연구원은 그동안 묵은 때를 벗기고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해야할 것으로 생각한다. 연구원들이 새로운 환경에 맞춰 나갈 수 있도록 어머니의 모성과 같은 마음으로 헌신적으로 일을 할 계획이다.”

-임기 중 운영 방안을 얘기한다면.

“그동안 잘 해온 조직이다. 내가 원장으로 부임했다고 갑자기 체제를 바꿔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동안 잘 해왔던 것은 더욱 잘 해나갈 수 있도록 미래 지향적인 자세로 봉사할 생각이다. 연구원의 대외적인 위상을 높이는데 나름 역할을 해야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

-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감독관청과 관리기관에 의해 연구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손상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국가체육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함께 손을 맞잡고 여러 정책과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맞는 방향이다. 그동안 국책 스포츠연구기관으로서 이러한 일을 잘 해왔다고 본다. 하지만 업무를 하다보면 정권에 따라서 정책방향으로 인해 필요한 경우 여러 과제들을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연구원이 국책연구기관으로 국가 기금에 의해 운영이 되기 때문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안에 따라선 협의를 통해 조정할 수도 있다고 본다.”

-스포츠과학, 스포츠정책, 스포츠산업 등 세 부분으로 연구영역이 나뉘어져있는데 임기동안 특히 중점을 둘 분야가 있는지.

“세 분야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스포츠과학은 팔과 다리같은 역할을 한다. 스포츠정책은 머리, 스포츠산업은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경중을 따질 수 없을 만큼 모두 중요한 분야이다. 1980,90년대 스포츠과학으로 엘리트체육의 경기력향상을 도모했다. 스포츠정책은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필요한 지원방안 등을 내놓아 많은 역할을 했다. 스포츠산업은 산업진흥과 연구지원을 위해 여러 노력을 해왔다. 앞으로 세 연구 분야가 고루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을 쓰겠다.”

◇ 역대 두 번째 여성 원장이자 스포츠생리학 전공 대학교수

덕성여대 생활체육과 교수로 재직 중인 남 원장의 전공 분야는 스포츠생리학이다. 운동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스포츠생리학은 체육학자들이 가장 많이 전공하는 분야이다. 스포츠과학과 연관된 학문이라 운동선수들에게 실용적인 지식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첫 여성 원장으로 재임한 제12대 박영옥 원장은 스포츠사회학 전공자로 주로 스포츠정책 분야에 많은 역할을 했다. 스포츠생리학 전공학자인 남 원장은 스포츠과학 분야에 적지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성체육학자로 역대 두 번째 여성 원장이 됐는데.

“앞으로 체육계에도 여성 전문가들이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여성이 필요한 부분이 체육 현장에 많이 있다. 연구원만 해도 여성 전문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본다.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꼼꼼한 자세는 연구 영역에서도 중요한 경우가 많다. 내가 원장으로 있으면서 실력있는 여성 전문가들의 기회가 많이 마련됐으면 한다. ”

-여성 체육전문가로 어떠한 경험을 갖고 있는지.

“덕성여대에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연구활동을 하면서 학생처장 보직을 맡아 관리자를 하기도 했다. 교수 뿐 아니라 학교 행정 책임자로 대내외적인 일들을 많이 해본 경험이 있다. 체육학자들의 학술 모임인 체육학회와 산하 학회 등에서도 연구활동 뿐 아니라 학자들간의 인적 교류도 많이 했다.”

-스포츠생리학자로서 연구분야에서도 많은 성과를 올렸는데.

“주로 여성 스포츠관계 분야를 많이 연구했다. 수백편의 논문과 저작이 있다. 연구원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별도의 개인 연구는 하지 않고 연구원 업무에만 주력을 할 생각이다. 원장으로 개인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좋은 모습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한다.”

 남편인 유상임 서울공대 교수와 해외 여행중 함께 한 남윤신 원장. [남윤신 원장 페이스북 캡처]
남편인 유상임 서울공대 교수와 해외 여행중 함께 한 남윤신 원장. [남윤신 원장 페이스북 캡처]


◇ 환갑맞은 주부 남윤신 “가정이 나의 힘”

남 원장은 유상임 서울공대 재료공학과 교수가 남편이다. 올해 환갑을 맞은 남 원장은 슬하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부군인 유 교수는 남 원장이 스포츠정책과학원 수장을 맡은 것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 “여성 체육학자로 쌓은 경험을 잘 활용하기에 잘 맞는 직책”이라며 응원을 했다는 것이다. 남 원장은 최근 큰 아들과 관련한 가정사를 들려줬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국내 한 기업체에 취직한 35세의 큰 아들이 독립해 자취생활을 하겠다고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다만 집 얻는 것부터 생활비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지고 주말에는 집에 들리라는 조건을 달았다. 큰 아들은 서울 천호동 부근에 몸 하나 누을 정도 크기의 조그만 오피스텔을 얻은 뒤 남 원장에게 사는 집을 보여주기가 민망스럽다며 집 근처까지만 안내하고 집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 원장의 엄격한 자녀 교육관을 엿볼 수 있는 일화였다.

-평소에 자녀들에게 엄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이는지.

“그렇지는 않다. 보통 엄마들처럼 자식들을 예뻐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하는 일은 철저히 스스로 하도록 가르친다. 아마도 큰 아들도 이런 엄마의 스타일을 잘 알아 스스로 독립적인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남 원장은 미국 유학을 떠난 남편과 함께 미국 아이오와주에 잠시 살면서 원래 공부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학도인 남편이 영어도 배울겸 공부를 해보는게 어떤가라는 권유를 하는 바람에 공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그동안 어머니로서 스스로를 평가한다면.

“공부 하느랴 바빠서 애들을 잘 챙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얘들이 잘 커줘 고맙게 생각한다. 내가 여성체육학자로 이만큼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가정의 힘’이 아닐까 싶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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