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포츠100년](60)끝내 피하지 못한 조선체육회 해산(하)조선체육회 산화

정태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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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1-01-2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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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체육회 해산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1938년 7월 5일자)
끝내 맞은 조선체육회 통한의 해산

1936년 8월 9일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하고 남승룡이 3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은 한반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손기정의 올림픽 제패 소식을 두고 조선 사람들은 “조선 민족의 생존을 알리는 표시이자 조선 민중의 잠자던 민족 자존의식을 고취시켰다”고 한 반면 일제는 “세계 스포츠 무대에 일본의 위세를 떨쳤다”며 선전의 대상으로 삼았다.

손기정의 올림픽 마라톤 세계 제패는 수많은 제2의 손기정을 양산할 조짐을 보여 주었다. 더욱이 1940년 제12회 올림픽이 도쿄에서 열리게 되면서 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조선 젊은이들에게는 “우리도 올림픽 무대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했다. 조선체육회도 손기정의 세계 제패에 고무되어 도쿄올림픽에는 우리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킨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조선체육회의 이 꿈이 결코 허황된 것은 아니었다. 역도의 김성집과 남수일은 세계기록을 경신하거나 육박하는 좋은 기록을 내며 올림픽 일본 예선전을 휩쓸고 있었고 권투에서도 박춘석, 서정권, 정복수, 강인석 등 쟁쟁한 파이터들이 일본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뿐 아니라 축구, 농구 등 구기 종목도 일본예선에서 얼마든지 우승할 수 있는 충분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해 한민족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과시하려던 이 야심찬 의욕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도쿄올림픽 자체가 유산됨으로써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조선체육회는 1937년 5월 21일 제18회 정기총회를 열고 윤치호 회장, 유억겸 부회장으로 신 집행부를 구성했으나 총회 석상에서 윤치호가 74세의 고령을 이유로 사의를 표했다. 임원들이 적극 만류를 했으나 윤치호 회장이 사의 의사를 번복하지 않아 결국 7월 2일 임시총회를 열어 부회장인 유억겸을 회장으로 윤치호를 고문으로 추대하며 집행부가 바뀌었다. 조선체육회에서 고문이 된 인물은 윤치호가 처음이었다.

이렇게 조선체육회가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세계 제패에 힘입어 집행부까지 바꾸면서 의욕에 차 있는 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한층 더 복잡해졌다. 복잡해졌다는 말보다는 일제의 침략 야욕이 세계를 전쟁의 와중으로 몰아갔고 그 여파가 한반도까지 미쳤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일제는 1937년 7월 7일 만주에 이어 중국 본토 침략에 첫발을 내디뎠다. 소위 노구교사건으로 지나사변이라 부르는 중일전쟁의 시작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단초가 된 전쟁이었다. 전쟁 수행을 위해 일제는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1938년 2월에는 지원병 제도를 공포했다. 말이 지원병이지 일제는 온갖 압박과 회유로 우리 젊은이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죽음의 전쟁터로 내 몰았다. 4월에는 기독교계 학교를 없애기 위해 조선교육령을 공포하여 학제를 개편하고 조선어교육도 폐지해 버렸다. 이어 5월에는 국가총동원령을 실시했다.

이런 살얼음판 같은 환경에서도 조선체육회는 1938년 5월 7일 제19회 정기총회를 열고 사업계획을 세웠으나 일제의 압박을 버텨내기가 어려웠다. 조선총독부 관리들은 조선체육회 간부들을 만나 각개격파 형식으로 조선체육회의 해산을 종용했다.

조선체육회 자폭이라는 괴로운 임무는 김규면 부회장, 김용구 상무이사와 총독부 학무국 관계자들의 모임에서 이루어졌다. 학무국 측은 국가 총동원령이 실시되어 준전시체제에 들어간 만큼 스포츠는 앞으로 올림픽 종목이나 승패를 가르는 운동경기는 폐지하고 전투력 증강을 위한 경기를 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즉 조선체육회가 굳이 존속하려면 앞으로 행군전장훈련, 총검술, 사격기본훈련, 수영 등 전기훈련이나 해양, 항공, 기갑, 전차 등 특기훈련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또 올림픽 종목 대신 중량운반경주, 수류탄 투척, 견인경기, 장애물통과경기, 행군경주 등 전투력 훈련 종목을 해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이렇게 되면 조선체육회는 일본의 무력증강에 앞장서는 단체로 탈바꿈하게 된다. 일본의 치밀하고 계획적인 말살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결국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진 조선체육회는 7월 4일 마침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동아일보는 1938년 7월 5일 자에서 ‘조선체육회는 금후 조선체육협회와 합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조선체육회 해산 소식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조선체육회 긴급 임시총회는 예정과 같이 4일 오후 4시30분부터 태평통 조선일보사 3층 소강당에서 회원 20명이 출석해 김규면 부회장 사회로 열린 바 부회장으로부터 오후 2시에 열린 이사회에서 가결한 다음 두 개 항의 가부를 물어 전원 만장일치로 조선체육회가 조선체육협회에 합체키로 가결된 뒤 동 5시 경에 원만히 폐회하였다.

일. 종래에 경성에 조선체육회와 조선체육협회의 2개 단체가 있었다. 그러나 현시(現時) 사정에 2개 단체의 각립(各立)한 존재가 필요치 아니한 고(故)로 합체함이 가(可)하므로 결의하다.

일. 진행방침은 고원훈, 박승빈, 김규면, 김동철 4명을 진행위원으로 선정하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비정치적인 성격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민족주의 운동 최후의 보루나 마찬가지였던 조선체육회는 마치 자폭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없어졌다.

[정태화 마니아타임즈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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