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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스토리]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왜 토트넘 훗스퍼 팬이 됐을까

2021-01-18 15:58

토트넘 훗스퍼 손흥민이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토트넘 훗스퍼 손흥민이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83)가 국내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토트넘 훗스퍼 팬이라고 말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당시 기사는 사회학자로서 변화무쌍한 국제관계와 사회적 흐름을 듣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눈길을 끌었던 것은 세계적인 석학인 그가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열렬 팬이라는 사실이었다는 점이다. 국내 주요 대학 사회학과는 물론 교양과목 등에서 그가 펴낸 ‘현대 사회학’은 주요 교재로 사용될 정도로 학문적 성과가 대단했던만큼 그가 축구광이었다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가 토트넘을 좋아했다는 것이 결코 빈 말이 아니었음은 이후 여러 그의 행적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는 세계적인 학자로서 주목할만한 논문과 책을 발표하면서 후일담으로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털어놓았다.기든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마땅한 놀 거리도 없이 스포츠라고는 축구만을 좋아했던 소년이었다. 그는 1938년 런던의 북쪽 변두리 애드먼턴의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떠돌이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많이 살던 거주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런던 지하철 공사장 노동자였다.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자란 그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했다.

어릴 적 최고의 기억은 집에서 가까운 토트넘 훗스퍼의 홈경기를 보러가는 것이었다. 7살 때 아버지를 따라 우연히 보러간 토트넘 경기는 세계적인 대학자가 된 이후에도 가장 멋진 추억으로 남았다. 런던의 중심부에서 비록 멀리 떨어진 외진 동네였지만 그의 고향은 토트넘 축구 경기로 인해 그의 정신적 자양분의 뿌리가 됐다.

런던 토트넘 옆동에에서 자라 토트넘 훗스퍼 팬이었던 세계적인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
런던 토트넘 옆동에에서 자라 토트넘 훗스퍼 팬이었던 세계적인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


명문 캠브리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로 자리를 잡은 그는 고향이 생각 나면 비록 친척들은 하나도 없었지만 토트넘 축구 경기를 찾아가서 보며 옛 시절을 떠올리고 했다. “토트넘 경기를 보면 옛날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가슴이 두근거렸다.경기가 끝나고 토트넘 경기장을 떠날 때면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런던경제대학원 석사논문으로 ‘영국의 스포츠와 사회’라는 논문을 썼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축구를 소재로 썼다. 근대 스포츠의 발상지인 영국의 사회문화적 계층구조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논문에서 기든스는 중산층 스포츠인 럭비는 원래 경쟁적이지 않았던 반면 노동자 등 하층계급 스포츠였던 축구는 늘 경쟁적이었다고 밝혔다. 부르주아는 개인주의적이고 경쟁적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경쟁보다는 규율과 질서를 강조하는 럭비를 선호했고, 프롤레타리아는 집단 환경에서 개인을 내세울 수 없기 때문에 축구를 좋아하며 경쟁성을 지향했다는 것이다. 그의 분석은 사회적, 계층적 차이로 인해 ‘럭비는 위계적이지만 축구는 민주적이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영국에서 파생된 럭비와 축구 등 근대스포츠는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팽창으로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으나 영국에서의 태생적 성향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럭비가 영연방 국가에서 주로 성행하며 ‘백인스포츠’라는 지엽성을 면치 못한데 반해, 축구는 흑백이 함께 즐기는 보편적인 세계적인 종목으로 자리잡았던 것은 이런 특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회학자로서 비판적인 관점을 지향하는 그로서는 당연히 계층지향적인 럭비보다는 보편지향적인 축구가 더 마음에 쏠린 것으로 보인다. 그가 국내 모 신문에 자신이 토트넘 팬이라는 사실을 밝혔을 때만 하더라도 축구를 좋아하는 학자라는 정도로 받아들였다. 토트넘의 주력 선수로 자리를 잡은 손흥민의 뉴스를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기든스의 토트넘 축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일반인의 개인적 삶과 사회적 변화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갖게 해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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