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포츠 100년](51)마라톤이야기⑫베를린올림픽 성화는 타오르고

정태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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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12-0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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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아테네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스피로스 루이스가 사상 처음으로 성화 채화를 한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성화를 들고 메인스타디움에 입장하고 있다.
베를린 올림픽의 성화는 타오르고
10만 명을 수용하는 원형 스타디움에서 1936년 8월 1일 요란한 팡파르와 함께 개막된 베를린올림픽은 나치 독일이 게르만 민족의 위대함,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엄청난 규모와 조직으로 치러졌다.

베를린올림픽은 나치의 선전장으로 정치색을 드러냈지만 웅대한 스케일, 과학적인 운영, 전설적 영웅 탄생 등으로 근대올림픽을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로 발전시키는 촉매가 되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그리스 아테네에서 성화가 채화돼 유럽을 순회했고 라디오 중계도 시작했으며 올림픽 기록영화는 역대 최고 걸작이란 평가를 받았다.

올림픽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면서 베를린에 모인 세계 각국의 언론들의 관심은 누가 올림픽 최고의 영예인 마라톤의 월계관을 쓸 것인가에 모아졌다.

대회를 앞두고 일본 선수단에서 기록 평가회를 갖는 모습을 본 미국의 로버트 슨 총감독은 “일본 마라톤 수준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높다. 지금 기록이라면 2시간26분대는 가능하고 이 기록이라면 우승은 문제없을 것이다. 마라톤은 1년에 한번 최고의 컨디션으로 뛸 수 있는 어려운 운동이다. 무리한 훈련으로 오버워크를 해 레이스를 망칠 수도 있다”도 분석하기도 했다.

또 미국의 스타일즈는 “마라톤은 올림픽 전 경기를 통해서 가장 웅장한 경기로 절대적인 흥미를 끌고 있다. 인간의 위대한 힘을 보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감격하게 된다. 마라톤 우승자의 희열은 동시에 모든 인류의 희열로 번진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마라톤 우승을 예상했지만 맞은 적은 별로 없었다. 이것이 더욱 흥미를 느끼게 한다”며 마라톤 레이스를 다음과 같이 예상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지난 대회 우승자 자발라를 최강의 우승후보로 꼽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자발라처럼 투지 좋은 선수는 보기 어렵다. 게다가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어 우승이 기정사실인 듯 호언하고 있다. 좀 지나친 이야기지만 90% 정도는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때 자발라는 20세였지만 지금은 24세로 체력과 운영면에서 최적격의 상태다. 그의 최근 기록을 보면 기록단축을 자신할 만하고 코스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10000m 기록은 로스앤젤레스에서는 31분19초였는데 이곳에 와서는 20여초 빨라졌다. 이제까지 이런 선수는 없었다.

그런데 자발라가 가장 경계해야 할 선수는 일본의 손기정이다. 그는 2시간26분대의 기록을 갖고 있으며 일본 선수들은 모두 2시간30분대 기록이다. 모두들 일본의 마라톤 거리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 선수들이여, 노여워하지 말라. 2시간26분이라는 기록은 너무 훌륭한 것이어서 도저히 그대로 믿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손기정은 코스에 익숙하지 못하고 스피드도 자발라에 뒤지는 것 같다. 그가 위협적인 존재일망정 우승은 힘들 것이다. 나는 자발라, 손기정, 키라아키레스(그리스), 하퍼(영국), 토비넨(핀란드), 시오아쿠의 순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렇게 대회 분위기가 무르익고 마라톤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아지자 사토 코치는 더욱 몸이 달았다. 사토는 “마라톤에서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 지면 할복하겠다. 꼭 이겨야 한다. 부탁한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당부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을 항상 입에 달고 다닌 정도로 선수들에게 심한 압박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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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출발하는 손기정
마라톤 출발 총성은 울리고
8월 9일 오후 3시2분. 27개국 56명이 메인스타디움 육상 100m 출발선에서 3열로 모인 가운데 마라톤 출발 총성이 울렸다. 손기정과 남승룡은 3번째 열에서 출발했다.

마라톤 행렬은 마라톤 탑을 통과해 트랙을 300m를 달린 뒤 올림픽 종탑을 나서 스타디움 남쪽으로 거의 한 덩어리가 되어 10만 명의 관중들이 내지르는 함성과 함께 스타디움을 빠져 나갔다.

스타디움을 빠져나가자 말자 자발라가 마치 단거리선수처럼 놀라운 스피드로 치고 나갔다. 선두에 나선 자발라의 4㎞ 기록은 13분4초2. 대단히 빠른 기록이다. 그 뒤를 디아스(포르투갈), 브라운(미국), 하퍼가 뒤를 따랐다. 장거리 왕국 핀란드에서 출전한 3명은 나란히 달리며 서로 보조를 맞추었다. 후미그룹에서 호흡을 조정하던 손기정은 5㎞ 지점을 벗어나면서 서서히 순위를 끌어 올리며 5번째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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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과 하퍼가 나란히 보조를 맞추어 달리고 있다
여전히 선두인 자발라의 10㎞ 기록은 32분30초. 이 기록대로라면 2시간 16분대도 가능하다. 이 10㎞ 지점을 지나면서 손기정은 우승후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하퍼와 나란히 섰다. 키가 크고 다리가 긴 하퍼는 성큼성큼 스피드도 좋았다. 손기정이 하퍼를 제치려고 하자 하퍼는 “슬로우, 슬로우”라고 말을 걸어왔다. 서로 경쟁을 하면서도 손기정의 오버페이스를 걱정한 진심어린 충고였다.

18㎞에서 자바라의 상태는 더욱 양호해 정확하게 1시간째 선두에 섰고 2분 2초차로 브라운, 그리고 2위와 16초차로 하퍼와 손기정이 나란히 달렸다. 이렇게 서로 보조를 맞춰가며 뛰는 동안 손기정과 하퍼는 순식간에 앞서 달리고 있는 브라운을 제쳤다. 이제는 앞에 자발라 뿐이었다.

선두 자발라가 반환점을 돈 시간은 1시간11분29초. 반환점을 돌아 나오는 자발라의 얼굴은 오버페이스 기미가 보일 정도였고 눈은 초점이 흐려 있었다. 손기정과 하퍼는 선두 자발라와는 1분 차이로 나란히 반환점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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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올림픽 경기중 손기정이 물을 마시는 장면
그리고 반환점을 돌아 조금 지나고 나니 남승룡이 보였다. 후위 그룹에 속해 있던 남승룡이 어느새 앞서가던 경쟁자들을 하나씩 따라 잡아 8위로 올라섰다. 남승룡은 지친 것 같지 않았다. 워낙 막판 스퍼트가 좋아 앞서 가는 선수들을 제칠 능력이 충분한 남승룡이었다.

직선으로 뻗어 있는 약 10㎞나 되는 자동차도로의 중간쯤인 25㎞ 지점에서도 선두는 여전히 자발라였다. 이때가 자발라는 1시간23분17초였고 그 뒤를 1분32초 뒤져 손기정과 하퍼가 추격했다. 손기정은 여기서 조금씩 스피드를 올리며 하퍼를 따돌리고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선두 자발라를 따라 붙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직선도로이기는 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자발라의 하얀 정구 모자를 따라가는 것이 손기정의 목표였다. 강렬하게 내려 쐬던 태양이 서쪽으로 서서히 멀어져 가는 가운데 손기정의 레이스는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정태화 마니아타임즈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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