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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41. 백세출의 최고 거포 김연경

2020-11-16 07:10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

김연경(1988년생)은 대한민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터키에서도, 중국에서도 똑같이 ‘백세출’의 스타였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우승국의 선수가 아니면서도 MVP로 뽑히고 최고득점을 기록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선수이다.

[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41. 백세출의 최고 거포 김연경


김연경의 포지션은 공식적으로 레프트이다. 하지만 그다지 의미가 없다. 여자선수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백어택을 ‘생활화’한 선수로 후위에서 공격할 땐 좌,우, 정중앙을 가리지 않고 뛰어오른다.

하지만 이 백세출의 천재도 출발은 시원치 않았다. 운동신경은 나쁜 편이 아니었지만 키가 문제였다. 원곡중학교 3학년 때의 키가 170cm 정도. 그래서 안산서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지만 세터 아니면 리베로였다.

운동을 계속 해야 할 것인지를 의심할 때 쯤(수원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키가 갑자기 자라기 시작했다. 고 1때 10cm이상 크더니 졸업할 때는 20cm 넘게 자랐다. 세터와 리베로를 하며 감각을 익힌 터에 높은 키까지,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초고교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2005년 11월 일약 국가대표선수로 뽑혔다. 소속팀인 흥국생명과 태릉을 오가며 바쁜 1년을 보냈다. 데뷔 첫 해의 무리로 인해 3년 여간 풀타임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2006년 5월엔 오른쪽 무릎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고 도하 아시안 게임 때는 왼쪽 발바닥 통증에 시달렸고 2006~2007 시즌 이후엔 왼쪽 무릎 연골 파열로 인한 부상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다.

김연경은 하지만 아픈 중에도 흥국생명과 국가대표팀에서 주공으로 뛰었다. 무리였다. 그 때문에 부상이 쉽게 낫지 않아 힘들었지만 성격상 자신의 몸 관리를 하느라 팀을, 국가대표경기를 모른 체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결국 2006~2007 시즌 흥국생명의 2년 연속 통합 우승을 이끌며 3년 연속 공격상과 정규리그 MVP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 최종 예선을 앞두고 무릎 연골이 파열, 또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그 해를 시름 속에 보냈지만 그것은 다시 날기 위한 꿀 같은 휴식기였다. 약속 된 2009년, 김연경은 시즌 챔피언 결정전 MVP를 뒤로 하고 일본으로 날아갔다. JT 마블러스와 2년 계약, 프로 배구 출범 후 처음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여자 선수가 되었다.

기대와 우려 속에 시작된 일본 V리그. 김연경은 그곳에서도 거침없었다. 처음부터 주전으로 나서 경기 당 평균 24.9점을 올리는 활약으로 전년도 하위권(10팀 중 9위)이었던 JT 마블러스를 시즌 우승으로 이끌었다. 특히 팀은 개막전부터 25연승을 기록했다.

일본 V-프리미어리그의 다트카와 미노루 가덴소 에어리비스 감독은 김연경을 “일본에서도 100년에 한 번 나오기도 힘든 선수”라며 극찬했다.

2009년의 국제무대 성적 역시 특급이었다. 8월의 월드그랑프리에서 팀은 1승8패로 최하위를 했지만 김연경은 179득점으로 예선 득점 1위를 했다. 아시아선수권과 월드그랜드 챔피언스컵에서도 김연경은 득점 1위를 했다.

불과 3년여의 활약으로 세계적인 선수가 된 김연경의 성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졌다. 일본의 JT 마블러스 (2009년~2011년), 터키의 페네르바흐체 SK (2011년~2017년), 중국의 상하이 (2017년~2018년), 다시 터키의 엑자시바시(2018년)를 전전했고 그 사이 ‘귀화유혹’도 많았다. 하지만 그에게 국가대표는 언제나 대한민국뿐이었고 그래서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 날아와 분골쇄신했다.

김연경은 2012년 터키 리그 페네르바흐체 SK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2년 계약을 했다. 그러나 FA자격문제가 걸렸고 국제연맹의 계약무효판정으로 졸지에 미아가 되었다. 그 때문에 오랜 시간 방황을 했지만 여론과 팬들의 끈질긴 이슈화 등으로 국회까지 나서 움직이자 배구협회가 결국 국제 이적 동의서를 발급하게 되었고 2014년 2월 7일 국제배구연맹이 최종 결론을 냄으로써 김연경은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해 열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여자배구를 정상으로 이끈 김연경은 2015년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 2016년 리우 올림픽, 2017년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 등에서 ‘Best Outside Spiker’로 선정되기도 했다.

2020년 다시 돌아와 흥국생명을 연승가도에 올려놓은 김연경. 2005년 만 17세에 태극마크를 달았으니 국가대표 경력만 15년이다. 2번의 올림픽(2012 런던, 2016 리우데자네이루)과 3번의 아시안 게임(2006 도하, 2010 광저우, 2014 인천)에 출전한 그의 마지막 꿈은 세 번째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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