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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노트] 내가 만난 '스포츠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삭막한 황무지였던 한국스포츠를 풍요로운 대지로 만든 거인

2020-10-26 11:26

2000년 9월 시드니 올림픽대회 기간에 IOC 본부 호텔에서 열린 KOC리셉션에 참석한 남북한 IOC 위원들이 건배하는 모습.왼쪽부터 이건희 IOC 위원, 장웅 북한 IOC 위원, 김운용 IOC 위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2000년 9월 시드니 올림픽대회 기간에 IOC 본부 호텔에서 열린 KOC리셉션에 참석한 남북한 IOC 위원들이 건배하는 모습.왼쪽부터 이건희 IOC 위원, 장웅 북한 IOC 위원, 김운용 IOC 위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7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으면서 수십년전 이 회장을 만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회장을 직접 대면한 것은 2차례였다. 모두 스포츠와 관련한 일로 만났다. 첫 번째는 1990년 9월 베이징 아시안게임 때였다. 1992년 한·중 수교체결 2년전에 열렸던 베이징 아시안게임은 한국이 스포츠를 통해 중국과 결정적으로 가까워진 기회를 만들었다. 당시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은 1987년 세상을 떠난 선친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삼성 경영권을 물려 받아 한창 그룹 경영에 매진할 때였다. 삼성그룹은 지금처럼 세계적인 일류 기업이 아니었다. 당시는 국내서 현대, 대우그룹과 재계 서열을 놓고 경쟁을 하던 무렵이었다. 이 회장은 중국 시장의 무한한 잠재력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 베이징을 찾으면서 마침 아시안게임을 취재하는 프레스 센터 국내 언론 부스를 방문했다.

이 회장은 당시 대한레슬링협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김영남, 한명우 등 2명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며 한국레슬링을 세계적인 강국으로 끌어 올리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룹 관계자 등과 함께 프레스 센터를 찾았던 이 회장은 “수고 하십니다”라며 취재진들을 격려하며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잠깐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공적으로 바쁜 그룹 회장이 직접 프레스 센터를 방문해 스포츠 기자들을 직접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 만남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프레스센터에서 이루어졌다. 이미 삼성그룹은 일본 소니와 경쟁을 할 정도로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이건희 회장은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개인자격으로 IOC 위원이 된 국제적인 인물로 자리를 잡았다. 삼성전자는 미국 모토롤라를 제치고 IOC와 올림픽 파트너가 돼 시드니올림픽을 후원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10년전 처음 만날 때보다 몸이 많이 수척해 있었다. 1999년 미국 텍사스의 MD앤더슨 병원에서 폐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이었다. 다소 걷는 것이 불편해 보였지만 이 회장은 취재 부스를 직접 방문해 국내 취재진들에게 고마움을 표명했다. “항상 수고가 많으십니다. 삼성전자 기사를 잘 내주셔서 감사합니다”며 직접 기자의 손을 잡아주고 따뜻한 말을 건넸다.

시드니 올림픽서 국내 기자들은 올림픽 파트너가 된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대규모 스포츠마케팅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국민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다. 시드니 올림픽 경기장과 시드니 시내 곳곳에 삼성전자 로고와 깃발이 내걸렸다. 이건희 회장이 프레스센터를 직접 방문해 기자들을 직접 만난 것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미 세계적인 거물인사가 돼 굳이 기자들을 만나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지만 그는 10년전처럼 프레스센터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이 회장의 동정은 언론 보도를 통해서나마 접할 수 있었다.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을 때, 몸이 불편한 이 회장이 주위의 부축을 받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TV 생중계에서 볼 수 있었다. 이 회장이 눈물을 흘린 것은 국내에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문제로 사법 처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그동안 헌신했던 한국스포츠 발전에 역사적인 업적을 세워 감읍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회장은 스스로 스포츠를 사랑하면서 한국스포츠의 세계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거인이었다. 그는 떠났지만 삭막한 황무지 상태였던 한국 스포츠를 풍요로운 땅으로 만든 기적적인 성과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부음을 접하면서 들었던 단상이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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