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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스토리] 세계 최강 한국여자골프, 이건희 회장의 ‘골프 사랑’이 원동력이었다

2020-10-25 13:51

 최근 LPGA 메이저 대회인 KPMG 위민스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김세영을 비롯한 한국여자골프 선수들이 LPGA에서 최강국으로 올라서는데는 고 이건희 회장의 남다른 골프사랑이 큰 힘이 됐다.
최근 LPGA 메이저 대회인 KPMG 위민스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김세영을 비롯한 한국여자골프 선수들이 LPGA에서 최강국으로 올라서는데는 고 이건희 회장의 남다른 골프사랑이 큰 힘이 됐다.
오늘날 세계 최고를 호령하는 한국여자골프 뒤에는 고 이건희 회장의 뜨거운 골프 사랑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1990년대 말 세계 골프의 변방국이던 한국여자골프에 박세리라는 걸출한 스타를 배출시키며 일약 중심국으로 도약하게 만들었다. 삼성 스포츠단에 ‘세리 팀’ 프로젝트를 가동시켜 박세리에게 전폭적원 지원을 쏟아부어 LPGA 대회를 단순에 정복토록 한 것이다.

1995년 8월초 필자는 일간스포츠 골프 담당 기자로서 삼성그룹이 당시 공주여고 3년생으로 국내 여자프로골프대회를 석권하던 박세리의 공식 스폰서를 맡아 세계적인 선수가 될 때까지 후원한다는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당시에는 수십억대로만 후원 금액을 밝혔지만 후에 확인된 바로는 수백억원대의 파격적인 액수로 삼성그룹은 박세리를 지원했다.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주력했던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의 세계화 작업의 일환으로 본인이 IOC위원에 임명되는 것과 아울러 한국여자골프의 경쟁력을 본격적으로 키웠다. 이건희 회장은 1996년 근대올림픽 100주년 기념대회인 애틀랜타 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IOC 총회에서 개인자격으로 IOC 위원으로 당선됐다. 이건희 회장은 1997년 미국의 모토롤라 대신 삼성전자를 IOC의 올림픽마케팅 파트너로 합류시켰다. 박세리를 세계 최고의 골프 교습가인 미국의 리드베터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해 집중적인 수련을 받도록 한 것도 이 회장의 지시사항이었다. 이 회장은 박세리를 직접 그룹 영빈관인 승지원 등으로 초청,, 식사를 함께 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건희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박세리는 1998년 US오픈에서 연장전까지 치르는 명승부 끝에 ‘맨발 투혼’을 발휘하는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주며 한국선수로는 첫 메이저대회 우승이라는 역사적인 성과를 이뤄냈다. 세계 정상권 선수로 발돋음한 박세리는 은퇴할 때까지 LPGA 대회에서 무려 25승을 올려 LPGA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한국의 첫 번째 선수가 되기도 했다.

한국여자골프는 박세리가 LPGA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을 기회로 유망주들이 박세리의 뒤를 이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사상 첫 올림픽 여자골프 금메달을 따내고, 메이저 대회에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박인비는 박세리를 보고 ‘하면 되겠다’는 자신감을 골프를 시작한 대표적인 선수이다. 박인비는 이른바 ‘박세리 키드’의 선두주자였다.

박인비에 이어서 지난 해 US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정은, 올해 메이저대회인 KPMG 위민스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안은 김세영 등을 비롯한 LPGA 선수들과 국내 20대의 어린 선수들도 박세리의 영향을 받아 골프채를 잡았다.

고 이건희 회장은 개인적으로 골프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집착력이 뛰어났던 이 회장은 평소 골프 경기와 장비 등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골프 스윙을 철저하게 연마하고 퍼팅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던 이 회장은 베스트 스코어가 72타 이븐파일 정도로 골프 실력도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를 일본 소니 등 세계적인 전자통신회사등을 제치고 미국의 애플과 나란히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대한민국 및 세계 최고기업의 일원으로 만든 고 이건희 회장은 여자골프를 통해서도 특유의 집착력을 발휘하며 세계 정상의 발판을 만들었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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