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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손자병법] 43. 이희수. 서정환 감독의 선즉제인

2020-10-13 06:51

-선수를 쳐서 남을 제압하다. 선수를 치면 남을 제압할 수 있으나 후수가 되면 제압당한다. 사기 항우본기.

1점 승부. 양팀 덕아웃이 바쁘게 돌아갔다.

한화 이희수 감독. “마지막 기회다. 여기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승산없다. 처음부터 밀어붙인다. 상대가 미처 준비하기 전에.”

삼성 서정환 감독. “강수를 둘까? 그러진 않을 거다. 그러나 철저하게 대비하자. 자칫 밀리면 회복하기 힘드니까.”

1999년 4월 3일 삼성-한화의 시즌 개막전. 감독 2년차지만 초보감독을 면치 못한 서정환감독과 오랜 코치 생활을 거쳐 정식 감독 데뷔전을 치르는 이희수 감독은 초강수를 두며 개막전 승리를 노렸다.

[프로야구 손자병법] 43. 이희수. 서정환 감독의 선즉제인


두 팀 모두 에이스를 선발로 내세웠다. 삼성은 김상진, 한화는 정민철이었다. 팽팽한 투수전이었다. 8회까지 1-1. 서정환 감독은 7회 김상진이 선두타자에게 2루타를 맞자 바로 김현욱으로 바꾸었다.

김현욱은 2이닝을 잘 막았다. 그러나 9회초 흔들렸다. 선두 타자 로마이어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백재호에겐 중전안타를 맞았고 고의사구까지 내줘 1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다. 서정환감독은 만루를 염두에 두고 준비시켰던 특급 마무리 임창용을 지체 없이 투입했다.

승패를 가름하는 1점. 이희수 감독의 머리는 무섭게 돌아갔다. 한 방이면 2점을 낼 수 있는 상황이고 희생플라이라도 1점을 앞설 수 있다. 그러나 상대는 위력적인 임창용. 희생플라이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 자칫 실수하면 삼진당하기 십상. 생각을 정리한 이 감독은 기습 공격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이 감독은 전상렬을 대타로 내세우며 단단히 일렀다.

“무조건 초구 스퀴즈다. 눈치 채지 않게 해라. 임창용이 틀림없이 스트라이크를 던질 게다. 3루 주자를 불러들이는 기습 스퀴즈다. 넌 죽어야 돼. 그래야 안전하게 홈인할 수 있다.”

서 감독도 마운드에 오르는 임창용에게 지시했다.

“첫 타자를 조심해라. 희생플라이도 안된다. 공을 낮게 깔아 땅볼을 유도해라. 한 타자만 잡으면 된다.”

감독의 말이 아니라도 뻔히 아는 상황. 하지만 임창용은 설마 전상렬이 초구부터 번트를 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초구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던졌다.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한 스트라이크 볼이었다.

강공인척 위장 모션을 취하고 있던 전상렬은 임창용이 공을 뿌리는 순간 번트 자세로 들어갔다. 삼성 내야수도 나름 준비 했지만 전상렬의 기습 스퀴즈가 워낙 빠르고 절묘했다. 오로지 3루 주자의 홈인만을 위한 번트. 한화는 1점을 따냈다. 다음 타자 임주택은 삼진 아웃이었다.

1점의 리드. 이 감독은 9회 말 곧 바로 구대성을 박았다. 정민철이 8회에도 3자 범퇴를 시키며 싱싱함을 보여주었지만 확실하게 가져갔다. 팀 승리가 중요하지 정민철의 완투승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공격에서도 선수를 치고 수비에서도 선수를 둬 개막전을 이긴 한화는 다음 2경기도 모두 승리, 개막전 3연승을 거두었다.

나비효과.

첫 3경기의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페넌트레이스에서 3패는 누구나 한다. 그저 수많은 경기 중의 하나 일 뿐이다. 하지만 때로는 큰 변수가 된다. 뜻하지 않았던 개막전 3연패로 삼성은 허겁지겁했다. 3연승으로 감독 데뷔전을 치른 이희수 감독은 여유가 생겼고.

한화는 그해 처음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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