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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33. 탁구 첫 그랜드슬러머 현정화

2020-10-12 07:02

현정화는 타고난 승부사였다. 신나게 공격할 때 짜릿함을 느끼는 스타일. 그래서 기합과 함께 펼쳐지는 전진속공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경기에선 그 누구보다 끈질기고 악착같았다. 가녀린 느낌과는 다른 이 상반된 강점들이 어울려 대한민국 탁구사에 길이 남을 그랜드 슬러머가 되었다.

[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33. 탁구 첫 그랜드슬러머 현정화


현정화는 세계선수권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전인미답의 경지였다. 가장 오랫동안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하며 ‘탁구계의 마녀’로 불렸던 중국의 등야핑도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탁구 세계선수권대회 그랜드슬램은 혼자 힘만으론 불가능하다. 남녀가 짝을 이루는 혼합복식이 있고 동성끼리의 복식이 있고 4명 이상이 손발을 맞춰야 하는 단체전이 있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자신의 단점을 커버해줄 수 있는 최고 경지의 선수를 만나야 하는데 천운이 따라줘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현정화는 사람 복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자신보다 먼저 정상권에 위치해 있던 선배 양영자가 있었고 서울올림픽 개인단식 금메달리스트로 이래저래 찰떡호흡이었던 남자 동료 유남규가 있었다.

그리고 남쪽에서 다 못 찾은 단체전 우승 꿰맞추기의 커다란 조각을 북쪽에서 찾았다. 이분희, 류순복이 그와 호흡을 맞춘 파트너. 한민족의 이름으로 혼신의 힘을 다했으니 그런 천우신조가 없다.

초등학교 때 이미 천재성을 나타낸 현정화는 1985년 국가 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여자 탁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여고 1년생 국가대표였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세계 정상 5좌 완등’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선배 양영자는 여자복식 정복의 파트너였다. 여고생 현정화를 1986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끈 양영자는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복식에도 현정화와 호흡을 맞추었다.

양영자는 탁구대에 거리를 두고 치는 드라이브 전형이고 현정화는 탁구대에 붙어서 때리는 전진속공 형으로 다시 짜 맞추기 힘든 환상의 복식조였다. 양영자와 함께 한 여자복식이 현정화의 그랜드슬램 첫 출발이었다.

두 번째 정상은 유남규와 짝을 이룬 혼합복식. 1989년 도르트문트 세계선수권에서 현정화와 유남규는 멋진 하모니로 우승합창을 불렀다. 1991년 지바에서 남북단일팀으로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현정화는 마지막 하나 남은 단식 우승을 1993년 예테보리에서 완성했다.

현정화는 세계선수권 그랜드슬램뿐만 아니라 탁구의 모든 국제대회를 석권, 그 역시도 그랜드슬램을 이루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비롯 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 월드컵까지 그가 정상에 오르지 못한 대회는 없다.

현정화는 대한민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2010년 국제탁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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