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31.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임춘애

2020-10-10 07:18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여자육상 3관왕 임춘애.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여자육상 3관왕 임춘애.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은 또 한 명의 새로운 천재를 탄생시켰다. 메달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여자 육상, 그것도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여러 개 쏟아냈다. ‘라면 먹고 뛰었어요’라는 멘트가 더 많이 알려진 3관왕 임춘애였다.

육상 금메달은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의 백옥자가 마지막 이었다. 육상이긴 하지만 투원반에서 나온 것이어서 달리기 쪽과는 거리가 있다. 특히 트랙에서의 금메달은 대한민국 여자선수가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땅이었다.

임춘애(1969년생)의 금메달은 뜻밖이었다. 1개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3개라니. 메달 불모지의 육상이 아니었다면 아시안게임에 나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임춘애는 서울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대회 3개월 전에 열린 전국체전에서 3000m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1500m와 10km에서도 우승, 3관왕에 올랐다. 그리고 이어 벌어진 7월의 비호기 대회에서도 좋은 기록을 작성했다.

내 땅에서 처음 열리는 아시안게임인데도 뚜렷한 메달 주자를 내세우지 못하고 있던 육상 연맹은 신기록 작성자인 임춘애를 부랴부랴 대표 팀에 합류시켰다. 1m70의 키에 다소 마른 몸매. 굳이 좋은 점을 부각하자면 그건 달리기에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턱걸이 국가대표. 임춘애는 짧은 시간의 국가대표 훈련임에도 잘 소화했다. 800m, 1500m, 3000m의 3개 부문에 도전장을 냈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1500m였다. 특별한 경쟁 주자가 없었고 임의 기록도 나쁘지 않았다. 3000m는 비록 한국 기록이지만 중국 기록에 크게 못 미쳤고 800m는 인도가 선두주자였다. 금메달은 몰라도 메달은 기대할 만한 했다.

여자 800m 경기. 열심히 달렸으나 인도의 쿠리신칼 아브라함이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고 임춘애는 두 번째로 골인했다. 은메달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코스이탈로 실격, 1위 골인자가 없어졌다. 2등으로 들어온 임춘애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주 종목인 1500m 결승. 중국의 양유하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막판 힘을 낸 임춘애가 양을 간발의 차이로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개의 금메달. 임춘애는 단숨에 국민적 스타로 떠올랐다.

금메달 2개는 대한민국 여자 육상에선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대단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임춘애의 금메달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날 열린 3000m 결승. 중국 선수의 기록이 워낙 앞서있어 금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러나 선수의 컨디션에는 언제나 기복이 있는 법. 거의 10초나 앞선 기록 보유자인 중국 선수가 제대로 달리지를 못했다. 반면 2개의 금메달로 기운이 급상승한 임춘애는 최고의 컨디션을 발휘했다.

또 금메달. 임춘애는 800m, 1,500m, 3,000m를 석권한 3관왕에 올랐다.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3관왕이었기에 반향이 더욱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임춘애가 훌쩍 떠난 그 트랙은 이제 40여년이 다 돼 가지만 뒤를 이을 육상 3관왕은 아직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쇼!이슈

마니아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