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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체육 100년 비화]-초보감독 김응용의 번트 어깃장

2020-10-09 09:16

3회 다시 선두타자가 진루했다. 강공사인을 보냈다. 2회 한 번 실패했지만 아직 초반이고 한국이 호쾌한 야구를 한다는 강한 이미지를 세계야구계에 심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쪽지’가 내려왔다. ‘번트를 대라.’

[대한민국 체육 100년 비화]-초보감독 김응용의 번트 어깃장


박상규 야구협회 전무의 지시였다. 그저 강공으로 밀어붙이는 30대 초보감독 김응룡이 너무 답답해 본부석에서 경기를 보고 있던 박전무가 끼어 든 것이었다. 그 역시 야구계에서 잔뼈가 굵은 몸이라 나름 전략에 자신 있었다.

1970년대에는 흔한 장면이었다. 일일이 나서 잔소리를 하고 선발 선수 명단을 조정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리고 윗사람의 지시면 대충 받아들여졌다. 그것이 작전의 하나라도..그래야 여러모로 편했다. 책임을 피할 수 있었고.

쪽지를 흘깃 쳐다 본 김응용은 바로 번트 사인을 냈다. 1사 2루가 되었다. 박전무는 흐뭇한 표정으로 다음 장면을 기대하며 그라운드를 내려 다 보고 있었다. 번트였다.

“아니 왜 또 번트야. 이번에 강공이어야지. 참 답답한 ....”

또 번트로 2사 3루. 그리고 또 번트. 당연히 3루 주자는 홈에서 아웃되었다. 쓰리아웃이 되면서 공수교대. 그의 얼굴은 아까부터 흙빛이었다. ‘감히 대든단 말이야. 두고 보자’. 이를 갈았지만 이내 좌불안석이 되었다.

이닝이 새로 시작되었는데도 번트였다. 무사에서도 번트, 1사에서도 번트. 그때서야 그 임원은 김응용이 왜 그러는지를 간파했다. 신문에라도 나면 큰 일 이었다. 더 이상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다시 쪽지를 내려 보냈다. ‘알아서 해’.

김응용은 덕아웃에선 독불이다. 지든 이기든 그건 감독의 책임이다. 실수 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작전권은 어떤 경우든 감독이 지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작전 잘못으로 지고 책임을 지라면 그만두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작전권 침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김응용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정상적인 공격을 펼쳤다. 신출내기 감독이면서도 감히 하늘같이 높은 사람의 지시를 어깃장 놓으면서 무시해버린 김응용. 그의 책임감 있는 전략과 카리스마는 그때 이미 형성되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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