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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29. ‘비운의 원조 신궁’ 김진호

2020-10-05 06:14

대한민국 여자양궁의 역사는 김진호(1961년생)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대한민국의 양궁을 세계 정상의 반열에 올려 예로부터 ‘활 잘 쏘는 민족’임을 입증했다.

[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29. ‘비운의 원조 신궁’ 김진호


비록 절정기에 맞은 두 번의 올림픽에서 명성에 걸맞지 않는 동메달 1개에 그쳐 ‘비운의 신궁’으로 남아있지만 그가 쓴 양궁의 역사는 화려함의 최고봉이다.

김진호의 운대가 맞았다면 그는 두 번의 올림픽과 또 한 번의 올림픽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선 무대는 한 번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결코 한 적이 없었던 실수를 저질러 금메달을 날려 버렸다.

예천여중 때 양궁을 시작한 김진호는 예천여고 1학년 때 전국체전에서 우승하며 국가대표로 뽑혔다. 그야말로 소녀 신궁으로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하여 나이는 어려도 실력자임을 확실히 했다.

여전히 10대 소녀였던 18세의 김진호는 1979년 세계 1인자가 되었다.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30m, 50m, 60m, 개인 종합에 이어 단체전 우승까지 이끌며 5관왕에 올랐다.

이듬 해 열리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금메달은 ‘따논 당상’이었다. 올림픽은 변함없이 열렸지만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이 그의 올림픽 여왕 등단을 막았다.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시절, 미국이 소련을 규탄하며 올림픽을 보이콧했다.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약소국 한국은 미국의 방침대로 모스크바올림픽 참가를 포기했다.

4년 후에도 국가대표 선발전 1위는 김진호였다. 세계선수권대회를 연이어 석권하며 세계랭킹 1위 자리를 고수했다. 김진호는 국제대회 출전이 처음인 6년 후배 서향순, 박영숙과 함께 LA로 향했다.

확실한 여성 첫 올림픽 금메달 주자.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단이나 국민들의 금메달에 대한 당연한 기대가 김진호를 지치고 힘들게 했기 때문이었을까. 김진호는 어이없게도 첫 날 두발의 화살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두 번의 0점은 치명타였다. 김진호의 기록은 2,555점. 자신의 세계 기록인 2,636점에 크게 못 미치는 점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호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발을 하늘에 날리고도 올림픽 메달을 딴 건 김진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김진호가 신궁의 첫 길을 잘 딱은 덕분에 대한민국 여자양궁은 1984년 LA올림픽부터 2004년 아테네올림픽까지 여자 개인전 6연패를 달성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2016년 리우 올림픽까지 단체전 7연패의 기록을 작성하며 계속 진행 중이다.

김진호는 2018년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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