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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손자병법] 42. 시드니올림픽의 김응용과 강병철. 찜찜하면 피하라.

2020-09-29 08:23

잔뜩 큰소리는 쳤고 그럴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첫 판부터 꼬이고 말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야구 예선 두 번째 경기 호주전. 낙승을 예상했으나 느닷없이 패했다. 그것도 숱한 상처속의 역전패였다.

[프로야구 손자병법] 42. 시드니올림픽의 김응용과 강병철. 찜찜하면 피하라.


호주 팀에도 프로 출신이 있었지만 첫 경기에서 네덜란드에게 4-6으로 패한 중하위 팀. 프로 에이스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야구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했다. 정민태가 선발로 나서고 구대성, 박석진, 송진우, 임창용, 이승호 등 기라성 같은 투수가 줄줄이 이어 던졌음에도 그랬다.

경기 내용도 좋지 않았다. 1회 초는 2루타에 폭투, 2회 초는 2안타 2볼넷에 밀어내기 실점이었다. 다행히 말 공격에서 균형을 맞추고 4회 김한수의 2루타, 이병규의 적시타로 경기를 뒤집었고 정민태를 구원한 구대성이 무실점 투구를 해 이상 없을 듯 했다.

하지만 구대성이 내려가자 사건이 터졌다. 7회 등판한 박석진이 2루타를 맞고 내려가자 송진우가 올라와 동점 2루타를 내주었고 8회 송진우가 1사 1,2를 만들자 임창용이 역전점을 내줘 3-5로 패했다.

그래도 뒤집을 수 있겠구나 했다. 8, 9회 선두타자 김한수와 박종호가 안타를 치고 진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8회는 정수근이 병살타로 말아 먹었고 9회는 이승엽, 박재홍, 김동주가 차례차례 나와 똑같이 삼진을 먹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투수들을 속속 올린 투수코치 김인식이나 타자들을 차례로 내보낸 강병철, 그리고 두 후배코치를 철석같이 믿고 있던 감독 김응용 등 모두 어이가 없어 말을 못할 정도였다.

다음 경기는 쿠바, 미국, 일본 순이었다. 이기기가 쉽지 않은 팀들이었다. 쿠바는 아마추어지만 세계 최강이고 미국은 트리플 A와 더블 A가 주축이지만 센 선수가 끼어 있고 일본은 올림픽 메달을 위해 사상 최강팀을 꾸렸다.

주전포수 박경완이 호주전에서 다쳐 출전이 불투명한 터여서 더욱 걱정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김응용은 한잔 생각이 절로 났다. 머리를 좀 정리하자면 적당한 알콜이 필요했다. 강병철, 김인식도 그러자고 했다. 주성노까지 4명의 대한민국 코칭 스탭은 그래서 차를 타고 술집 앞에 도착했다.

강병철 등이 막 내리려고 할 때 김응용이 말했다.

“그냥 들어가지. 정 뭐하면 숙소에서 하든가.”

“한 잔이야 뭐..”

“아니야. 찜찜해. 느낌이 안좋아”

한잔 술이 몹시 생각났지만 감독이 침울해서 그냥 가자는데 계속 우겨 댈 수는 없었다. 안 마신다고 안 될 일도 아니었고. 다음 날 쿠바 전. 잘 싸웠지만 예상대로 졌다. 이대로 가면 일본, 네덜란드를 만나기전에 1승3패가 돼 4강이 날아 갈 판이었다.

그리고 그때 선수들의 ‘도박 사건’이 터져 나왔다. 임창용, 구대성, 정수근, 박재홍, 김동주, 주장 김기태 등 카지노 출입자 명단이 예사롭지 않았다. 결코 부인 할 수 없는 것이 기사를 보도한 그 기자 역시 카지노장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같은 목적으로..

대한민국 선수단은 불난집에 호떡집이었다. 프로에 대한 미움, 연전연패로 메달을 못 딸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며 야구팀에 중징계를 내리려고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김응용 감독은 ‘경기 중이니 끝난 후 처벌할 것’을 부탁했다.

그러면서 김응용, 강병철, 김인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수들이 카지노장으로 향하던 그 시간 그들은 술집으로 가고 있었다. 김응용의 ‘그냥 가자’는 한마디가 없었다면 과연 어찌 되었을까.

‘프로랍시고 경기에 지고도 감독, 코치는 술집에서 흥청망청이고 선수들은 카지노 도박질인데 무슨 수로 이길 것인가’라며 비아냥거렸을 것이고 그리되면 남은 경기까지 망치며 ‘역적’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건이 터졌을 때 전율을 느꼈어. 한 잔했으면 큰 일날 뻔 한거야. 우리가 술 마시는 것도 틀림없이 누가 보겠지. 김응용 감독, 감은 쏘름 끼칠 정도로 무서워.”

감(感)의 승부사. 덕분에 결국 동메달을 획득했다. 선수단이 도박선수들의 징계를 다구치자 그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술집엔 가지 말라고 했는데 카지노에 가지 말라고 한 기억은 없는데 어찌 해야 할지 ...”

동메달과 감독의 그 말.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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