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 40. 최동원, 선동열의 용호상박(龍虎相搏)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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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9-1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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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호랑이가 싸우다. 절대강자가 맞붙는 예측불허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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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김응용 감독의 심사는 궂은 날씨만큼이나 좋지 않았다.

10일 베어스에게 지고 12일 이글스에도 패해 느닷없이 연패를 당했다. 14일과 15일은 휴식일이어서 13일 이글스와의 경기에 선동열을 투입, 연패를 끊어야 했다. 그런데 낮부터 비가 내려 아무래도 경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타이거즈의 확실한 선봉장 선동열은 앞선 두 차례의 경기에서 모두 완봉승을 거두었다. 5일 청보 핀토스를 1-0으로 잡았고 9일 베어스전 역시 1-0 완봉으로 장식했다.

롯데 성기영 감독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프로데뷔 첫 3경기를 모두 져 3연패할 때만해도 아득했으나 5월 들면서 원기를 회복하고 있었다. 다만 에이스 최동원을 많이 활용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최동원은 3일 청보 핀토스전 8회에 나가 2이닝을 구원했고 6일 베어스전엔 4회 2사후 등판, 구원승을 작성했다. 그리곤 개점휴업이었다. 언제든 나설 준비가 되어있었으나 완투승 아니면 초반 대패여서 거들 틈이 없었다.

7일과 8일의 청룡전에선 오명록과 윤학길이 완투승을 거두었다. 9일 이글스전과 15일 청보전에선 김정행이 연이어 완투승을 올렸다. 12일 삼성전은 초반 투수진이 무너져 0-9로 지고 말았다. 그 사이 비도 오고 휴식일이 끼어있어서 최동원은 벌써 8일째 아무 일도 안하고 있었다.

“다음은 무조건 최동원이군.”

저녁때가 되어도 비는 그칠 줄 몰랐다. 경기는 기어코 취소되었다. 이틀간의 휴식일이 있어 굳이 서두를 이유는 없었으나 어쨌든 김응용 감독은 서둘러 짐을 쌌다. 일단 광주로 내려갔다가 부산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어쨌든 선동열이 나서야겠군.”

1987년 5월 16일 부산 사직구장.

롯데 최동원과 해태 선동열은 그렇게 조우했다.

롯데는 연승이 필요했고 타이거즈는 연패를 끊어야 했지만 페넌트레이스의 하고많은 경기에서 팀의 막강한 선봉장이 만나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다. 어느 한쪽은 심각한 내상을 입게 되므로 알아서 피해 간다. 하지만 더러는 이처럼 얽히고설켜 별 득도 없이 외나무다리 승부를 벌이게 된다.

그래서 ‘운명’인데 만난 시기도 묘했다. 최동원은 정상에서 막 내려서려는 시점이었다. 1984년 27승을 작성했지만 85년엔 20승, 86년엔 19승을 올렸다. 선동열은 정상 턱밑까지 올라 간 시점이었다. 86년 24승을 기록하며 최고로 떠오르고 있었다.

서로가 결코 무덤덤할 수 없는 경기.

훗날 최동원은 질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고 했다.

선동열은 조금은 들뜬 상태였던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선동열이 2회 한꺼번에 2점이나 내주었다. 완봉승을 밥 먹듯이 하던 그에게 1이닝 2실점은 흔치않은 일이었다. 승부가 기우는 상황. 하지만 최동원도 돌아선 3회초 서정환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며 1실점했다.

실점 후 정신을 다잡은 두 장수는 더러 안타를 맞고 더러 볼넷을 내주기도 했지만 더 이상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0의 행렬, 그대로라면 최동원이 2-1로 이기는 상황. 선동열은 실점없이 8회말을 막은 후 마운드를 내려오면서 마지막이려니 했다.

그러나 둘의 만남을 장난질했던 ‘운명’은 그들을 그렇게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9회초 1사2루, 한방이 터지면 동점이었다. 그러나 타이거즈의 다음 타자는 포수 장채근이었다. 김무종의 결장으로 대신 마스크를 썼으나 한방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김응용감독은 한 대화가 출루할 때부터 대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지체 없이 김일환을 들이밀었고 김일환은 한대화를 불러들이는 2루타를 날렸다.

9회를 다 싸웠는데도 승부를 내지 못했다. 2-2에서 연장전에 들어갔다.


누구든 먼저 점수를 내면 될터. 하지만 최동원과 선동열은 점수를 줄 듯 줄 듯 하면서도 좀처럼 결승점을 내주지 않았다.

10회초, 최동원은 1사 만루를 막았다.

10회말 마운드에 오른 선동열은 난감했다. 장채근 대시 대타를 투입, 동점까지 갔으나 포수 자원이 없었다. 어릴 적 포수 마스크를 써봤다는 백인호가 엉겁결에 포수석에 앉았다.

“형, 직구는 어떻게 받아내겠지만 변화구는 자신 없습니다. 공이 빠지기라도 하면 큰 일이니 제발 직구만 던져 주셔요.”

백인호는 거의 울상이었다. 선동열도 편할 리 없었다. 한쪽 날개를 잃는 듯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11회말 2사만루. 백인호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패스트볼로 결승점을 줄 수는 없었다. 선동열은 빠른 직구로만 위기를 넘겼다.

12회초, 무사 1,2루.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최동원은 노련하게 경기를 끌어나갔다. 무실점이었다. 12회말, 선동렬도 1사 1,2루의 위기를 자초했으나 역시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선동열은 마운드를 내려오며 롯데 덕아웃을 쳐다봤다. 던진 공이 이미 100개를 넘어서 200개에 육박하고 있었다. 지칠대로 지친 상태, 혹시나 했으나 최동원은 역시 주저하는 빛 없이 마운드를 향하고 있었다.

그건 최동원도 마찬가지였다. 선동열이 빠지면 자신도 빠질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최동원은 연장전에 접어들면서 이미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싸움, 끝까지 갈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기가 질리더군요. 최동원 선배가 그렇게 던지고도 또 마운드에 오르다니... 나도 끝까지 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안이 없는 경기였죠. 죽든 살든 내가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선동열은 지지치도 않는 것 같았습니다.”

최동원은 13회초도, 14회초도, 15회초도 올랐다. 선동열도 13회말도, 14회말도, 15회말에도 올랐다. 15회 이닝 제한이 없었다면 언제까지고 던질 태세였다. 던진 공으로 보면 두게임 째도 넘긴 15회말, 선동열은 롯데의 세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솎아냈다.

최동원은 209개의 공을 던지며 60타자를 상대했다. 11개의 안타를 맞고 7개의 사사구를 허용하며 2실점했지만 8개의 삼진을 잡았다. 선동열은 232개의 공을 던지며 56타자를 상대했다. 7개의 안타를 맞고 6개의 사사구를 허용하며 2실점했지만 10개의 삼진을 잡았다.

길고 긴 승부는 결국 2-2 무승부로 끝이 났다. 그리고 둘은 그 이후 마운드에서 만나지 못했다. 동시대 최강자들의 마지막 승부였다.

9월 14일은 故 최동원님의 9주기입니다. 너무 일찍 가버린 故 최동원님이 대한민국 야구에 남긴 숱한 발자취는 길이길이 기억 될 것입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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