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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19. 리듬체조의 요정 손연재

2020-09-06 06:51

손연재는 시대가 바라고 있을 때 나타난 스타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스포츠도 더 이상 궁상을 떨 필요가 없어졌다. 특별히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지도 않았고 그것으로 성공하기 보다는 즐기면서 정상에 오르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19. 리듬체조의 요정 손연재


그것이 바로 손연재가 올림픽 메달을 못 땄어도 두 차례의 올림픽에 출전했고 메달 권 근처까지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남다른 인기를 모으고 금메달을 딴 선수들보다 더 많이 입에 오르내린 이유이다.

손연재는 일찌감치 리듬체조를 시작했다. 11세 때인 2005년 전국소년체전 여자초등부 리듬체조 1위를 했다. 그리고 5년 여간 국내대회 정상을 독차지하면서 국제무대로 영역을 넓혀나갔다.

2008년 말레이시아 엔젤컵 개인종합 1위, 슬로베니아 챌린지대회 주니어부문 개인종합 우승 등으로 조금씩 성장했던 손연재는 2010년 열 여섯의 나이로 광저우 아시안 게임 개인종합 동메달을 획득, 가능성을 확실하게 점치게 했다.

2010년 리듬체조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32위를 2011년 11위로 까지 끌어올린 손연재는 2012년 대망의 런던 올림픽에 나섰다. 리듬체조도 일정한 자격이 있어야 올림픽 무대에 나설 수 있는데 대한민국의 리듬체조 올림픽은 손연재가 두 번째였다.

개인종합 예선 6위로 결선에 진출하였다.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첫 결선 진출이었다. 그러나 뒤집기가 있어야 메달이 가능했다. 어차피 예브게니야 카나예바와 다리아 드미트리예바의 벽까진 뚫을 수 없는 일이어서 동메달이 최선이었다. 후프와 볼은 좋았다. 두 번째 로테이션까지 3위를 달렸다. 하지만 마지막 곤봉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최종 성적은 5위였다.

손연재의 연기는 갈수록 늘었다. 세월이 훈련량과 비례했다. 연기의 물이 오른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손연재는 마침내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잘하면 이길 수 있다와 실수만 없으면 이긴다는 결과가 같을 수도 있지만 정반대로 나타날때가 있을만큼 내용상 차이가 크다. ‘잘하면..’은 평소보다 잘해야 하는 것이고 ‘실수만 없으면..’은 평소처럼만 해도 된다는 것. 당시의 손연재에게 올림픽은 ‘잘하면’이고 아시안게임은 ‘‘실수만 없으면’이었다.

인천에서의 성공으로 손연재의 인기는 다시 수직상승했다. 인기 연예인 못지않았다. 당연히방송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손연재는 계속 성장했다.

손연재의 리우 올림픽도 ‘잘하면..’이 적용되는 경기였다. 결선에 진출했으나 5위였다. 또 뒤집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선 첫 경기인 후프를 잘 끊었다. 예선 5위를 3위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어진 볼, 곤봉, 리본은 모두 4위.

아쉬웠다. 바로 메달 밖의 4위였다. 손연재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올림픽도 5위에서 4위로 발전했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사이 세월이 지나 열 한 살 나이가 스물 두 살이나 되었다. 그건 더 이상 올림픽에 나설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손연재가 있어 리듬체조가 일시에 인기스포츠가 되었지만 그가 떠난 리듬체조는 다시 대중의 관심을 벗어났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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