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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⓭하얀 발, 새카만 종아리의 박세리

2020-08-23 08:01



연장 18번홀, 박세리의 드라이브 샷이 연못 비탈에 걸렸다. 벌타를 먹고 꺼낸 후 다시 쳐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1 벌타면 승리를 내주어야 할 상황. 정규게임 72홀에 이어 연장 17번 홀까지도 동타여서 결정이 쉽지 않았다.

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⓭하얀 발, 새카만 종아리의 박세리


걸어가는 내내 고민했다. 막상 공이 있는 곳을 보니 비탈이 생각보다 더 가파르고 높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공은 풀 위에 잘 앉아 있었다. 어찌해야 하나. 경험 많은 캐디는 원 벌타 후 드롭을 권했다. 하지만 박세리는 그냥 그대로 도전하기로 했다.

박세리가 물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양말을 벗었다. 순간 모든 사람들은 승부보다 박세리의 발을 보며 깜짝 놀랐다. 양말을 벗는 순간 드러난 새하얀 발과 종아리가 마치 흑백 배치처럼 대비되었다.

‘새하얀 발과 새카만 종아리’.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으면 양말을 신은 부위와 그렇지 않은 부위의 색깔이 그렇게 다를 수 있는 것인지. 승부가 박세리의 패배로 끝난다 해도 전혀 아쉽지않을 정도로 그 장면은 대단히 충격적이고 감동적이었다.

공을 제대로 맞추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 맨발로 물속에서 자리를 잡은 박세리가 두 번째샷을 날렸다. 엄청난 트러블 샷이었으나 공은 ‘쌱’하는 소리와 함께 페어웨이에 얌전하게 떨어졌다.

패배로 갈 위기일발의 상황을 동타로 끝낸 박세리는 서든데스 두 번 째 홀에서 마침내 92홀(정규 72+연장18+서든데스2)의 긴 승부를 끝내며 US여자오픈 승리를 챙겼다. 그것은 대한민국 선수로선 한 번도 밟아 본적이 없는 메이저대회 두 번째 정상이었다.

박세리가 처음 이름을 알린 건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장식하며 이름을 알린 박세리는 그해 2승을 보태 총 4승을 하면서 미 LPGA의 대표주자로 우뚝 섰고 2010년 벨 마이크로 클래식에서 우승할 때 까지 총 25승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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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은 대한민국이 IMF로 신음하고 있을 때였다. 박세리의 등장이 남다른 것도 당시의 시대상황이 그래서였다. 박세리는 ‘맨발 샷’으로 골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깨면서 그것을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었다.

박세리의 이 성공은 김미현, 한희원, 박지은 등 라이벌들의 승부욕을 자극, LPGA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또 박세리를 보면서 골프를 시작한 ‘세리 키즈’들이 10여년 후 대거 몰려들면서 미 LPGA는 대한민국 낭자들의 잔치마당이 되었다.

세리 키즈의 대표급 주자는 10년 후 우승컵을 든 박인비로 박세리와 박인비는 2016년 리우올림픽의 대표팀 감독과 선수로 출전, 함께 우승축배를 들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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