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프로야구 손자병법]36 김재박, 김용희의 병무상세(兵無常勢)

2020-08-18 06:51

-병법을 사용하는 데는 일정한 방법이 없다.

[프로야구 손자병법]36 김재박, 김용희의 병무상세(兵無常勢)


스포츠는 통계와 확률의 게임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선 어떻게 공격해야 좋다는 것이 나와있다. 오랜 경기 경험을 통해 얻은 비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확률이지 반드시 그리 된다는 것은 아니다. 적이 있고 아군의 상황도 때에 따라 다르고 병사의 능력도 다 다르기 때문이니 수학적인 공식보다는 창의성이 우선한다.

2000년 10월 19일 수원구장, 현대와 삼성의 플레이오프 1차전. 재계 라이벌간의 싸움이라 경기 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팽팽한 접전, 삼성이 앞서 나가자 현대가 곧 뒤따라가 동점을 만들었다.

2-2 동점상황에서 맞이한 5회. 양 팀은 똑같이 무사 1루의 기회를 잡았다. 종반으로 넘어가려는 시점, 균형을 깨는 1점이 매우 중요했고 공격 성공 여부에 따라 그 게임의 승패는 물론 플레이오프전의 전체 흐름마저 좌우될 수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

먼저 삼성 김용희 감독. 강공책을 폈다. 후속타자인 김태균이 페넌트레이스에서 현대 선발 정민태를 13타수 5안타(3할 8푼 5리)로 잘 두들겼기에 밀어붙이는 쪽을 선택했다.

말 공격인 현대 김재박 감독. 보내기 번트 지시를 내렸다. 박진만이 삼성 선발 김진웅에 6타수 3안타(5할)로 매우 강하지만 절반을 쳤다는 쪽 보다 절반을 못 쳤다는 쪽을 선택했다.

정반대의 선택, 결과는?

강공 사인을 받은 김태균은 초구부터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운이 따르지 않았다. 방망이는 잘 갖다 댔지만 유격수 라이너였다. 안타성 타구로 알고 2루로 뛰던 1루 주자 진갑용까지 아웃되는 바람에 졸지에 2사에 주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박진만은 착실하게 번트를 댔다. 투 볼에서도 번트를 시도했다. 그러나 두 번의 번트를 모두 실패, 작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얼마 전 시드니 올림픽에서 쓰리 번트 아웃되었던 트라우마 탓인지 번트실패를 연발했다.

하지만 화가 복이 되었다. 박진만이 그래도 번트자세를 취하자 보내기를 허용하지않으려고 용을 쓰던 김진웅이 볼을 남발, 볼넷을 내주고 말았다. 1사 2루를 노렸는데 무사 1, 2루가 된 것이었다.

2사에 주자 없는 상황으로 몰린 삼성은 점수를 내지 못했다. 아웃 카운터 하나를 번 김재박 감독은 무사 1, 2루에서 또 번트작전을 구사했다. 전준호가 이번엔 맡은 역을 충실하게 소화했고 후속타자인 카펜터는 2타점 적시타를 터뜨렸다.

같은 상황에서 펼친 서로 다른 전략. 결과만 본다면 김재박 감독의 승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성공과 실패를 한마디로 논할 순 없다. 김용희 감독은 팀 마운드가 부실해 1점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고 김재박 감독은 자기 팀 마운드의 힘이라면 3이닝 동안 1점은 지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기본적인 힘의 차이에 따라 작전도 바뀔 수 있다. 군사의 수, 군사의 힘, 군대가 처한 상황에 따라 병법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병법에 충실한 교과서적인 전술보다는 기본적인 병법을 응용한 창의적인 전술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 작전도 머무는 것이 아니라 늘 움직이는 것이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쇼!이슈

마니아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