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⓽8월9일의 두 마라토너 손기정, 황영조와 56년의 진실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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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8-09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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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손기정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동양인의 선두 입장에 관중들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모두 기립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우승자의 환희에 찬 얼굴이 아니었다.

‘마의 30분벽’을 깬 2시간 29분 19초의 올림픽 마라톤 신기록이었다. 손기정에 이어 영국의 하퍼와 역시 조선인인 남승룡이 들어왔다. 동양인 최초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과 동메달이었다. 남승룡의 얼굴도 굳어있었다.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조선인 손기정과 남승룡. 그러나 그들의 국적은 조선이 아니었다. 일본국이었다. IOC공식기록은 JAPAN-KOREA, 일본국의 조선인이라는 뜻이다. 가슴에는 일장기가 달려있었고 이름은 기태이 손이었다. 그들 얼굴에 기쁨이 아니라 슬픔 같은 게 깔려 있던 이유였다.

1992년 8월 9일 바르셀로나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황영조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트랙을 한 바퀴 돈 후 직선주로에 들어서자 황영조는 두 팔을 치켜들었고 한 손을 휘저으며 골인점을 통과, 올림픽 금메달의 기쁨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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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조의 가슴에는 태극마크가 선명했다. 한국인 황영조의 국적은 당연히 대한민국이었다. 황영조의 한참 뒤로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의 모습이 보였다.

40km지점까지 선두를 다투었던 황영조와 모리시타의 레이스는 몬주익 언덕에서 확실하게 갈렸다. 황영조는 그 언덕길의 오르막에서 조금씩 격차를 벌인 뒤 내리막에 마지막 스퍼트를 내면서 앞서 나가기 시작, 56년 만에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했다.

황영조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은 대한민국으로선 처음이다. 손기정의 금메달은 일본국 JAPAN의 금메달이다. IOC도 그렇게 기록을 적어놓았다. 손의 금메달을 우리나라만 우리의 금메달로 생각, 두 번째로 친다.

1936년 8월 9일 독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후 정확하게 56년 후인 1992년 8월 9일 스페인 바로셀로나올림픽 마라톤 출발을 앞두고 대한민국과 일본의 육상계와 언론이 똑같이 ‘56년만의 올림픽 금메달 도전’이라고 외쳤다.

일본은 모리시타를 내세워 올림픽 마라톤 우승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길고 긴 잠에 빠져있던 대한민국 역시 황영조를 등에 업고 마라톤 우승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록상으로 보면 모리시타가 다소 앞서 있었고 그래서 일본은 모리시타의 우승을 낙관했다.

대한민국도 내심 황영조의 우승을 바라고 있었다. 마라톤도 육상 경기여서 기록이 중요하지만 장거리 레이스라 기록이 전부는 아니었다. 더욱이 바르셀로나 마라톤 코스 중에는 마의 몬주익 언덕이 있어서 지구력이나 정신력이 경기력 못지않게 중요했다.

어쨌든 한국과 일본 양국이 똑같이 올림픽 마라톤 우승을 욕심내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언론의 제목도 같았다. 어느 한쪽이 틀려야 맞는 것이지만 IOC공식기록에 따라면 두 나라의 주장이 모두 옳다.

대한민국은 ‘한국인’의 마라톤 금메달 도전이고 일본은 ‘일본국’의 금메달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사람, 일본은 나라였다.

황영조가 모리시타를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56년 경쟁’에서 한국이 승리했고 일본은 그 후 이 표현을 쓰지 않는다. 한국은 금을 땄으므로 이상 다툴 필요가 없어졌다. 결과적으로 황영조는 두 나라 마라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셈이 되었다.

손기정은 1935년 11월 3일 베를린올림픽파견 마라톤 일본 대표 2차 선발전을 겸한 제8 회 메이지신궁경기대회에서 일본의 스즈키, 나카무라, 사가라, 쿠스노키 등을 제치고 2시간26분42초의 세계 최고기록으로 1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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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은 경성 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마라톤 세계 최고기록을 세웠다. 조선체육회가 주최한 1934년 4월 22일 제2회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24분51초, 그리고 1935년 5월 18일 제3회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24분28초의 세계 최고기록을 각각 세웠다.

확실한 실력자임에도 손기정의 올림픽 행은 쉽지 않았다. 내선일체 운운하며 순수 일본인을 뽑으려 했다. 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베를린 현지에서 또 선발전을 하게 했다. 일본 선수 2명에겐 지름길을 달리게 했으나 그래도 먼저 들어온 것은 손기정과 남승룡이었다.

일본국의 대표였지만 당시 독일의 장내 방송은 손기정이 조선인임을 확실히 했다.

Der Koreanische Student, er hat die Streitmacht der Welt zertrummert, mit asiatischer Fähigkeit und Energie ist der Koreaner durch

“코리아의 학생이 세계의 경쟁자들을 물리쳤습니다. 그 한국인(der Koreaner)은 아시아의 힘과 에너지로 뛰었습니다. - 독일 역사박물관(DHM) 독일 방송 기록보관실(DRA) 자료.

바르셀로나로 가기 전까지 황영조의 금메달은 희망사항이었다. 가능성은 충분했지만 어찌보면 ‘급조된 마라토너’였기 때문이었다.

1990년 그는 코오롱에 입단했다. 마라톤은 뛰어 본적 없는 중,장거리 선수였다. 그러다 느닷없이 1991년 3월 동아국제마라톤에 나갔다. 페이스메이커를 하라는 코칭스태프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었다.

마라톤 완주 경험이 없었던 황영조는 아무 생각없이 뛰었다. 그런데 2시간12분35초의 기록으로 3위를 했다. 미처 몰랐지만 천재성이 있었던 것이었다. 7월의 셰필드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넉넉하게 우승했다. 그 해 겨울 본격적으로 마라톤 훈련에 들어갔다.

1992년 2월 제41회 벳푸-오이타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8분47초로 우승하며 한국 선수중 처음으로 2시간10분의 벽을 허물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처음부터 치고나갔다. 선두그룹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은 황영조는 34km지점에서 김완기가 뒤처지자 악마의 코스라는 몬주익 언덕에서 승부를 내 버렸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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