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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아 스토리]대한민국 체육100년 100인 100장면 ⓸여자골퍼의 문을 연 돈키호테 구옥희

2020-07-21 07:50

[매니아 스토리]대한민국 체육100년 100인 100장면 ⓸여자골퍼의 문을 연 돈키호테 구옥희
구옥희에게 골프는 꿈이 아니었다.

살기위한 최소한의 수단이었다. 조실부모한 열아홉 여고 졸업생이 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집에서 멀지않은 골프장에서 여직원을 뽑았다. 손님의 골프백을 메고 함께 걸어 다니는 일이었다. 골프라는 운동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1975년 쯤 이었다.

6홀짜리 작은 골프장. 캐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골프도 재미있어 보였다. ‘한 번 해볼까’ 했지만 여자들은 골프장에 다니지 않을 때였다. 남자프로선수는 있었으나 여자골프선수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못 할 건 없지.

어깨 너머로 배우며 혼자서 연습했다. 3년 후 다른 3명과 함께 한국 최초의 여자프로골퍼가 되었다. 캐디에서 선수로 변신했지만 대회가 많지 않았다. 어쨌든 1년쯤 후 우승을 해봤다. 80년과 81년 9차례나 우승하며 국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웃 일본을 바라보았다.

대회가 자주 열리고 상금도 꽤 많았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인데 괜찮을까. 어려울 것 없어 보였다. 더 잘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도 있었다. 자나 깨나 골프였다. 연습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연습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하기 싫으면 하기 싫은 것을 뛰어 넘는 훈련을 했다. 물집이 잡히면 그 상태에서 또 연습했다. 굳은살이 박혀 더 이상 물집이 안 잡힐 때까지 채를 잡고 휘둘렀다.

막무가내식 훈련이었으나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연습을 통해 폼을 만들었고 골프교본을 보면서 스스로 교정했다. 자신에게 딱 맞는 ‘구옥희 스윙폼’은 그때 창조되었다.

83년 일본 프로테스트에 합격하며 한국여성 최초로 일본 원정기를 쓰게 되었다. 1년 만에 일본 그린을 점령했고 85년에는 3승을 올렸다. 안정된 생활이 이어졌다. 그것이 오히려 그녀을 자극했다.

멀리 미국을 바라보았다.

일본에서 열린 미LPGA대회에서 3위를 한 덕분에 출전 자격을 얻었다. 미국무대는 쉽지 않았다. 한국,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선수들로 그린은 항상 북적거렸고 대회도 자주 열렸다.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 한국에서 1년 간 열린 대회가 5개였는데 미국에선 그 대회를 한달 만에 치뤘다.

무엇보다 힘든 건 외로움이었다. 가까운 일본에선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얼굴 색도 다르고 그림도 다르고 말도 다른 낯선 곳에서 바닥까지 긁으며 한 2년여 보내고 나니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해도 해도 성적은 나지 않고 그리움은 더해가고...

돌아갈까도 했지만 처음의 자세로 돌아갔다. 골프 훈련 대신 참선을 하며 마음 공부에 매진했다. 열정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1988년 3월 스탠더드레지스터 대회에서 정상을 밟았다. 역시 처음이었다. 그녀의 우승은 그러나 국내에선 큰 화제가 되지 않았다. 10년 후 박세리가 우승했을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이다. 그 우승의 대단한 의미를 그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벅찬 도전의 연속이었지만 구옥희는 굳이 도전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건 언제나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바로 잡습니다] - 20일 게재된 100년 ⓷4전5기 홍수환 내용 중 3군데를 틀렸습니다.

대회일은 ‘1977년 11월 27일’ ‘일요일’이었고 주니어페더급은 신설체급으로 챔피언결정전이었습니다. 카라야스키는 챔피언이 아니었고 홍수환과 똑 같은 결정전 출전자였습니다.

한 독자분이 정확하게 지적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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