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포츠 100년](39)마라톤 이야기①마라톤 첫 공식기록은 마봉옥의 3시간29분37초

정태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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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7-1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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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춘분을 맞아 동아일보사가 창설한 1회 경성~영등포마라톤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이 출발하고 있다. 유니폼에 Y를 쓴 선수들이 양정고보 선수들이다
우리나라 육상경기의 시초는 한반도에 거주한 일본인들이 주도해서 만든 단체인 조선체육협회가 1920년 5월16일 용산 신연병장(현재 용산전쟁기념관 자리)에서 개최한 육상대경기회였다. 이 대회에서 트랙과 필드에서 모두 15개 종목이 열렸는데 단거리와 필드종목은 일본선수들이 석권하고 장거리에서는 우리 선수들이 독무대를 이루었다.

우리 선수들은 경성 일주 마라톤이라고 이름을 붙인 10마일 레이스에서 최홍석, 김상동, 김용만이 1~3위를 하고 경인가도를 달린 25마일 레이스(40.23㎞)에서는 임일학이 2시간45분11초, 조창환이 2시간46분12초로 2위를 했다. 당시 마라톤(42.195㎞)의 세계기록은 2시간36분34초인 것을 감안하면 비록 전체 거리에서는 2㎞ 정도가 짧기는 하지만 첫 기록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이때부터 조선에서는 일본인들을 이길 수 있는 장거리 종목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이 가운데서도 단연 마라톤이 가장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마라톤은 위에서 보듯 처음부터 정규코스에서 열리지 않았다. 10마일, 20마일로 단축마라톤이었다. 그리고 역전마라톤 대회였다. 1990년대 초반까지 열리기도 했던 역전마라톤대회는 기차역을 기준으로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전체 코스를 나누어 선수들이 릴레이를 하는 방식으로 열린 마라톤대회였다.

조선체육회가 1924년 6월 14일 제1회 전조선육상경기대회를 창설했지만 첫 대회에는 마라톤은 종목에 없었다. 그러다가 1925년 조선일보사가 처음으로 역전경주대회를 창설하면서 본격적으로 마라톤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해 5월25일 인천세관에서 출발해 경성 광화문우체국까지 25리를 6개 코스로 나누어 거행한 이 대회의 정식 명칭은 '전조선중등이상 학교대항 경성인천간 릴레레스'였다. 이 대회에 9개 팀이 참가해 최경락, 신윤범, 오윤진, 정상희, 이성실, 강찬격으로 조를 짠 양정고보가 2시간36분37초1로 배재고보(2시간45분19초4)로 이겨 우승했다.

그리고 이해 10월 경성운동장이 개장하면서 제1회 조선신궁대회를 창설한 조선체육협회가 제3회 대회때인 1927년 10월 17일 26마일 4분의 1(42.195㎞) 공식 마라톤 코스를 채택하면서 조선에 첫 정식 코스의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경성운동장을 출발해 청량리~망우동~동대문~의주로~용산역~을지로~왕십리를 거쳐 다시 경성운동장으로 돌아오는 복잡한 코스였다.


여기에서 철도국 말단 직원인 마봉옥이 3시간29분37초로 우승해 한국 마라톤 첫 공인기록을 수립했다. 마봉옥은 이듬해인 1928년 5월 6일 경성에서 열린 암스테르담올림픽 조선예선대회 마라톤에서 3시간15분대로 우승해 자신의 기록을 15분 가까이 단축하는데 성공했으나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해 올림픽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이때 2위는 양정고보 출신의 최경락이었다.

마봉옥은 이해에 열린 제4회 조선신궁대회에서 2시간57분34초로 처음 3시간 벽을 깨뜨렸으나 마봉옥의 시대는 여기까지였다. 마봉옥은 이후 조선체육회에서 이사 등을 지내며 각종 대회에 심판과 계시 등으로 활동하며 우리 체육발전에 공헌을 했다.



[정태화 마니아리포트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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