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32-⓸ 3金과 양준혁, 이광길, 류현진

이신재기자

필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승인 | 2020-07-03 07:16

0
center
center


김응용과 양준혁

대구출신 양준혁은 삼성에 입단하기 위해 기꺼이 재수까지 한 선수다. 투수 김태한을 먼저 잡기위한 것이고 뒷거래가 있었지만 1년 후 삼성에 입단,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했다.

양준혁의 타격 후 방망이는 춤 사위를 능가했지만 그 특이한 자세로도 해마다 3할 타율을 유지했다. 그러나 우승에 목말랐던 삼성은 투수의 필요성을 절감, 98년 시즌 후 해태로부터 임창용을 데려오면서 양준혁과 곽채진, 황두성을 묶어 보냈다.

임창용은 좋다고 짐을 쌌지만 양준혁은 해외진출까지 입에 올리며 트레이드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며칠 소동을 벌였으나 김응용 감독의 전화를 받고 결국 해태 행을 받아 들였다.

“넌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야. 한 번 해보자. 한 1년 해보고 싫으면 다른 팀에 보내주지”

의외였다. 그래도 삭막한 도축장에 끌려가는 기분은 여전했고 ‘1년 후’라는 김응용 감독의 말을 믿지도 않았다. 하지만 야단을 치는 대신 필요한 선수라는 말을 하며 ‘따뜻하게’ 맞이해주자 의욕이 되살아났다. 해태의 팀원들도 그를 살갑게 대했다.

양준혁은 1999년 시즌 131경기에 출전해 160안타 32홈런을 치며 3할2푼3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160안타는 그때까지 자신의 한 시즌 최다안타였고 홈런 역시 최고 개수였다.

설마했는데 시즌이 끝나자 김 감독은 약속대로 그를 놓아주었고 그는 LG로 향했다.

양준혁이 김 감독을 다시 만난 건 2002년. 양준혁은 2001년 말 FA자격을 얻었다. 먼저 소속팀 LG와 협상을 했으나 가격이 맞지 않았다. 친정팀 삼성도 거부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높은 몸값도 부담이었지만 그의 선수협활동이 못마땅해 모두들 받으려 하지 않았다.

자칫 낭인이 될 처지에 놓인 양준혁을 김응용 감독이 붙잡았다. 19년 해태를 떠나 삼성으로 둥지를 옮겼던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원한다면 양준혁을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준혁과 김 감독은 그 해 사상 처음으로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만들었다.

야구선수에게 요구할 건 야구밖에 없다는 것이 김 감독의 지론이다.

김성근과 이광길

김성근은 뛰어난 투수 조련사다. 하지만 김 감독을 통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선 그가 가하는 혹독한 채찍질을 받을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승리에 굶주린 무명 투수들은 엄청난 고통을 달게 받아 들였다.

이광길은 2루수다. 그가 김 감독을 만난 건 1989년 태평양 돌핀스 때였다. 프로 5년 만에 삼미, 롯데, 빙그레 등 3개 팀을 거쳤다. 빙그레에선 3년 간 제법 활약을 했지만 삼미와 롯데는 1년 씩이었다. 반드시 필요한 선수는 아니었고 버릴 정도로 형편없지도 않았다. 먹자니 먹을 게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계륵이었다. 팀의 트레이드 사정상 묻어 다녔다.

4번 째 팀 태평양. 그것 역시도 그가 필요해서 이루어 진 트레이드는 아니었다. 큰 희망없는 떠돌이, 그만 접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과 한차례 면담을 한 후 접어야겠다는 그 마음을 접었다.

김 감독은 이광길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알았다. 우선 성실했다. 어떤 훈련도 다 받아들였다. 야구에 대한 센스도 있었다. 아주 뛰어난 한 가지가 없을 뿐 종합 능력은 주전감 이었다.

야구감독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선수는 꾸준한 선수다. 7~8개월의 긴 레이스를 펼치자면 기복 없이 열심히 하는 선수가 몇 명은 꼭 있어야 한다. 스타급은 스타급대로 필요하지만 기본이 되는 선수가 없으면 팀 꾸리기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이광길은 김 감독이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감독의 신뢰를 받은 이광길은 훈련에 빠져들었다. 어차피 그만 둘 각오였다. 마지막으로 무섭게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그때 옷을 벗자고 했다.

이광길은 김 감독을 통해 야구를 다시 배웠다. 그냥 던지고 받고 치는 단순한 야구가 아니었다. 생각하는 야구, 한 수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수준 있는 야구였다. 김 감독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대로 무기가 되었다.


이광길은 그해 시즌 내내 주전으로 뛰었다. 그리곤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가 2차원이라면 5차원 정도죠. 1회에 이미 9회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습니다. 오직 야구만 생각하는 진정한 야구인입니다”

김성근의 신봉자가 된 이광길은 은퇴 후에도 코치로써 계속 김 감독을 보좌했다.

김인식과 류현진

“류현진은 바보다. 대투수가 되려면 아직 멀었어.”

데뷔 첫 해인 2006년, 류현진이 7회에 5실점하자 김인식은 공개적으로 쓴 소리를 했다. 김 감독의 성격을 감안하면 지극히 이례적이었다.

신인 류현진은 거침없는 공으로 개막 1개월 여만에 5승을 작성했다. 다승 1위의 성적이고 어쨌든 이겼으니 그토록 독하게 말 할 것 까지는 없었다. 김 감독은 평소 선수들이 실수를 하거나 부진하면 따로 불러 조용히 이야기 한다. 그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이다.

기아전 6회까지 1실점으로 호투하며 9-1 상황을 연출했던 류현진이 7회 갑자기 흔들렸다. 볼넷 4개에 안타2개, 폭투2개로 단숨에 5실점했다. 김인식의 ‘바보’ 발언은 여유있는 경기에서 볼넷과 폭투를 남발했기에 나온 것이었다.

“8점차니까 너무 잘 던지려고 할 필요 없지. 슬슬 맞혀 잡으면 되는 거야. 볼넷이나 폭투는 혼자 다하려다가 나오는 거야. 수비수들을 믿으면 되고 계투 요원도 잔뜩 있는데 왜 혼자 헛 힘을 쓰냐구.”

의도된 발언이었다. 야구는 9명이 하고 전력투구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볼넷을 내주고 폭투를 하고 또 연속 볼넷을 해도 내버려 두었다. 실전에서 익혀야 할 마인트 컨트롤이고 그런 고비를 넘겨야 대물투수가 될 수 있어서이다.

굳이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건 가만히 이야기했다간 빨리 못 깨칠 수도 있고 류현진의 유들유들한 성격이면 그 정도에 주눅 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어서였다.

김인식 감독은 류현진의 팔꿈치 수술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재활공장 공장장’이라는 별명처럼 류현진의 회복을 자신했고 첫 눈에 반한 이 고졸신인을 과감히 선발마운드에 올렸다. 그리고 ‘왜 바보인지’를 알게 된 류현진은 김 감독으로부터 마운드에서의 투구 요령, 경기에 임하는 마음 자세들을 전수받으며 그 해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차지했다.

류현진의 새로운 18승을 등에 업고 한화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그들의 끈끈한 정은 김인식 감독의 류현진 주례로까지 이어졌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report@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리포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마니아TV

  • 5번째 내셔널 타이틀 따낸 유소연의 예선 라운드 샷(ft. 안...

  • 한·미·일 여자 프로골프를 대표하는 고진영, 최혜진, 이보...

  • [영상] 안소현, 외모보다 빛나는 티샷 '천사가 따로 없네'

  • [투어프로스윙]국대출신, 2년차 윤서현의 드라이버 스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