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 32 김응용, 김성근, 김인식과 양금택목(良禽擇木)①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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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6-30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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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새는 나무를 가려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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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용 전 한화 감독.


감독 중 가장 훌륭한 감독은 용장, 지장, 덕장 등이 아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승장이다. 강한 자가 이긴 것이 아니고 이긴 자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승장의 첫 번째 덕목은 자기와 잘 맞는 팀, 우승 가능성이 높은 팀을 맡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응용, 김성근, 김인식 세 김 감독은 모두 현명하지 못했던 것일까. 어렵게 찾아 온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우선 잡고 본 것인가.

한국시리즈 우승경력 1~3위인 그들의 마지막 승부처는 공교롭게도 모두 한화 이글스였다. 그리고 한화는 그들이 머물렀던 그 기간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에 초대받지 못하는 굴욕을 겪었으며 그로인해 3金은 30여년 손때 묻은 유니폼을 차례로 벗었다.

그들은 대한민국 프로야구계의 대표 주자였다. 우승경력 뿐 아니라 스타일 면에서도 늘 비교 대상이었다. 때로는 한솥밥을 먹으면서, 때로는 반대 진영에서 으르렁거리면서...

김응용과 김인식은 타이거즈 시절 감독과 코치로 4년여를 함께 보냈고 국가대표팀에서도 손발을 맞추었다. 비교적 궁합이 맞는 편. 타이거즈 시절 김응용감독은 더러 코치들을 험하게 대하기도 했으나 김인식코치에겐 그러지 않았다.

김응용과 김성근 역시 타이거즈에서 1, 2군 감독으로 함께 보낸 적이 있다. 교류를 많이 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주로 승부처에서 많이 만났다.

김성근과 김인식은 같은 팀에 있었던 적은 없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만난 적이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팀을 맡기는 했다. 베어스는 김성근 감독, 없어진 쌍방울은 김인식 감독이 맡았다.

‘마지막 나무’였던 한화 이글스는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 순이었다.

세 감독의 스타일은 사뭇 다르다.

일본 막부시절 일화에 나오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곧잘 비교된다.

김응용감독은 ‘새가 울지 않으면 죽인다’는 오다 노부나가, 김성근감독은 ‘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한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김인식감독은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 까지 기다린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비견된다.

그러나 이 일화는 정확하지 않다. 느낌상 대충 그렇다는 것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최후의 승자여서 인구에 회자되는 것 일뿐 딱 잘라서 정의 할 수는 없다.

김응용감독이 그렇게 보인 것은 선수를 내칠 때 인정사정 두지 않는 까닭이다. 김감독은 에이스급이었다 해도 기량이 떨어지면 바로 후선으로 밀어냈다.

타이거즈 시절 김일권, 이순철, 김무종을 과감히 아웃 시켰다. 김일권 자리는 이순철에게 주었고 이순철을 밀어 낸 자리엔 김창희를 넣었다. 김무종 자리는 장채근에게 넘겼다. 대체적인 반응은 아직 쓸만한데 ‘너무 한다’였다. 감독에게 찍혀서 그렇다고들 수근거렸지만 결과적으론 적시에 부드럽게 선수교체를 한 것었다.

그런 용병술 덕분에 타이거즈에선 스타선수가 다 빠진 상태에서 무명의 고졸 출신 선수들을 데리고도 정상에 올랐고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의 전과를 올렸다.

삼성에선 재능을 아꼈던 김기태를 밀어 내는 것으로 선수단의 군기를 잡았고 삼성의 한 맺힌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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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전 한화 감독.


김성근 감독은 팀 체질을 원하는 대로 바꾸는 능력을 지녔다.

인천연고의 태평양 돌핀스와 전북연고의 쌍방울 레이더스는 만년 약체였다. 김성근은 포스트시즌 참가가 막막했던 이들 두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올리는 전과를 기록했다.

1989년 김 감독이 맡은 태평양은 평균 60점의 하위팀. 김 감독은 철저하게 관리하며 그들을 조련했다. 경기 초 이미 마지막 결과까지 예측하며 공 하나, 방망이 하나에 사인을 냈다. 감독 혼자 북 치고 장구 쳤다. 선수들은 그저 태엽 감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 역시 대단한 능력이라는 점이다. 야구를 모르고 자기 선수를 모르고 상대를 모르고 데이터를 모르면 불가능한 일이다. 김 감독은 그 모든 걸 머리 속에 넣고 처음부터 끝까지 주판을 튀겼다.

그의 지시를 받은 선수들 중 상당수는 경기가 끝난 후 그를 신처럼 떠받들었다. 감독의 예측이 그대로 들어맞았고 덕분에 플레이오프전에 나갔으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위 ‘김성근사단’이 생긴 이유이다.

돌아다닌 팀이 많아지고 세월이 흐르면서 김성근을 추종하는 ‘신자’가 늘어 난 것이지만 썩 뛰어난 재목은 아니었다. 구단으로선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고 헤어질 때 늘 문제가 된 부분 중 하나이다.

쌍방울은 시즌 3위의 성적이 거의 불가능한 팀이었다. 기본적으로 인재가 없었다. 그러나 김감독은 96년 팀을 맡자마자 2년 연속 3위로 끌어 올렸으며 팀 사상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전을 치르기도 했다.

쌍방울 역시 60점대의 팀이었다. 감독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가 만만찮았다. 창의력, 그런 건 애초부터 없었다. 철저한 관리야구이고 계산된 야구였다. 4번타자라도 필요하면 번트를 해야했고 선발이라도 여차하면 바꿔치웠다.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였지만 팀이 치고 올라가자 모든 불평불만이 다 묻혀버렸다.

그러나 김성근의 문제는 80점 이상의 팀이나 선수를 만날 때였다. 머리가 굵어 감독의 생각대로 따라오지 않기 때문에 힘을 못 쓴다.

91년의 삼성이 대표적이다.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었던 삼성은 김 감독이 해달라는 건 뭐든지 다 해줬다. 아침에 요구하면 저녁에 해결하는 식이었다. 김 감독이 ‘너무 잘 해줘서 무섭다’고 할 정도였다. 우승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다 취했는데도 우승 하지 못하면 옷을 벗는 수 밖에 없음을 그는 눈치 채고 있었다.

선수들도 국가대표급이었다. 실력대로라면 김성근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거나 한 번은 우승을 해야 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 참가가 고작이었다. 한 번은 플레이오프전, 한 번은 준플레이오프전에서 나가 떨어졌다. 삼성 정도의 실력이면 어떤 감독이든 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은 재평가 되었고 그로부터 근 10년간 감독직을 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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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전 한화 감독


김인식 감독은 기본적으로 기다림의 야구다.

신뢰와 기다림은 정확한 분석이 있어야 가능하다. 선수가 엉망이고 팀의 손발이 맞지 않는데도 그저 기다리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선수의 가능성, 훈련 태도, 몸 상태를 체크하면서 커 올 때까지 참는 것이다.

95년, 꼴찌팀을 일약 우승으로 이끌며 명장의 대열에 오른 비결이 기다림이었다. 당시 베어스선수들의 수준은 대략 80점선. 하기에 따라 4강은 충분했다. 그 전해 바닥을 긴 것은 잦은 선수교체 때문이었다.

김인식은 선수 한 명 한명 체크했다. 결론을 낸 후엔 잘 할때까지 기회를 주었다. 전임 감독이 한 번 못하면 빼는 것과는 반대였다. 일단 믿으면 기용하고 기용하면 의심하지 않았다. 들쭉날쭉 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선수들이 경기를 거듭할수록 안정을 찾았다. 그리곤 묵혀두었던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전 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선수들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믿음이 우승의 원동력이었다. 굳이 감독의 눈치를 보지 않는 창의력의 야구도 믿음에서 시작되고 끊임없는 투지도 안정된 상황에서 발휘된다.

문제가 있다면 선수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이고 숨가쁜 승부의 세계에선 그것이 결코 미덕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승장이 되려면 이 방법 저 방법 다 쓸 줄 알아야 한다.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으면 베어야 하고 꾀를 부리면 달래야 하고 잠재력이 보이면 기다려야 한다. 선수를 보는 눈이 좋아야 명감독이 된다. 경기는 경기장에서 벌어지지만 경기장에 들어오기 전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하고 그것이 감독의 몫이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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