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미지 스토리] 스포츠 스타들의 골프 이야기 13-군용담요, 매트, 그리고 탁구공으로 만든 80대 스코어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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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6-28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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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사기당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속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핸디캡 등 모든 룰이 자신에게 오히려 유리한 편이어서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런데 결과는 두 번 모두 엉망이었고 주머니가 텅 비었다.

엄용수씨는 탁구 국가대표 출신. 선수로써 뚜렷한 족적을 남기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운동신경이 발달해서 빠르게 골프에 적응했다. 10개월여 거의 매일 연습장에 다녔더니 90대 초반은 확실했고 가끔 80대도 기록했다.

그러던 차 사업을 하는 주변의 몇 사람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의 이력을 아는 그들은 ‘역시 운동선수 출신이라 다르다’며 추켜세웠다. 우쭐해진 엄용수씨는 그들이 하자는 대로 내기를 했다. 자신들은 84~85개 정도 친다며 그에게 10타를 주었다.

그들의 핸디캡은 12에서 14. 자신은 20. 차이가 6~8타 정도의 차이인데 10타의 핸디를 받았으니 이익이었다. 배판이 있다고 해도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끝난 뒤 계산하면 손실이 보통 큰 게 아니었다.

그렇게 두어번 당하고 나자 오기가 생겼다. 돈 문제도 있고 승부에서 당한 것도 억울했지만 운동선수 출신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가만있을 수 없었다. 은퇴 후 석, 박사과정을 거치는 중이라 시간이 많지 않았고 동네 연습장에서 그들과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 ‘방구석 훈련’으로 모드를 잡았다.

칩샷과 퍼팅연습에 집중했다. 군용담요에 미터 표시를 한 후 베란다 창문에 걸었다. 10m에서 40m까지 4단계로 나누었다. 가장 하단이면 10m, 그 위에 맞추면 20m였다. 응접실 맨 끝에작은 매트를 설치해 놓고 거기서 샷을 했다.

퍼팅연습은 군용담요위에 고무 홀컵을 놓고 했다. 군용담요는 그린과 느낌이 상당히 비슷해서 퍼터 연습에 최적이라고 했다. 공은 탁구공을 사용했다. 가벼운 공을 정확하게 구멍에 넣을 수 있으면 무게감이 있는 골프공은 더 쉬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퍼팅연습을 하다가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20개가 연속 들어가면 연습 끝이나 도중에 한 번이라도 빠지면 처음부터 다시 카운트했다. 어쩌다 성공하면 그 맛으로 다시 시작했다.

칩샷은 거리별로 하지만 30m를 중심거리로 잡았다. 몸에 익히는 것이 중요했고 중심거리를 자유자재로 재단 할 수 있으면 10m를 더하거나 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남몰래 한 방구석 훈련 3개월여. 좀 늘었다고 했으나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드라이브나 아이언의 거리가 늘지 않았기에 별다른 어필이 없었다. 그러나 엄용수씨의 샷은 그야말로 컴퓨터 샷이었다.

그린 근처에선 거의 정확하게 홀컵을 향해 갔고 대부분의 공이 홀컵 4~5m 거리에 있었다. 4m 정도의 거리는 원 퍼트였고 엣지에 떨어져도 투 퍼팅으로 막았다. 파 온을 못하고도 정교한 칩샷과 퍼팅 덕분에 서너차례 파를 했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선수’여서 달라진 것을 모를 리 없었지만 워낙 단기간의 변화여서 ‘운발’로 치부하려고 했다. 그 역시 최고의 일진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결과는 흐뭇했다. 그동안 몇 차례의 패배를 완전히 만회하며 썰렁했던 주머니도 채웠다.

그 날은 워낙 잘 되었지만 엄용수씨는 이후 80대 초중반의 스코어를 꾸준히 유지했다. 물론 연습도 계속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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