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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스토리] 돌아온 김연경, 그는 누구인가?

2020-06-07 17:57

[마니아 스토리] 돌아온 김연경, 그는 누구인가?
‘백세출의 슈퍼스타’.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 그게 백세출이고 그게 김연경이다.

김연경(1988년생)은 대한민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터키에서도, 중국에서도 똑같이 ‘백세출’의 스타였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우승국의 선수가 아니면서도 MVP로 뽑히고 최고득점을 기록한 세계적으로 희귀한 선수이다.

김연경의 포지션은 공식적으로 레프트이다. 하지만 그다지 의미가 없다. 여자선수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백어택을 ‘생활화’한 선수로 후위에서 공격할 땐 좌,우, 정중앙을 가리지 않고 뛰어오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인해 김연경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활달한 성격에 거침없는 의사 표시로 국내외 팬들을 사로잡고 있으니 우리나라 스포츠 100년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배구천재다.

하지만 이 백세출의 천재도 출발은 시원치 않았다. 운동신경은 나쁜 편이 아니었지만 키가 문제였다. 원곡중학교 3학년 때의 키가 170cm 정도. 그래서 안산서초등학교 4학년때 배구를 시작했지만 세터 아니면 리베로였다. 운동을 계속 해야 할것인지를 의심할 때 쯤(수원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키가 갑자기 자라기 시작했다. 고 1때 10cm이상 크더니 졸업할 때는 20cm 넘게 자랐다.

세터와 리베로를 하며 감각을 익힌 터에 높은 키까지,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초고교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2005년 10월 드래프트 1순위로 흥국생명의 지명을 받았고 11월에는 일약 국가대표선수로 뽑혔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을 골라 잡기위해 2004시즌 꼴찌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눈총을 받으면서도 ‘꼴찌 노력’의 보람이 있었다. 바로 전 해 최하위였던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가세한 V-리그 2005~2006 시즌에서 통합우승을 했다. 프로 데뷔 첫 해 득점상, 공격상, 서브상까지 휩쓸며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 결정전 MVP, 그리고 신인상을 수상한 김연경이 없었다면 흥국의 대변신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데뷔 첫 해의 무리 등으로 3년 여간 풀타임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2006년 5월엔 오른쪽 무릎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고 도하 아시안 게임 때는 왼쪽 발바닥 통증에 시달렸고 2006~2007 시즌 이후엔 왼쪽 무릎 연골 파열로 인한 부상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다.

김연경은 하지만 아픈 중에도 무리를 하며 흥국생명과 국가대표팀에서 주공으로 뛰었다. 그 때문에 부상이 쉽게 낫지 않아 힘들었지만 성격상 자신의 몸 관리를 하느라 팀을, 국가대표경기를 모른 체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결국 2006~2007 시즌 흥국생명의 2년 연속 통합 우승, 2007~2008 시즌 정규리그 1위를 이끌며 3년 연속 공격상과 정규리그 MVP상을 수상했지만 베이징 올림픽 최종 예선을 앞두고 무릎 연골이 다시 파열, 또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그 해를 시름 속에 보냈지만 그것은 다시 날기 위한 꿀같은 휴식기였다. 약속 된 2009년, 김연경은 시즌 챔피언 결정전 MVP를 뒤로 하고 일본으로 날아갔다. JT 마블러스와 2년 계약, 프로 배구 출범 후 처음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여자 선수가 되었다.

기대와 우려 속에 시작된 일본 V리그. 김연경은 그곳에서도 거침없었다. 처음부터 주전으로 나서 경기 당 평균 24.9점을 올리는 활약으로 전년도 하위권(10팀 중 9위)이었던 JT 마블러스를 시즌 우승으로 이끌었다. 특히 팀은 개막전부터 25연승을 기록했다. 그 연승의 현장에는 언제나 김연경이 있었다. 특히 2010년 2월 6일 열린 도레이 애로즈 전에선 45득점을 올리며 흥국생명 시절 자신이 기록한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인 44득점을 갱신했다. 김연경은 그 시즌에서 득점상(696점)을 받았으며 공격성공 횟수 부문 1위, 공격성공률 3위, 블로킹 10위의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일본 V-프리미어리그의 다트카와 미노루 가덴소 에어리비스 감독은 김연경을 “일본에서도 100년에 한 번 나올 선수”라며 극찬했다.

2009년의 국제무대 성적 역시 특급이었다. 8월의 월드그랑프리에서 팀은 1승8패로 최하위를 했지만 김연경은 179득점으로 예선 득점 1위를 했다. 아시아선수권과 월드그랜드 챔피언스컵에서도 김연경은 득점 1위를 했다.

불과 3년여의 활약으로 세계적인 선수가 된 김연경이었지만 그의 성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졌다. 일본의 JT 마블러스 (2009년~2011년), 터키의 페네르바흐체 SK (2011년~2017년), 중국의 상하이 (2017년~2018년), 다시 터키의 엑자시바시(2018년)를 전전했지만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 날아왔고 대회 때 마다 고군분투했다.

코트에서 보여준 화려한 강스파이크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성격의 그는 훗날 배구협회가 마련한 ‘김치찌개 회식’을 자비를 들여 ‘불고기 회식’으로 바꾸는 ‘이벤트’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협회는 스타일을 구겼지만 팬들은 김연경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한 팬들의 사랑은 결국 그의 터키리그 이적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김연경은 2012년 터키 리그 페네르바흐체 SK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이적을 결심했다. 김연경은 흥국생명에서의 4시즌, 일본, 터키에서의 임대기간 3년으로 이미 FA자격을 획득했다고 생각했지만 국내 소속팀인 흥국생명은 일본, 터키의 임대기간 3년을 포함시키지 않았고 그러므로 아직 FA자격이 없다고 했다.

김연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네르바흐체 SK와 2년 계약을 했다. 그러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힘이 있는 협회나 소속팀 그리고 한국협회측의 해석을 받아들인 국제연맹은 계약무효판정을 내렸다.

미아가 되어버린 김연경. 어느 곳에도 설 무대가 없었다. 하지만 여론의 그의 편이었다. 김연경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여자배구를 4강으로 이끌자 김연경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김연경은 그 때문에 오랜 시간 방황을 했지만 여론과 팬들의 끈질긴 이슈화 등으로 국회까지 나서 움직이자 배구협회가 결국 국제 이적 동의서를 발급하게 되었고 2014년 2월 7일

국제배구연맹이 최종 결론을 냄으로써 김연경은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해 열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여자배구를 정상으로 이끈 김연경은 2015년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 2016년 리우 올림픽, 2017년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 등에서 ‘Best Outside Spiker’로 선정되기도 했다.

벌써 10년 넘게 최정상의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는 김연경의 마지막 꿈은 세 번째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것. 2021년 도쿄올림픽은 그의 마지막 올림픽이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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