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포츠 100년](24)조선체육회 임원 첫 총사퇴 부른 부정선수 시비

정태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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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5-1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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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에 열린 제4회 전조선축구대회는 부정선수 시비로 파행을 겪고 조선체육회 전 임원이 총사퇴하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따로 날짜를 정해 결승전을 치르는 한층 성숙된 면을 보여 주었다. 사진은 당초 예정보다 20일 가까이 늦게 치러진 결승전 장면과 소학단에게 우승한 평샹 광성1923년에 열린 제4회 전조선축구대회는 부정선수 시비로 파행을 겪고 조선체육회 전 임원이 총사퇴하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따로 날짜를 정해 결승전을 치르는 한층 성숙된 면을 보여 주었다. 사진은 당초 예정보다 20일 가까이 늦게 치러진 결승전 장면과 소학단에게 우승한 평샹 광성보통학교 선수들[동아일보 사진 캡쳐]
조선체육회가 출범한 지 4년째에 접어든 1923년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한해였다. 우리나라에는 큰 수해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일본은 관동대지진(9월 1일)이 일어나면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조선인이 방화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근거 없는 낭설이 퍼지면서 조선인과 조선인으로 의심받은 중국인과 심지어 일본인까지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엄청난 희생이 났다.

이런 어지러운 사회 분위기에도 조선체육회는 제4회 전조선야구대회(5월 17일~20일), 제3회 전조선정구대회(10월 15일~17일), 제4회 전조선축구대회(11월 21일~23일)를 주최했다. 정구대회에서는 처음으로 지금의 초등학교인 소학단 경기가 신설돼 스포츠 확산에 큰 계기를 마련했지만 야구대회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축구대회서 부정선수를 둘러싸고 일어난 소요로 조선체육회 창립 이후 전 임원이 모두 사퇴하는 불미스러운 사태가 일어났다.

응원단을 퇴장시킨 야구대회
먼저 사고는 전조선야구대회 청년단 중앙체육단과 배재청년회의 2회전에서 터졌다. 중앙체육단은 서울에서 유명한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이라 배재학생 청년회원으로 조직된 배재청년회가 상대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이미 2회에 17-4로 벌어져 승부가 기운 상태였는데 중앙이 3회 말 공격에 들어갈 즈음 배재응원단에서 중앙선수가 관중석을 향해 함부로 무례한 말을 내뱉고 불손한 행동을 해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다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 소란이 선수단에게로 불똥이 튀어 티격태격하자 윤치영 주심이 돌연 중앙 주장인 박석윤과 배재 감독 마춘식에게 퇴장을 명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이에 불복하고 항의를 이어갔고 조선체육회 임원진들도 경기를 중단시키고 장시간 논의를 했지만 사태해결의 묘안이 나오지 않고 장내 소란만 더해갔다. 윤치영 주심은 대한민국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의 숙부로 대한민국 초대 내무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중앙고보에서 야구와 축구선수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조선체육회 각종 경기대회에서 심판을 보았는데 깐깐하기로 이름이 났었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배재 응원단이 자꾸 웅성거리자 이번에는 윤치영 주심이 배재 응원단이 자기 학교 운동장에서 텃세를 부리는 것으로 보였는지 배재 응원단 전체에 퇴장 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그러자 배재선수단은 부당한 조치라며 기권해 버렸다.

박석윤과 윤치영의 앙금은 마지막 날 중앙청년회와 대구청년회의 결승전에서 또다시 드러났다. 결국 기권승으로 결승에 진출한 중앙청년회는 대구청년회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다 4회에 4점을 얻어 전세를 뒤집었는데 이때 엉뚱한데서 다른 문제가 터졌다. 다음 경기(휘문고보-오산고보의 중학단 결승전) 응원을 위해 휘문고보 응원단이 밴드를 앞세워 시끌벅적하게 나타났다. 그러자 윤치영 주심이 경기진행과 심판을 보는 데 방해가 된다며 휘문고보 응원단에 퇴장을 명령했다.

이에 전날 퇴장명령을 받아 기분이 상했던 박석윤이 오히려 윤치영 주심에게 ‘무슨 상관이냐. 정신 차리라’고 과격하게 항의하면서 일시에 장내는 뒤숭숭하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윤치영 주심은 다시 모욕적인 말을 한 박석윤에게 퇴장명령을 내렸다. 이것이 또 화근이 되어 한창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은 휘문 응원단만 퇴장을 시키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경기를 속행해 중앙체육단이 23안타(10도루)를 퍼부어 12안타(9도루)의 대구청년회에 17-12로 승리, 2연패를 달성했다.

부정 선수를 막기 위한 대회 강령이
오히려 부정선수 시비 일으킨 축구대회

조선체육회가 1923년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련한 제4회 전조선축구대회에서는 부정선수를 막기 위한 대회 강령이 오히려 부정선수 시비를 일으켰다. 조선체육회는 소학단, 중학단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서 자주 부정선수 시비가 벌어지자 이를 막기 위해 재적기간이 1년이상 되어야 학교 소속으로 출전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해 대회 강령에 넣었다.

바로 이것이 문제를 일으켰다. 중앙고보와 평양 광성고보와의 경기에서 광성에 부정선수가 3명이니 5명이니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중앙은 부정선수가 있는 팀과는 경기를 할 수 없다며 정식으로 대회 주최 측에 항의를 했다. 사실 광성에는 광성고 4년제를 졸업하고 다시 5학년에 입학한 1명이 있을 뿐이었다. 당장 확인이 곤란하자 광성과 중앙의 경기는 문제 해결 때까지 다음으로 넘기고 배재고보와 군산영명학교 경기를 끝으로 첫날 경기를 마쳤다. 첫날 경기부터 부정선수가 폭로되자 주최 측은 밤을 새워 가며 간부회의를 했고 참가한 학교들은 상대 학교들의 부정선수 적발을 위한 탐색으로 밤을 새울 정도였다.

그 다음날 중앙이 부정선수 시비가 불거진 1명을 제외한 10명이 된 광성과 맞붙어 승리하자 이때부터 사방에서 흐물흐물하던 분화구는 일시에 폭발했다. 광성은 숭실의 부정선수 1명을 적시해 주최 측에 항의하고 숭실은 오산의 부정선수를, 오산은 휘문의 부정선수를…. 이렇게 하여 대회는 결국 기괴망측하게 진행이 되고 말았다. 이러자 오산학교는 스스로 부정선수가 있음을 자인하고 기권한데 이어 함흥 영생마저 따라서 기권하는 바람에 중학단은 준결승전을 거치지 않은 채 배재고보와 중앙고보가 결승전을 벌이게 됐다.


이렇게 중학단에서 부정선수 시비로 경기를 중단되고 있을 때 조선체육회 회장이자 보성전문 교장을 겸하고 있는 고원훈 회장은 보성전문학생들의 동맹휴학 사건 관계로 인천에 출장 중이었다. 따라서 주최 측에서 중심인물이 없는데다 숭실 측의 항의는 실로 맹렬해 체육회 간부들도 일시에 의견을 통일하기가 어려워 원달호를 임시 회장대리로 정하여 청년단의 경기를 일부 진행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사고가 나고 말았다. 2연패에 도전하는 불교청년회와 수양단의 경기에서 서로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1-1로 맞서던 중 수양단에서 이석찬 주심에게 불교청년회에서 반칙을 했다고 항의를 하던 가운데 공교롭게 불교청년회에서 슛한 것이 골인이 되어 버렸고 이것이 골로 인정이 되었다. 그러나 수양단은 이에 항의, 경기를 마치지 않고 기권하고 말았다. 이렇게 사고가 연거푸 터진데다 숭실학교는 학교 명예와 선수자격에서 퇴장의 억울함을 주장, 완강하게 버티며 대회장을 강점했고 조선체육회도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퇴장 명령을 고수했다. 양편의 주장이 강경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자 많은 관중들이 모여 가뜩이나 신경이 예민해 진 일제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여 정사복 경찰들을 수시로 보내 점검하는 등 분위기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이었다. 여기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기다린 관중들도 분개하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오후 5시쯤 인천 출장에서 급하게 돌아온 조선체육회 고원훈 회장은 간부회의를 열고 선후책을 강구했으나 시간은 어느듯 6시가 가까워져 경기진행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지고 말았다. 결국 조선체육회는 연기를 선언하고 이번 대화를 원만히 마치지 못하게 되한데 대해 책임을 지고 회장과 이사는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조선체육회 임원 총사퇴와 함께 휘문고보에서도 교장이 부정선수에게 증명서를 발급했다는 이유로 불신임 소동이 일어나 휘문고보 교장은 경질되고 말았다.

제4회 전조선축구대회를 원만하게 마치지 못한 책임을 지고 회장 및 이사, 간사들이 사퇴한 조선체육회는 11월 28일 오후 4시 명월관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최린을 새 회장으로 영입하고 새 집행부를 구성했다. 이어 신임 집행부는 12월 2일 이사회를 개최해 마치지 못한 축구대회 결승전을 12월 8일 오전 10시부터 훈련원운동장에서 열고 관중들에게는 무료로 공개하고 소학단 결승에 진출한 평양 광성학교에는 여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열린 결승전은 전날 내린 비로 한 시간 늦게 시작해 소학단에서 평양광성이 보인소학교에 1-0으로 이겼으며, 중학단에서 중앙과 배재는 4-4로 비긴 뒤 성적으로 배재가 승리하고 청년단은 불교청년회가 임술단에 3-1로 승리하며 2연패를 이루어 모두 우승팀을 가려내고 마무리했다.

조선체육회는 비록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임원진의 사퇴와 결승전의 관중 무료입장으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행정능력에서 한 계단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록 이 대회가 부정선수 시비로 여러 가지 잡음을 낳았으나 대회 도중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첫날에는 럭비구락부-중앙고보, 이튿날에는 럭비구락부-보성고보의 럭비 시범경기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열려 관중들에게 럭비를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정태화 마니아리포트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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