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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 용어 산책 13] 1966년 월드컵, 북한 축구 ‘사다리 전법’은 어디에서 유래했나

2020-05-03 08:58

'사다리전법'으로 알려진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유명한 북한 선수들 경기 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다리전법'으로 알려진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유명한 북한 선수들 경기 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 한국과 이탈리아전에서 붉은 악마 응원단은 스탠드에서 ‘1966년 어게인(again)'이라는 카드섹션을 펼쳤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북한과 이탈리아의 조별 예선전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1-0으로 제압했던 기적을 재현하자는 의미였다. 한국은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탈리아를 안정환의 결승골로 물리치고 8강전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은 ‘사다리전법’이라는 특이한 전법을 구사해 세계축구계를 경악케했다. 공중볼을 잡으려는 상대 공격수 한 명을 놓고 시간차를 두고 세 명의 수비수가 같이 밀어 올리며 마크하는 방식이다. 마치 럭비에서 스로인 공격과 유사한 모양새이다. 북한의 사다리전법은 사진 1장으로 남아있다. 수년 전 북한 소식을 전문적으로 한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스튜디오에서 북한 축구의 사다리전법을 출연진들이 어설픈 동작으로 재현하기도 했다.

사다리전법은 당시 신장이 큰 유럽선수들과 맞서기 위해 나란히 서서 뒤에서 허리를 잡아 더 높이 올리는 북한 선수들의 모습이 마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것 같이 보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북한은 체격이 좋은 이탈리아 선수들을 상대로 수비전술에서 사다리전법을 활용해 공격을 막아내고 박두익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해 아시아 국가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래 사다리 전법은 북한이 했던 그런 전술이 아니다. 본래는 일자 공격, 일자 수비로 2열 횡대로 펼치는 전술을 말한다. 즉 골키퍼를 뺀 10명의 선수를 공격수 5명, 수비수 5명으로 나눠 5-5, 4-6 포메이션처럼 미드필더없이 공격수와 수비수만 두는 형태이다. 공격수는 공격만 하고, 수비수는 수비만하는 극단적인 전술이다. 이 전술이 성공하려면 빠른 발과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는데, 당시 북한은 박두익을 비롯한 발 빠른 선수들을 공격 전면에 내세우고 수비수가 공을 공격 전면에 차 주면 재빨리 상대 수비벽을 허물고 골문을 두드렸다. 이 방법이 주효했던 게 이탈리아전이었다. 사다리전법은 전술 라인을 두 개만 두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방법이다. 공간전술이 크게 발달한 현대 축구에서는 이런 형태를 구사하는 팀들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마치 은유적 표현처럼 보이는 사다리전법이란 말이 나오게 된 것은 고대 전쟁의 군사용어에서 유래됐다. 공성전을 할 때 후방에서 화살이나 돌을 날려 상대 수비군을 흐트려 놓는 사이 공격부대가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타 넘어가는 것을 사다리전법이라 불렀다. 이는 군사적 전술의 방법이었다. 축구에서는 기본적인 전술 형태를 공격, 수비로 나눠 2개 전선을 구축하며 플레이를 할 때 사다리전법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사진상으로 남아있는 북한이 했던 것과는 다른 전술이다.

북한이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했던 전법이 사다리전법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시각적으로 마치 북한 수비수 여러 명이 서로를 밀어주며 공중에 떠오른 모양을 보고 하나의 전술로 표현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도 많은 축구팬들은 1966년 북한축구와 사다리전법을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갖고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사다리 전법에 대해 FIFA의 룰 개정으로 반칙이 되었다는 등의 말이 있다. 하지만 이는 북한 선수들의 사진을 사다리전법으로 잘못 알고 나온 정보이다. FIFA는 이런 플레이에 대해 제재하거나 반칙으로 명시한 바가 없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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