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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흑인 LPGA 골퍼로 산다는 건

2020-02-20 16:34

테니스 사상 최초의 흑인 그랜드슬래머이자 LPGA 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골퍼인 알테아 깁슨.
테니스 사상 최초의 흑인 그랜드슬래머이자 LPGA 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골퍼인 알테아 깁슨.
알테아 깁슨이 윔블던 테니스대회 여자부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우승 쟁반을 받고 있다. 사진=LPGA.COM 제공
알테아 깁슨이 윔블던 테니스대회 여자부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우승 쟁반을 받고 있다. 사진=LPGA.COM 제공


골프에서도, 테니스에서도 벌써 잊혀진 이름이 됐다. 그녀의 이름은 알테아 깁슨. 지난 2003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십수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녀는 미국 스포츠 역사에서 세월 속에 사라질 이름이 결코 아니다. '‘최초’가 따라붙는 역사적인 타이틀을 여러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테니스와 골프 골수팬들 외에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테니스 선수들과 심지어 몇몇 젊은 프로선수들에게 “테니스에서 최초의 흑인 메이저 챔피언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대개 윌리엄스 자매들 중 한 명이거나, 아서 애쉬로 나올 것이다.

깁슨은 1950년대말 테니스 윔블던 대회와 US오픈대회 단식종목에서 우승한 최초의 흑인이었다. 여자테니스 세계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던 그녀는 36세의 나이에 성공한 테니스 선수에서 LPGA 선수로 전업, 한동안 필드를 누볐다.

스티브 유뱅크스 LPGA.COM 편집장은 최근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홈페이지에 자세하게 실었다. 그녀가 흑백 인종 차별이 두텁게 드리워진 장벽을 어떻게 극복하며 치열하게 삶을 살았는지를 재조명했다.

깁슨은 생전에 출간된 자서전에서 "나는 항상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10대 때 난폭하고 거만한 여자아이였을 때부터 스틱볼과 농구, 야구, 조정, 테니스를 하고 밤에는 볼링장 주변을 서성거렸다"고 회상했다. 섹시한 알토 음성을 가진 뛰어난 뮤직션인 그녀는 유명 레코드사와 녹음 계약을 맺고 음반을 내기도 했다. 그녀는 인기 예능 TV 프로그램인 '에드 설리번 쇼'에 두 번 출연하는 등 성공적인 뮤지컬 투어를 한 후 프로 골프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LPGA가 됐을 때, 이미 그녀는 성공한 선수였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그녀는 LPGA 투어 171회 출전 경험을 갖고 있다. 1980년 LPGA에 한 번 더 도전했고 53세의 나이로 LPGA투어 Q스쿨에 복귀하는 저력을 보였다.
그녀가 테니스와 골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운동에 관한 특유의 섬세한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테니스 선수 시절, 낮에는 대부분의 코트를 백인 선수들이 장악해 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녀는 밤 늦게나 운동을 해야했다. 하지만 밤 운동은 그녀에게 비록 네트를 제대로 볼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예민한 터치감을 터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악재를 호재로 활용한 셈이다.

1963년 LPGA에 입단한 그녀는 프로골퍼로서도 현실적인 인종차별을 이겨내야했다. 법적으로는 인종차별법이 폐지됐지만 현실적으로 백인골퍼들은 유일한 흑인인 그녀를 각종 대회 에서 심한 차별을 가했다. 오픈 대회가 아닌 초청 대회서 그녀는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참가 기회를 얻지 못했다.


소수 인종으로 여러 장애물에 부딪혔으나 그녀는 오히려 운동으로 이름값을 높였다. 게다가 뛰어난 예능감은 격한 승부를 치러야 하는 그녀가 온화한 성품을 형성하는데 기여를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사상 최초의 흑인 선수였던 재키 로빈슨과 함께 그녀는 인종 차별을 넘어서 스포츠에서 인간적인 감동을 안겨준 시대의 영웅이었다. LPGA에서는 차별을 견뎌내며 ‘재앙’같은 선수 생활을 했지만 차별을 극복한 스포츠의 상징적인 인물로 ‘축복’된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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