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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포츠 100년] (2) 대한민국 스포츠의 발상지는?

2020-02-11 08:56

3·1 운동때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읽은 장소인 조선체육회 창립장소인 옛 태화관 터.
3·1 운동때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읽은 장소인 조선체육회 창립장소인 옛 태화관 터.
우리나라 체육의 발상지는 어디일까?

우리나라에 근대체육은 대원군의 빗장이 풀리면서 서구 선진 문물과 함께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고종이 교육조서를 통해 지육(智育), 덕육(德育)과 함께 체육(體育)을 강조하고 서양 선교사들이 설립한 신식학교들이 체조를 정규교과과정에 포함시키며 근대 체육이 발아를 시작했다.

구한말 국권회복을 위한 국민운동의 하나로 전개되었던 우리의 근대체육은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과 반일, 그리고 극일의 표상이 되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그리고 35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일제 강점기 생활을 하면서도 우리 체육 선각자들은 체육을 단순하게 운동경기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신문명과 신문화에 눈을 뜨게 하고, 국권회복을 통한 자주독립을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건강하고 위생에 힘쓰야 한다고 끊임없이 가르쳤다.
항일과 반일을 넘어 극일에 앞장섰으며 나라잃고 실의에 젖은 우리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와 함께 독립 의지를 심어 주는데 앞장섰다.

아마도 일본을 누르고 승리하는 기쁨이라도 없었다면 그 지옥같은 일제 강점기를 버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김은배 선수가 마라톤 6위에 올랐을 때 조선인들은 '세계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세계최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을 때 한반도는 환희에 들떴고 감격에 울먹였다.

그리고 광복이 된 뒤에는 아직 정부도 수립되기 전에 신생독립국 'KOREA'를 국제무대에 가장 먼저 알리는 첨병역할을 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월드컵축구,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등 세계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개최하면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히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우리 체육이었다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우리의 체육은 근·현대사에서 그 어떤 분야보다 엄청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 체육의 발상지나 기념비적인 장소에 대한 고찰은 부족한 것이 또한 우리 체육의 현주소다.

이것은 우리나라 근대 체육이 우리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국운이 기울기 시작할 때에 대부분 외세에 의해 도입이 됐고 또 일제 강점기에 그 기반이 닦여졌다는 데서 오는 반감이 크게 작용한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선 우리나라 체육의 뿌리를 아예 찾지 않고 방관만 하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이는 우리 체육계에 기념할 곳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제100회 전국체육대회를 개최한 서울시는 옛 배재고보 운동장 자리(현 배재박물관 자리)에 제1회 전국체육대회 개최 기념 표지석을 설치했다.
이 표지석에는 제1회 전국체육대회 개최지라는 큰 제목 아래 한문과 영문을 병기하고 아래에는 "전국체육대회 시초가 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1920년 11월 4일부터 6일까지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고 적혀 있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 레거시인 올림픽공원과 잠실종합운동장이 있다. 한창 일제강점기이던 1925년 개장해 2009년 동대문문화역사공원으로 탈바꿈하기까지 무려 84년 동안 우리 체육의 애환을 담았던 성동원두(옛 동대문운동장)도 기념비적이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 변방의 스포츠 후진국에서 스포츠 강국으로 변모하기까지 국가대표선수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태릉선수촌도 체육계의 기념공간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이처럼 따지고 보면 우리 체육계에 기념할 만한 장소가 한 두군데가 아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대한민국 스포츠의 발상지는 아니다.

학자에 따라 견해는 다르겠지만 우리나라 스포츠 발상지로는 크게 두 군데를 들 수있다.
그 첫째는 삼선평이다. 삼선평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운동회가 펼쳐진 장소다. 1896년 관립외국어학교 가운데 하나인 영어학교 학생들이 화류회라는 이름으로 달리기, 멀리뛰기, 포환던지기 등 아주 초보적인 육상경기를 선보인 역사적인 곳이다.

삼선평은 지금의 성북구 삼선동 · 동소문동 · 동선동 일대 마을을 일컫던 이름으로, 삼선동 남쪽 옥녀봉에서 한 옥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세 신선과 더불어 놀았다고 전하는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평(坪)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미루어 아주 평평한 대지가 있었던 것으로 삼선교 부근이라고 짐작이 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삼선평은 현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인 훈련도감이 없어지고 훈련원 공원이 되면서 각종 경기가 열리기 전까지 서울의 대표적인 운동경기 장소였다.

또 다른 하나는 조선체육회의 창립장소인 태화관이다. 태화관은 현재 서울시 종로에 있는 YMCA 뒤쪽에 있던 순화궁 자리다.
이곳은 인사동에 있던 요릿집인 명월관의 별관으로 을사오적의 한사람인 이완용의 사저이기도 했으며 3·1 운동때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읽은 장소였다.

일부에서는 이 장소가 기생이 있는 지금의 룸싸롱과 비슷한 곳이었다고 폄혜를 하기도 하지만 당시 요릿집은 지금의 호텔과 비슷해 식사도 하고 회의도 했다. 그리고 당시 기생은 시문(詩文)과 음악에 능한 지금의 연예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조선체육회는 1920년 7월 13일 역사적인 창립을 가졌고 그 맥은 지금까지 대한체육회로 이어져 1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3·1 독립운동의 발원지가 바로 조선체육회의 창립지라는 것은 묘한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결코 떨쳐 버리기 어렵다.

대한민국 체육 100년, 이제 그 뿌리를 찾는 작업도 지금보다 더 면밀하고 정확한 고증을 통해 함께 이루어 지기를 바랄뿐이다.

[정태화 마니아리포트 편집인/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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