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2 유승안의 소리장도(笑裏藏刀)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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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2-1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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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장도(笑裏藏刀) 웃음속에 칼아 숨겨져 있다.-손자 행군편

'괘심한 녀석, 꼭 저렇게 난리부르스를 쳐야하나.' 이만수의 홈런 세레머니를 보면서 민유승안은 부아가 치밀었다.
1990년4월16일 대전 구장. 삼성 이만수가 홈런을 친 후 미운 짓을 골라했다. 1루로 가면서 손을 번쩍 치켜들더니 베이스를 돌때마다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홈 베이스를 밟으며 또 한번.
이틀 연속 팀의 대패를 바라보느라 속이 쓰릴대로 쓰린 포수석의 유승안은 그 이만수를 보면서 다짐했다. '그래, 너 한번 당해봐라'.

유승안은 다시 이만수가 타석에 들어서자 말을 던졌다. "정말 굉장한 홈런이야. 넌 나이를 먹어도 힘은 여전하구나. 대단해. 또 한번 날려봐라. 좋은 공 줄께. 어차피 승패는 판가름났는데 뭐.."
다정한 유승안의 말에 뭔가 낌새를 챈 이만수는 의욕적으로 덤벼들다가 멈칫하며 물러섰다. 기분 나쁠게 뻔하데 좋은 공이라니 상식적으로도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 들어온 공은 그야말로 '홈런 공'이었다. 가운데 약간 높은 공. 이만수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였다. 건드리기만해도 홈런을 만들수 있는 공이었다. 은근히 후회가 되었지만 그래도 이만수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번에도 같은 코스다. 믿어봐. 너나 나나 이제 하면 얼마나 더 하겠냐. 나이 먹은 놈들끼리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

설마했는데 또 유승안이 말한 그대로 공이 들어왔다. 욕심이 발동한 이만수는 지나간 공을 아쉬워하며 바짝 다가섰다. 그의 움직임을 보면서 '이제 됐다'고 여긴 유승안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미끼를 던졌다.

"이번엔 바깥 쪽으로 야간 빠지는 공이다. 치지마라"

이만수는 거짓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칠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많이 빠지는 공이었다. 방망이를 잔뜩 추켜세우고 있던 이만수는 폼을 풀며 유승안을 슬쩍 쳐다봤다. 유승안은 빙긋이 웃으며 '믿어보라'는 사인을 보냈다.

이만수는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따지고보면 6-1의 스코어가 뒤집어질 리 없었다. 한 방을 더 맞으나 덜 맞으나 승부는 이미 난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승안이 형이 인심을 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생각을 정리한 이만수는 한발짝 더 다가서며 확인하듯 유승안을 쳐다봤다. "걱정마라. 니가 좋아하는 공을 넣어줄께. 또 한 번 넘겨버려라"

조금씩 말려드는 이만수를 보며 유승안은 비로소 마운드의 한희민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마침내 걸려 들었다.'

속이 끓은 건 한희민도 마찬가지였다. 유승안의 사인을 받자마자 한희민은 이만수의 허벅지를 향해 빠른 공을 던졌다. 무게중심을 앞에 두고 한 방 날리려 했던 이만수로선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이었다.
공은 정통으로 이만수의 허벅지에 꽂혔다. 퍽 소리와 함께 쓰러진 이만수가 허벅지를 만지며 씩씩거렸지만 과연 어디에다 어떻게 하소연 할 수 있겠는가.

"저 놈이 열받아서 실투 한 모양이다. 미안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유승안은 한희민과 눈을 맞추며 '통쾌한 웃음'을 나누고 있었다. "자식. 믿을 걸 믿어야지"
요란한 홈런 세러머니로 미운털이 박힌 프로야구 초대 홈런왕 이만수. 그는 그 때문에 홈런만큼 많은 '몸에 맞는 공'을 맞았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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