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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EE] "그동안 어깨에 지구를 얹고 있었다", 13년만에 우승한 이원준

2019-07-23 10:00

인터뷰 내내 그는 '편안한', 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사진 제공=한국프로골프협회
인터뷰 내내 그는 '편안한', 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사진 제공=한국프로골프협회
'골프 신동'이었지만 프로 데뷔 이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투어 13년째인 올해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KPGA선수권에서 첫 승을 만든 이원준(34세). 우승에 대한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을 그를 타이틀리스트퍼포먼스센터(TFC)-스카이72에서 만났다. 우승 컵을 들어올린지 12일만이었다.

190cm, 96kg의 건장한 체구에 골프백을 어깨에 메고 TFC-스카이72의 문을 통과한 그는 골프백을 바닥에 내려놓고 조용히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표정은 온화했고 걸음은 가벼웠지만 약간의 긴장 속에 미소를 품고 있었다. 첫 인상은 큰 체격처럼 진중해보였지만 낯선 공간과 상황에 대해 약간은 조심스러워 하는 행동이 읽혔다. 말이 13년이지, 정말 오랜 기다림 끝에 정상에 올랐고, 올해 서른 중반을 바라보며 또 오는 10월에는 아버지가 되는, 그의 '복합적인' 국면이 만들어낸 이미지였다고 기억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웃음은 주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때의 웃음을 떠올리면 가식이 '1도 없이' 해맑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승 이전에도 이런 웃음을 웃었을까? 그랬길 바란다.

자리를 잡고 앉은 그에게 "우승 축하 인사를 많이 받겠다"고 첫 질문을 했다. 그는 "친구, 아는 분한테 축하 문자를 많이 받는다"면서 "행복하다"고 웃었다.

챔피언 퍼트를 성공하고 13년만에 우승을 한 그날, 평소와 어떻게 달랐는지 정말 궁금했다.

"그날 아침부터 약간 긴장했다"고 그는 말을 시작했다. "어머니, 장모님, 와이프와 한 차를 타고 골프장으로 갔다. 나는 조용히, 생각하면서 골프장으로 가고 싶은데 옆에서 '갤러리가 어떻다, 어제 상황이 어떻다' 하니까 조금 긴장했다"고 했다. "골프장에 도착해 연습 루틴을 하니 마음이 좀 더 편안해지고 오히려 대회 생각 밖에 나지 않았다"라고 한 그는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우승 이후의 상황도 궁금했다. 우승한 직후부터 그날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과정. 처음 맞이한 우승이기 때문에 뭔가 근사한 세리머니가 있지 않았을까.

"처음 우승했기 때문에 무엇을 할 지 몰랐다. 미디어와의 인터뷰도 상당히 길었다. 이후 밥 먹고 부산에서 인천으로 바로 출발을 했다. 가는 도중에 멍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운전만 열심히 했다. 집에 도착하니 너무 피곤했다. 새벽 2시까지 짐 정리하고 자려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새벽 3시에 와이프와 라면 끓여먹고 결국은 거의 5시에 잠을 잤다. 월요일 아침에 스케줄이 있어서 한 시간 자고 나갔다. 우승 이후 운전만 열심히 한 기억밖에 없다."

못해도 부인과 와인으로 축배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우승 만찬 메뉴가 라면이었다는 것에 '씩'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그 새벽에 먹은 라면은 평소와 달리 정말 맛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 훗날 아이에게 들려주거나 부인과 기억을 소환했을 때 가장 앞자리에 놓을 수 있는 에피소드. 그래도 다음날 아침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겠지 싶었다.

"너무 힘들었다. 대회 끝나고 밥 먹고 미디어와 인터뷰 하고 운전을 4시간 이상 하고, 힘 들고, 잠도 못 잤다. 또 일본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 짐도 정리도 해야 했고. 그런 바쁜 일정이라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이원준의 첫 우승 세리머니.
이원준의 첫 우승 세리머니.
예상과 현실은 이렇게 다르다. 인터뷰 전 근사한 답이 나올 질문이라고 예상했는데 그 때의 동선을 고려치 않은 것이 패착이었다. 그러나 '힘들다, 멍했다, 바빴다'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 뭐, 그러면 됐지!!!

우승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답변이 어려울까봐 객관식으로 물었었다. 1. 상금 2억원, 2. 5년동안의 시드, 3. 인지도와 팬덤 상승, 4. 도움에 대한 보답, 5. 기타였다. 그는 '기타'를 선택했다.

"아마추어 때는 우승을 많이 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프로로도 우승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 '우승 있지 않느냐?’라고 물으면 나는 '없다’라고 말했다. 매번 없다라고 했다. 시간이 오래 지나니 무거움이 굉장히 컸다. 18번 홀을 끝내고 우승 퍼팅 하고 든 첫 느낌은 '우승해서 기쁘다'는 것보다는 진짜 13년동안 고생하고, 할 수 있을만큼 못했지만, 진짜 어깨가 쑥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직도 욕심은 많지만 그래서 그 부분이 가장 쎘다"

"그동안 어깨에 지구를 얹은 느낌"이었다는 그는 "우승 이후 다 없어지지는 않았는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이제 '우승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했다'고 답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고 또 웃었다.

인터뷰 초반에는 '어깨에 지구를 얹은 느낌'이라는 말을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질문과 답이 계속되면서 골프 신동, 아마추어 세계 1위, 당시 그보다 랭킹이 낮았던 경쟁자의 그동안의 위치 등을 고려했을 때 그가 느꼈을 상대적인 빈곤의 크기를 가늠하게 됐다(인터뷰 2편에서 상세하게 소개할 예정이다).

어깨에 얹은 짐을 '다' 내려놓으려면 어떤 일이 일어나야할까?

어렸을 때의 꿈으로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의 꿈은 이제는 다 이루지 못할 것이다. 어렸을 때는 미국PGA투어에서 우승하고,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은 못하더라도 해설자가 내 이름을 거론할 수 있는 위치에 가는 것"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미국PGA투어에서 성적을 잘 내면서 꾸준히 활동한 후 시니어투어에 갈 수 있다면 경력을 끝냈을 때 다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실적인 질문도 했다. 우승 상금을 받았는지, 또 상금은 어떻게 쓰고 있는지였다. "어제(11일) 들어왔다. 작년 말에 결혼을 했다. 그래서 빚이 생겼다. 결혼하면서 집 대출. 그것부터 열심히 갚으려 한다."

통장에 찍힌 액수를 보고 놀라지 않았을까? "한국의 화폐 단위에 대해 개념이 아직도 없다. 동그라미가 너무 많아서 와이프한테 물어봐야 했다. '이게 얼마냐, 맞냐고' 물었다. 보고 나서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짧은 순간 기뻤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결혼하면서 집을 얻기 위해 빚을 졌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는 또 웃었다. 올해 10월에는 자녀도 태어난다. 아마도 가장이라는 무게를 느끼는 중일게다. 그룹 <잔나비>의 노래 가사처럼 그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하루 하루가 참 무거운 짐일 것이다.
달콤한 키스. 첫 우승의 다른 세리머니.
달콤한 키스. 첫 우승의 다른 세리머니.
우승한 다음 주 그는 일본프로골프기구(JGTO) 출전이 예정돼 있었다. 메이저 대회인 JPGA챔피언십이었다. 우승한 이후 출전한 대회였기 때문에 뭔가 다른 대우를 받았을까.

"하나도 없었다"고 그는 또 웃었다. "선수들이 축하해 주는 것 빼고는 없었다. 일본 들어갔을 때 날씨 때문에 선수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첫 라운드가 취소되고 일요일에 36홀을 치는 상황이었다. 그냥 일주일동안 굉장히 피곤했다."

선수들의 반응은 달랐다고 했다. "굉장히 좋아했다. 화요일 저녁에 친한 선수와 밥 같이 먹고 좋은 시간 보냈다. 조민규 선수도 선수권에서 우승했고 밥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큰 대회를 앞두고 내가 제일 긴장을 하지 않은 것같다." 저녁 밥 값은 누가 냈는지 물었더니 "밥 값은 물론 내가 냈다"고 했다.

국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했으니 일본 메이저 대회 우승도 욕심냈을법 했다.

"일본으로 건너갈 때는 조금 기대를 했다. 화요일에 도착해서 운전을 4시간이나 했다. 비가 엄청 와서 수요일에 연습 못하고, 첫 라운드 취소되면서 몸이 너무 피곤했다. 그래도 지난 주 우승했으니 이번 주는 예선 탈락만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우승하고 예선 탈락하는 선수가 많기 때문이다. 첫 라운드는 잘 쳤다. 그런데 갈수록 체력이 안됐다(공동38위로 대회를 마쳤다)"

우승 했으니 가능한 질문을 했다. 12년동안 왜 우승하지 못했을까?

"많은 이유가 있다" 면서 "프로 전향하고는 내 자신의 압박이 많았다. 우승 기회가 오면 생각보다 많이 떨렸다"고 했다. "마음 속으로 떨리는 것은 괜찮은데 다리도 풀리고 생각지도 못한 샷도 나왔다. 우승할 수 있는 기회에서 마지막날 조금만 잘 치면 되는데 그 압박을 내가 이기지 못했다. 항상 굉장히 힘든 플레이를 했다. 좀 더 쉽게 풀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내가 나를 막은 것같다."

첫 승도 쉽게 얻은 것은 아니었다. 5타 앞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했지만 동타를 허용했고 결국 연장전으로 끌려갔다.

"이번 대회는 압박은 있었는데 떨리지는 않았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굉장히 편한 마음으로 쳤다. 보편적인 플레이를 보면 내가 마음에 들게 플레이를 했다. 퍼팅이 한 두 개 안 들어간 것을 빼고는. 예전에 했던 이상한 샷은 나오지 않았고 그냥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선에서 플레이가 되니까 굉장히 편안했다."

12년동안은 안 되고, 이번에는 된 이유에 대해 "진짜 나도 모르겠다"는 답을 돌려주었다. "첫 라운드부터 마지막 라운드까지 굉장히 마음이 편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특별히 멘탈 코칭을 해서 강해졌다는 것도 없다. 올해 일본에서 우승 경험을 많이 했다. 우승 조에서 플레이도 하고, 기회도 많았다. 그런 경험에서 많이 배운 것 같다."

우승했으니 할 수 있었던 다른 질문 하나. '만약, K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지 못했다면?'

"진짜 그 생각까지도 했다. 17번 홀 그린에서 18번 홀로 걸어갈 때 우승을 못하면 모든 사람에게 욕을 많이 먹겠다는 생각을 했다. 5타 리드를 다 잃고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 13년동안 우승을 못했겠지, 그림 딱 나온다!"

그 때 부정적인 생각을 어떻게 떨 칠 수 있었을까?

"18번 홀에 올라가서의 첫 생각은 '저 선수도 버디를 해야 우승한다. 아직까지는 괜찮다'였다. 물론 생각하지 못한 샷이 나오기는 했다. 그렇지만 마무리를 잘 했고, 플레이오프 가서는 진짜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우승을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마음이 편하다 보니 압박은 있는데 떨림이 없어서 가능했던 것같다."

이원준의 인터뷰 2편으로 이어집니다.


[노수성 마니아리포트 기자/cool1872@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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