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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정범', 누구 편에 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노컷 인터뷰] '공동정범' 김일란-이혁상 감독 ②

2018-01-26 06:00

25일 개봉한 영화 '공동정범'의 이혁상-김일란 감독 (사진=황진환 기자)
25일 개봉한 영화 '공동정범'의 이혁상-김일란 감독 (사진=황진환 기자)
2004년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으로 시작한 인권단체이자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 온 창작집단인 연분홍치마는, 두 개의 성격을 동시에 지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연분홍치마의 카메라가 향해 있는 곳'이다.

남들이 그다지 관심 두지 않는 것에 시선을 준다. 소재는 끊임없이 '발견'되고, 섬세하게 다뤄져 왔다. 게이, 레즈비언 등 성소수자를 담고('레즈비언 정치 도전기', '종로의 기적'), 용산참사 당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던 경찰의 위치를 짚거나('두 개의 문'),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노동자들('안녕 히어로', '플레이 온')을 바라본다.

2009년 1월 20일,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한 용산참사. 이때 농성 책임자로서, 혹은 공동정범으로서 감옥에 갔던 생존자들의 삶을 좇은 다큐멘터리 '공동정범' 역시, 관객들의 예상을 벗어난 소재에 집중한다. '같은 편에 서서 연대했던 이들의 갈등'이 그것이다.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연분홍치마 사무실에서 '공동정범'을 만든 김일란-이혁상 감독을 만났다. 함께 작업하며 나누었던 역할과, '두 개의 문'이 '연분홍치마' 작품이기에 다른 점, 언론과 MB에게 하고 싶은 말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노컷 인터뷰 ① MB, 용산참사 다큐 '공동정범' 엔딩 장식한 이유)

▶ 연분홍치마의 활동가·제작자 중 두 사람이 뭉쳐 '공동정범'을 만들었다. 함께 작업하며 각자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궁금하다. (* 두 사람은 '마마상'으로 2004년 처음 함께 작업했다)

김일란(이하 일란) : 어떤 면에서는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또 구분이 명확한 것 같다. (기자 : 뭐가 명확하고 뭐가 명확치 않았나)

이혁상(이하 혁상) : 그러게, 나도 궁금하네.

일란 : 제 입장에서 보면, 뭔가를 먼저 고민하는 건 제 역할이었고 그것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의 디테일은 혁상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경우에는 서로의 생각을 배우기도 했다.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는 건, 서사에 동의했으니 나올 수 있는 것이고. 얘기를 할 때 혁상은 주로 듣는 편이고 저는 얘기를 하는 편이다. '어떻게 할 건가' 하는 부분은 혁상의 아이디어가 더 많고.

▶ 예를 들면 어떤 건가.

일란 : 저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변동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빨리 전략을 세워야 하는 편이다. 구성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지를 고민한다. 혁상은 제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 이게 합리적이거나 적정한다고 생각하면 쉽게 동의해 준다. 혁상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 장점이자 단점은 아이디어가 너무 많다는 거다. (웃음)

혁상 : 하하하하하. (기자 : 동의의 웃음인가) 네! 저는 뭐랄까. (잠시 정적) 뭐가 있을까. 색다르게 설명할 수 없을까 해서… (웃음) 계속 인터뷰하다 보면 자꾸 (비슷한 말을 해서) 스스로도 재미가 없어지니까. (웃음) 일란이 아이디어가 많은 게 장점이자 단점인 건 맞는 것 같다. (웃음) 그런데 사실 굉장히 빛나는 아이디어다. 뭐랄까, 되게 우주 같다. (* 이 감독은 이때 실제로 큰 원을 그리는 시늉을 했다) 생각의 깊이가 깊고 외연(일정한 개념이 적용되는 사물의 전 범위)이 넓어서. 그런 아이디어를 통해 (저는) 힌트를 얻는다. 일란은 뭔가 넘나들고 횡단하는 걸 잘하는 사람이다.

저는 어디 가둬놔야 된다. (웃음) 사각의 스크린 프레임 안에서 안락함을 느낀다. 거기에 집중해서 프레임을 채우는 데에는 남들과 다른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일란의 아이디어가 광활하고 다양한 지형과 이슈와 사안과 경계를 넘나들며, 지도를 그리고 기획을 하는 사람이라면 저는 그걸 받아서 구현해 내는 역할을 한다. 이미지나 청각적인 자료를 통해서. 구현하는 것에 제가 좀 더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영화 '공동정범'의 한 장면 (사진=시네마달 제공)
영화 '공동정범'의 한 장면 (사진=시네마달 제공)
일란 : 영화를 보고 남게 되는 어떤 잔상들의 대부분은 혁상이 만든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딱 눈에 보이는 굵은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제가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며 부지불식(생각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 간에 몰입됐다면 그 영역은 혁상이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편집할 때 저는 옷 가봉하듯 스토리를 붙여 논다. 서사 구조를 만들어 스토리텔링을 하거나 인터뷰를 골라낸다. 직조하는 재미가 있다. 그러면 혁상은 컴퓨터에 앉아서 분위기를 만든다. 같은 편집점을 고르더라도 저는 큰 내용 중심으로 뒤에 뭐가 붙는지 그런 걸 계산한다면, 혁상은 (뭘 고를 지에 대한 기준이) 원래 그렇게 배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서로 충돌한 적은 거의 없다. 서로 한 걸 보면서 '진짜 잘했다', '어떻게 이렇게 하느냐' 하는 경우가 많다.

▶ 스타일이 다름에도 장면을 고를 때에 큰 틀은 일치한다는 게 신기하다. 서로 좋을 것 같다.

일란 : 보통 관객들은 자막이 나오는 시간, 위치, 폰트 이런 것까진 세세히 다 모르지 않나. 혁상은 그런 부분들을 만든다. 제가 김창수(등장인물 이름)라고 써 놓긴 하지만, 그게 위치와 나오는 속도에 따라 느낌이 다 다른 거잖아요. 혁상은 디테일을 만진다. 제가 문장을 쓰면 혁상은 의미를 살려서 유연하게 다듬는다.

혁상 : 제 기질 때문에 영화라는 것에 어렸을 때부터 매혹됐는지 모르겠다. 시청각적인 것에 대해서는 오타쿠 같은 부분이 있었다. 소규모의 제작시스템으로 꾸려가는 다큐의 경우, 촬영감독, 사운드 녹음기사, 이런 부분을 맡아 현장에서 시청각적으로 창조성을 발휘해야 하는 건 제가 맡았던 것 같다.

후반 편집할 때도 오디오와 비디오 조각을 이어붙이고 여러 가지 효과, 타이포그라피를 가져와 미학적인 실험을 하는 걸 즐겼다. (제 방식이) 정리될 수 있는 공식처럼 구조화된 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익숙했던 영화 언어의 문법이 체화돼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다.

일란 감독과 협업하면서 서로 시너지가 생기는 것 같다. 제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부분을 (일란의) 논리와 이성적인 판단으로 잡고 간다. 이쪽(일란)이 너무 팽팽하면 놔 주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케미스트리를 가져오지 않았나.

25일 개봉한 '공동정범' (사진=시네마달 제공)
25일 개봉한 '공동정범' (사진=시네마달 제공)
▶ 연분홍치마가 '공동정범'을 제작했기에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일란 : '마마상'을 만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연분홍치마가 여성주의와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발견하기 익숙한 것 같다. 내부의 갈등에 주목할 때에도,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이야기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고민한다. 배제되고 소외되고 주변부로 밀려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건, 이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해 왔던 여성주의자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면이 있다. '두 개의 문' 할 때도, '공동정범' 할 때도 마찬가지다.

늘 그런 질문에 익숙한 것 같다. 어떤 공간에서 누가 배제되고 있지? 왜 배제되고 있지? 배제가 가능하기 위해 어떤 논리가 정당화되고 있지? 이런 걸 빨리 발견한다.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에 관한 영역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할 지를 알 수 있는 철학이자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손희정 평론가와 서울국제영화제 조혜영 프로그래머가 '공동정범'을 페미니즘 영화로 규정했는데 좀 과분하다. 다만, 이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페미니스트로서 만들었던 건 사실인 것 같다. 이 영화는 여성의 이슈가 드러나거나 한 건 아니지만, 제작자들의 태도나 (제작) 과정에서의 노력은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지점들이 있던 것 같다.

▶ 사회적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많았고, 용산참사 그 이후를 다룬 '공동정범'도 그렇다. 이는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한데, 혹시 언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일란 : 잊히는 건 자연스럽다. 그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용산(참사) 같은 경우도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정권에 복무했던 언론이 삭제하고 왜곡한 사건이지 않나. 특히 방송사들이 그랬다.

(용산참사는) 경찰특공대가 투입됐던 시점, 왜 특공대여야 했나 이것이 쟁점이었다. 누군가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고 하면 일반경찰이 가지 테러리스트를 섬멸(모조리 무찔러 멸망시킴)하는 특수경찰이 들어가진 않는다. 언제 어떻게 투입됐고 그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가 하는 부분이 중요했다. '두 개의 문'에서도 나왔지만 (철거민들로부터) 화염병이 나오기 전부터 경찰특공대에게는 작전 투입 명령이 내려졌다.

그런데 (방송은 철거민을) 테러리스트로만 몰아가는 것이다. 화염병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생계와 관련한 이주 대책 마련 주장에 대해 정당한 보도를 하기보다는,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던 거다. 가장 열심이었던 곳이 방송사였고.

▶ 영화에는 MBC 보도 화면이 자주 나왔다.

일란 : 안에서 싸우는 분들도 계셨다고 생각하지만, 남아계셨던 분들의 보도는 그랬다는 거다. KBS는 특히 더했다. 2008년 정연주 사장이 잘리고 나서 그 이후 KBS가 점점 망가졌는데, 이들(철거민)이 평범한 사람이고 왜 망루에 올라갔는지가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화염병을 든 그 자체만으로 혐오와 차별의 대상으로 보도했다. 불법을 저지르기 때문에 섬멸하는 게 마땅한 사람들. 경찰특공대가 투입돼서 강제진압을 해도 타당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생산해 냈다는 것이다.

2009년 2월 3일 방송된 MBC 'PD수첩' (사진='PD수첩' 캡처)
2009년 2월 3일 방송된 MBC 'PD수첩' (사진='PD수첩' 캡처)
▶ 언론이 진실이 무엇인지 파고들기보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과격 시위를 했던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보도를 했던 것은 그게 더 편하기 때문이 아닐까. 복잡하게 얽힌 철거민들의 사정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만큼 더 품이 드니까.

일란 : 참사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이때 촬영됐던 소스를 분석해 용역과 경찰이 합동작전을 벌였다는 것을 'PD수첩'에서 발견했다. 그 용역들이 폴리시아라고 하는 경찰 사제 방패를 들고 있었던 것도 나왔다. 이 대대적인 보도 덕분에 용역들이 재조사 대상이 됐고, 용역 사무실이 압수 수색됐다. 이건 누구 선에 편 보도가 아니다. 진압 작전이 왜 문제였는지에 접근했을 뿐인데도 그것만으로 국가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약자의 편에 서는 게 정의로운 게 아니라, 당시 일어난 일이 합리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용산참사의) 모순을 드러낼 수 있다. 누구 편에 서야 한다는 생각은 굳이 가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정확한 탐사보도를 해서 잘 발견하기만 해도…

많은 언론이 항상 프레임 측면에서 정치권에 휘말리고 종속되고 복종하는 게 문제인 것 같다. 'PD수첩' 이후에도 다른 방송사 보도도 나갔으나 이 사건의 맹점과 함의를 잘 드러낸 보도는 'PD수첩' 보도였다.

▶ '공동정범'의 목표 관객수는. 얼마나 들어야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나.

혁상 : 10만. 손익분기점을 떠나서 10만이 들면 이명박이 구속될 것이다. (웃음) '두 개의 문' 때의 목표치도 10만이었다. 선거를 앞둔 이명박 정권 말기였는데, 10만이 들면 정권교체가 될 거라고 했다.

일란 : 우리끼리는 그런 농담을 했다. (웃음)

혁상 : 그게 어떤 미신 같은 기대이자 희망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향한 열망이 드러난다고 본다. 영화를 보러 온다는 액션을 실제로 취하는 사람이 10만이 된다면, 비록 정확한 표본이 되진 못해도 어떤 향방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일란 : 막연하기만 한 얘기는 아니다. 현재 적폐청산 기조를 끌고 나가고 있고,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들이 다스나 4대강 문제 등에 대해 폭로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핵심은 쌍용차, 밀양, 용산참사 같은 국가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했다는 점이다. MB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근거가, 영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통해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명의 관객이 독립 다큐를 볼 때 드는 노력은 보통 영화보다 10배 이상이다. 극장도 찾기 어렵고 시간대도 적다. (10만이라는 숫자는) 관심을 갖고, 자기 시간을 맞춰 극장을 찾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각오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사회적으로 크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바람만은 아니다.

▶ 마지막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혹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일란 : 엣나인필름 대표가 (영화 개봉 앞두고) MB에게 보낸 초대장에 '구치소에서 공동체 상영하기는 어려우니까 보고 가라' 하는 문구가 있었다. 너무 재밌었다. (웃음)

혁상 : (MB) 주변인들이 영화가 어떤지 체크는 할 것 같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영화에 대한 검열이 암암리에 자행됐던 걸로 이미 확인되기도 했고. 연분홍치마 작품도 '이명박 퇴진'을 외치는 장면 대문에 극장에서 상영 못한 게 있었다.

'공동정범'의 이혁상-김일란 감독 (사진=황진환 기자)
'공동정범'의 이혁상-김일란 감독 (사진=황진환 기자)


▶ 기자와 1:1 채팅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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