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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임신중절을 다루는 방식

"낙태죄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보여줘"…"잘못된 이미지 재생산"

2018-01-22 14:49

20일 방송된 KBS2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합의한 서지태(이태성 분)-이수아(박주희 분)는 뜻하지 않게 생긴 아이로 갈등한다. 임신중절 수술을 받으려는 이수아를 집으로 보내려는 서지태의 모습 (사진='황금빛 내 인생' 캡처)
20일 방송된 KBS2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합의한 서지태(이태성 분)-이수아(박주희 분)는 뜻하지 않게 생긴 아이로 갈등한다. 임신중절 수술을 받으려는 이수아를 집으로 보내려는 서지태의 모습 (사진='황금빛 내 인생' 캡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장 높은 시청률(43.2%, 14일 기준)을 기록한 국민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후반부로 갈수록 무리수 전개를 선보이고 있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할 만큼 엄청난 관심을 얻었던 '상상암'(실제 의학적으로 없는 병, 극중에서는 등장인물이 죽고 싶은 의지가 강해 마음의 병이 몸으로도 옮겨졌다는 설정)으로 시청자들을 당혹케 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주에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고 결혼한 딩크족(DINK, Double Income No Kids)인 서지태(이태성 분)와 이수아(박주희 분)가 임신을 두고 대립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임신 8주에 사실을 알고 아이를 지우려는 이수아는 수술을 위해 병원에 오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한 상황. 그가 "아이는 장난감이 아니"라며 "누구도 나한테 낳으라 말아라 할 권리 없다"고 강조했지만, "아이 심장소리 들어봤느냐"고 하는 말에서 예상할 수 있듯 서지태는 무조건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일 방송된 39회에서 서지태는 병원 앞에서 이수아에게 "이혼해 줄 테니 대신 아이 낳아줘. 낳고 나서 이혼해 줄게"라며 "너한테 키우라고 안 해. 내가 키울 거야"라고 말했다. 이에 이수아가 아랑곳하지 않자 "신고한다. 그거, 불법인 거 알지?"라고 협박했다.

서지태는 "우리들 행동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이라며 이수아에게는 아이를 낳으라고 종용했고 자신은 아이를 키우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 회사 육아휴직 있어. 그거 1년 쓰고 청주지점 바로 옆에 유아원 있더라고. 그리로 발령신청할거야. 넌 아이 낳을 때 두 달 정도만 육아휴직하면 계속 회사 다닐 수 있을 거야"라며 혼자 세워 둔 계획을 밝혔다.

21일 방송된 40회에서도 서지태는 친구 집에 머무르고 있는 이수아를 거기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구실로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수아가 "나 수술 못하게 지키겠다는 거야?"라고 하자, "어 그러는 거야"라고 답한 서지태는 임신 초기부터 먹어야 한다며 약을 건넸다.

계획하지 않은 아이가 생긴 것은 양쪽 모두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 역시 존중돼야 한다. 그럼에도 이수아는 '출산이 가능하면서도 굳이 아이를 지우려는' 비정한 혹은 이기적인 캐릭터로 묘사됐다.

반면, 결혼 전부터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합의를 했고, 피임을 안(못)한 책임을 같이 져야 하는 서지태는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이수아의 의사와 무관하게 행동한다. 수술하러 병원에 갈 수 없게 퇴근길마다 기다리거나, 마음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 계속 선물을 주며 "몸 잘 챙기라"는 식이다.

◇ 낙태죄 폐지 청원 20만 돌파, 정부도 임신중절 문제 고민하는데…

지난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국민청원 중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것이 바로 인공임신중절 수술 이슈였다. "원치 않은 출산은 당사자와 태어나는 아이, 국가 모두에게 비극적"인데도 여성에게만 죄를 두고 처벌하는 '낙태법'은 부당하다며, 낙태죄 폐지와 현재 119개국에서 합법으로 인정된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의 국내 도입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한 달 간 20만 명 이상이 서명에 참여한 이슈에 대해 책임 있는 당국자가 공식답변을 한다는 원칙에 따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해 11월 26일 '임신중절 이슈'에 대해 나와 직접 답했다.

당시 조 수석은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있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 외에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 여성의 건강권 침해 가능성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행 형법 제269조는 약물 또는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여성과, 여성의 승낙을 받고 낙태하게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270조는 여성의 허락을 받고 의사·한의사·조산사·약제사 또는 약종상(약을 파는 사람)이 낙태하게 하면 2년 이하의 징역, 촉탁이나 승낙 없이 낙태하게 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또한 지난달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낙태죄 폐지와 관련해 일단 중요한 것은 여성의 건강이다. 여성들이 불법 낙태나 시설을 통해 건강이 훼손되면 다시 출산할 수 있는 능력에 문제가 생기므로 그런 부분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교한 실태조사'와 '상세한 정책 방안 제시'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월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벌어진 '가임거부 시위'에 등장한 피켓 (사진=김수정 기자)
지난해 1월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벌어진 '가임거부 시위'에 등장한 피켓 (사진=김수정 기자)
특히 2016년 행정자치부 자치행정과가 만든 '대한민국 출산 지도'가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로 보는 것이냐는 거센 비난에 직면했고, 지난해 1월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는 여성들의 항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태아를 떨어트린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내포된 '낙태'라는 말 대신 보다 가치중립적이며 여성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임신중단'이라는 말을 쓰며,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촉구하는 단체(BWAVE)도 나왔다.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17. 1. 7. '출산 지도'에 분노한 여성들 "내 자궁에 전세 냈나")

최근에는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한국을 "부유한 국가 중 몇 안 되는 강력한 낙태(임신중절) 금지법을 갖고 있는 나라"라고 소개했다. 임신중절에 관한 인식이 변하고, 문제 해결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는 와중에 '국민드라마'란 별칭이 붙은 '황금빛 내 인생'에서 임신중절에 대한 비난을 여성에게만 돌리는 접근을 시도한 셈이다.

◇ "임신중절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 심어줘"

전문가들은 '황금빛 내 인생'에 표현된 임신중절 관련 장면이 사회적 통념을 반영하고 있는 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잘못된 이미지를 확대재생산하는 측면이 있다고 바라봤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낙태죄는 사문화되지 않았나, 왜 굳이 폐지하려고 하느냐'고 하는 사람이지만, '황금빛 내 인생'을 보면 왜 낙태죄를 굳이 폐지하려고 하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여성의 선택을, 남성이 협박에 이용하고 있지 않나. 공권력을 발휘해서 내가 너를 범죄자로 만들겠다면서. 현실에서 벌어지는 크리티컬한 문제를 잘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이면서도 '문제적'"이라고 진단했다.

황 평론가는 "임신을 시켜버린 남성은 책임이 없고, 낙태한 자만이 범죄자가 된다는 걸 알기에 '나는 그 죄에서 벗어나 있다. 심지어 나는 너를 고발할 수 있는 위치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갈등이 얽힌 어려운 상황에서 결국 '낙태죄'로 인해 피해 받는 이가 누구인지를 너무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사진='황금빛 내 인생' 캡처)
(사진='황금빛 내 인생' 캡처)
서울 녹색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 과장은 "여성들은 부부뿐 아니라 헤어진 사이, 이혼하는 관계에서도 (낙태 사실과 관련해) 금전적·사법적 협박을 받는다. 실제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에도 그런 사례들이 다수 접수된다. ('낙태죄'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협상력을 저하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디어에서 이런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문제다. 이걸 보고 여성이 임신중절할 수 없게 하는 권리는 남성에게 있구나, 협박이 가능하구나 하고 생각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며 "미디어가 잘못된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것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윤 과장은 임신중절을 미디어에서 어떻게 그리는지 살핀 모니터링한 미국의 통계 결과, 15%가 여성이 죽음을 맞는 결말로 끝났고 체포당하거나 수술 후 우울증에 걸리거나 죄책감을 호소하는 등 부정적 묘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절이 가능한 나라에서는 여성들의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이 오히려 낮고, 적절한 시기에 조치 받지 못한 여성의 트라우마가 더 오래 갔다는 연구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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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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